'뚝딱뚝딱' 잠수함 건조
  • 목포·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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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졸 타이어 수리업 이종용씨, 2년 만에'나 홀로' 완성


지난 3월12일, 전남 목포시 용해동에 자리 잡은 자동차 타이어 수리업체인 '연안 타이어'의 빈터에서 실험용으로 제작된 무인 소형 잠수함을 시험 운항하는 이색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폐품으로 만든 원격 조정 소형 잠수함




무게만도 1.5t이 넘어 장정 6명이 밧줄로 묶어 운반해 온 'K 2000'호는 이 날 깊이 1.5m 길이 3m인 수조에서 전후좌우로 자유롭게 움직이며 잠수와 부상을 세 차례 반복했다. 고철덩어리로만 보이던 길이 2m, 너비 90cm의 앙증맞은 소형 잠수함이 물 속으로 잠수했다가 물거품을 일으키며 물 위로 솟구쳐 오르자 지켜보던 구경꾼들은 모두 탄성을 질렀다.


잠수함을 만든 주인공은 자동차 타이어 펑크를 전문으로 수리하는 연안타이어 사장 이종용씨(41·목포시 용해동). 하루 종일 기름때 묻은 작업복 차림으로 하루에 타이어 3∼4개를 수리해 주고 겨우 몇 만원을 버는 가난한 사장이다. 이씨는 잠수함이나 잠수정을 한 번도 구경한 적이 없다. 그런 이씨가 혼자서, 그것도 근처 폐기물 처리업체의 폐품들을 써서 무선으로 원격 조종하는 소형 잠수함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씨가 잠수함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1996년 9월. 강릉 앞바다에 침투한 북한 잠수함이 절반쯤 물에 잠긴 모습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나서였다. 국군에 생포된 간첩이 "내부 압력 때문에 머리가 아프고 소화도 잘 안됐다"라고 말한 것을 듣고 '왜 잠수함은 내부 압력이 심할까'라는 기초적인 의문에 빠져들었다. 잠수함이 물을 가득 채운 뒤 잠수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정작 물을 어떻게 밖으로 배출해 떠오르는지 궁금했다. 그는 자나깨나 잠수함 생각만 하다가, 아예 직접 잠수함을 만들기로 작정했다. 잠수함을 다룬 책 한권 읽지 않았고, 국방부로 달려가 잠수함 구조를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설계도면 없이 오로지 자기 기술로만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가 이씨는 자기가 매일 하는 타이어 펑크 수리에서 힌트를 얻었다. 그는 타이어 공기 압력을 조절하고, 구멍 난 곳을 때우는 데는 전문가였다. 잠수함 역시 공기 압력을 조절해 물을 가득 채우거나 배출하면서 잠수와 부상을 반복하리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뒤부터 그는 낮에는 타이어를 수리하고, 밤에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잠수함 제작에 들어갔다. 폐품처리장에서 가져온 50cc 오토바이 엔진을 달고, 식당에서 사용하는 대형 LP 가스통을 몸통으로 삼았다. 볼트와 너트도 직접 깎아 만들었고, 필요한 것들은 폐품처리장과 고물상에서 구했다. 전기 배선과 용접, 자동제어 시스템까지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만들었다. 이씨가 잠수함을 만드는 데 사용한 장비는 전기 용접기와 산소 절단기, 손으로 사용하는 그라인더와 드릴뿐이었다. 큰돈을 들여 구입한 제품은 4백50만원을 주고 일본에서 수입한 무선 원격조종장치 단 하나였다.


국방과학연구소 전문가, K 2000호 보고 감탄


이종용씨는 2년 동안 잠수함을 만드느라 금쪽 같은 돈 천만원을 썼다. 보증금 1천7백만원짜리 전세방에서 살면서 내년이면 대학 가는 아들을 둔 가장으로서는 엄청난 지출이다. 이씨가 잠수함에만 매달리자 보다 못한 그의 아내는 백화점 아르바이트 일을 해야 했다. 이씨는 잠수함에 골몰하며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이가 6개나 빠졌지만 돈이 없어 치료조차 못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었다. ABC도 모르는 사람이 잠수함을 만든다고 하자 주위 사람들은 미쳤다고 비아냥거렸다. 심지어 그의 아내까지도 믿으려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씨는 기필코 만들어내겠다며 버텼고, 2년 만에 시제품을 제작한 뒤 시험 운용에 성공했다. "만약 실패했다면 목포에서 못 살고 떠나야 했을 것이다. 실패하리라고 굳게 믿은 사람이 더 많았다"라고 이씨는 말한다.




실험에 성공한 뒤 그는 국가정보원에 서한을 보내 자신이 '1급 군사 시설'인 잠수함을 개발했다고 '신고'했다. 그를 찾아온 국방부 소속 국방과학연구소 전문가들은 그의 무인 잠수함 'K 2000'을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국방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그의 의지와 노력에 '경탄한다'며 e메일을 보내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이씨가 개발한 잠수함이 사실은 사람이 탈 수 없는 소형 '잠수정'인 데다 이미 국방부가 관련 기술을 보유하고 있어 군사용으로 활용하기 어렵다고 알려왔다. 대신 '무에서 유를 창조한' 그의 도전 정신에 공감하면서 유럽이나 미국처럼 레저용으로 즐기거나 산업 분야나 해양 탐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그러나 이씨의 의견은 달랐다. "잠수함과 잠수정을 사람의 탑승 여부나 크기로 구분해서는 안된다. 잠수함과 잠수정은 만드는 기술이 다르다. 잠수함은 부력이라는 과학의 원리를 철저히 응용해야 하지만 잠수정은 크레인이나 프로펠러·날개·납 등을 이용하는 쉬운 기술이다"라고 주장한다. 이씨는 또 국방부가 기대하는 대로 사람이 탈 수 있는 잠수함을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고 주장했다. 자기 머리에 들어 있는 설계도를 응용해 트럭용 대형 유류 탱크나 LPG 수송 탱크를 활용하면 간단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자신이 만든 잠수함에 대한 애착은 대단하다.


지난 5년 동안 잠수함 꿈만 꾸었다는 이씨는 고향인 목포에서는 '안다 박사'로 통한다. 호기심이 많은 데다 남들이 '못한다.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에 더 흥미를 갖기 때문이다. 그런 이씨의 학력은 국졸이다. 그는 1980년대까지만 해도 광주 충장로에서 '이교장'으로 불릴 정도로 잘 나가는 여자 맞춤구두 전문 '가피사'였다. 가피사란 맞춤구두 디자이너를 말한다.


한때는 종업원을 15명 두고 구두 공장까지 운영했지만 유명 구두전문업체들이 기성품 구두를 쏟아내어 맞춤구두 사업이 기울자 지금의 업종으로 전환했다. 그는 10년 동안 목포에 살면서 한때 '동전'을 활용한 펑크 수리 기법을 개발해 전국에 유행시키기도 했다. 몇 년 전에는 고속 주행 때 차가 부르르 떨리는 원인을 연구해 자동차 회사들로부터 자문을 받았다.


"평범한 국민이 갖은 노력 끝에 잠수함 제조 기술을 개발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내가 개발한 기술은 국가가 나서 과학실험용으로 활용할 충분한 가치가 있다"라는 것이 이씨의 주장이자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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