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상식 벗어난 '신문 고시 때리기'
  • 김은남 기자 (ken@e-sisa.co.kr)
  • 승인 2001.05.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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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 '외압설' 등 확대·각색 보도…
"제 논에 물대기" 비난 받아


신문 고시'에 별 관심이 없거나, 신문 고시라는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지난 1∼2주 신문 보기가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신문, 그중에서도 특히 조·중·동(〈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이 신문 고시 관련 보도에 연일 5∼6면을 할애했기 때문이다.




1996년 신문사간 경쟁이 살인으로 번진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신문 고시는, 신문사가 경품이나 공짜 신문(무가지)을 살포하는 등 불공정 판매 경쟁을 하지 못하도록 정한 행정 규칙이다. 이 고시가 시행 2년 만에 폐지된 후 시민단체나 〈한겨레〉 등 마이너 신문은 왜곡된 신문 시장을 바로잡기 위해 이를 반드시 부활시켜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조·중·동은 '신문 고시 부활은 언론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는 시각을 지켜 왔다. 이들에 따르면, 신문 고시는 '겉으로만 자율'을 내세우되 실제로는 '정부가 신문사 경영에 간섭'(〈동아일보〉 4월14일) 함으로써 '영향력 있는 퀄리티 페이퍼에 족쇄를 채우기 위한'(〈조선일보〉 4월16일 사설) '신(新) 언론 통제 수단'이다.


조·중·동이 신문 고시를 의제로 부각하는 것을 탓할 수는 없다. 문제는 언론의 정도와 상식을 벗어난 보도 행태가 속출했다는 사실이다. 정부 규제개혁위원회(규개위)가 신문 고시 부활 방침을 천명한 4월13일부터 이들 3개 신문은 약속이나 한 듯 규개위 외압설-신문 고시 위헌 논란-공정거래위원회의 직권 중재 방침에 대한 규개위원 반발 소동을 차례로 보도했다.


이 중 정부가 규개위에 압력을 가했다는 외압설은 한나라당이 제시한 것으로, 단순한 '설'인지 아닌지 논란이 많았다. 〈한겨레〉 4월18일자는 규개위 민간 위원 13명 중 10명에게 확인한 결과 외압설을 시인한 위원이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보도했다. 규개위 공동위원장인 강철규 교수(서울시립대·경제학)는 정부와 규개위원 사이에 이견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합의에 이르는 과정에서 이견이 완전히 해소되었다며, "외압설은 규개위에 대한 모독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조·중·동은 이같은 반론을 전혀 싣지 않고, 한나라당의 주장만을 일방적으로 중계했다.


'규개위원, 신문 고시에 반발'은 왜곡 혐의


조·중·동은 또 지난 4월18일 신문 1면 톱 또는 사이드 톱으로 일제히 '신문 고시 헌법 소원' 기사를 올렸다. 이 기사는, '헌법을 생각하는 변호사 모임'(대표 정기승)이라는 단체가 '신문 고시가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 제기 방침을 천명했다고 밝혔다. 1998년 최장집 교수 사상 검증 논쟁을 계기로 결성된 이래 시민단체가 국가 예산을 지원받는 것은 부당하다며 참여연대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김근태·이부영 의원 등의 이른바 '헌법 적대 경력'을 폭로하는 등 극우 보수적인 활동을 벌여온 이 단체는 덕분에 메이저 언론들로부터 전례없이 비중 있는 눈길을 받았다.


'법률 아닌 고시로 언론 자유라는 기본권을 제한한 것은 위헌'이라는 이석연 변호사(경실련 사무총장)의 주장을 소개한 신문도 있었다(〈동아일보〉 4월17일). 그러나 '언론의 독과점을 해소하는 것이 국민의 알 권리를 더 확장시킬 수 있다'거나 '고시로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가 법률(독점 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 제23조)에 명시되어 있다'는 반론은 조·중·동 어느 매체에도 실리지 않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신문 고시 운영 방침에 대해 민간 규개위원들이 반발하고 있다는 4월18일자 조·중·동 기사는 왜곡 보도라는 혐의까지 받고 있다. 이들 신문은 공정위가 '필요할 경우 직권 조사를 벌이겠다'고 발표하자 규개위원들이 '합의 정신과 다르다'며 반발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이 기사에 실명으로 거론한 규개위원 3명 중 2명은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이 중 한 사람인 강철규 교수는 '자율 규제가 최우선이라는 원론적인 내용을 지적했을 뿐인데, 기자가 이를 편리한 대로 각색했다'며, 자율 규제가 지켜지지 않을 경우 공정위가 개입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조선일보〉 기자에게 원론적인 언급을 했을 뿐이라는 정순훈 교수(배재대·경제학)는, 자신의 멘트를 직접 인용한 〈동아일보〉의 경우 인터뷰를 한 기억조차 없다고 덧붙였다.


신문 고시를 둘러싼 조·중·동의 이같은 보도 행태는 '제 논에 물대기' '조폭적 밀어붙이기'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 김주언 사무총장은, 사주 또는 언론사의 이해 관계에 따라 지면을 사유화하는 이같은 행태를 바로잡기 위해서라도 신문 시장 정상화의 첫 단추나 다름없는 신문 고시를 엄격하게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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