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취의 전당 음식업중앙회
  • 정희상 기자 (hschung@e-sisa.co.kr)
  • 승인 2001.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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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 부패 구조 수십년째…신임 회장 "개혁하겠다"


41만명에 이르는 전국 일반 음식점 업주를 회원으로 둔 사단법인 한국음식업중앙회는 정부의 감독을 받는 직능단체 가운데 가장 큰 조직이다. 이 단체가 5월17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5천여만원에 달하는 회원 회비를 들여 총회와 중앙회장 선거를 치렀다. 후보는 2명. 현직 중앙회장으로 서울 강남에서 중국음식점 만리장성을 운영하는 윤광석씨와 강북인 종로구에서 역시 중국음식점 하림각을 운영하는 종로구지회장 남상해 후보가 맞붙었다. 중앙회장 선거를 놓고 '강남북 짜장면 대결'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시중에 나돈 것도 그래서였다.




'썩은 살' 도려낼까 : 대의원 선거(왼쪽)를 통해 비리와 독선으로 얼룩진 한국음식업중앙회 회장에 당선된 남상해씨(오른쪽).


음식업계에서는 당초 6 대 4 정도로 현직 회장인 윤후보가 승리할 것이라고 점쳤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변화와 개혁을 기치로 내건 남상해 후보가 대의원 2백92명 중 1백63명으로부터 지지를 받아 신승한 것이다. 새로 선출된 남상해 음식업중앙회장은 짜장면 배달부로 시작해 한 해 30억원을 버는 대규모 음식점 경영자가 되었다는 입지전적 면모를 과시했다. 그는 한나라당 전국구 후보 35번으로, 정치적인 야심이 있어 중앙회장에 출마했다는 평을 받기도 한다.


식당을 운영하는 업주들의 동업자 조합인 음식업중앙회가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어느 누구도 무시 못할 세력으로 자리 잡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음식업중앙회의 내부는 곪을 대로 곪아 있다. 41만 회원을 가진 매머드 조직이지만 더 이상 회원의 조직이 아니라는 자조도 널리 퍼져 있다. 반부패국민연대 등 시민단체와 검찰에는 최근 음식업중앙회와 지회 일부 간부들의 오랜 이권 추구와 그로 인한 독선, 반민주적 전횡을 고발하는 진정이 줄을 잇고 있다.


예산 210억원대…회장 판공·기밀비 1억6천만원


음식업중앙회는 산하에 25개 직할 지회와 15개 시·도 지회 및 2백17개 군·구 지부를 두고 있다. 여기에 식당업자들을 교육하는 중앙교육원과 시·도 15개 교육원 분원을 두고 1천4백여 직원이 조직을 움직인다. 이권은 41만여 식당업자들로부터 반강제로 거두어들이는 회비 수입 1백70억원과 교육비 37억원, 정부 보조금 10억원 등 2백10억원대 예산에서 나온다. 이 예산을 집행하는 중앙회 및 각 지회와 지부의 장은 어느새 권력자가 되어 버렸다. 지부장 또는 지회장의 경우 적게는 수천에서 많게는 수만의 관할 구역 식당에서 회비를 거두어들이고, 여기에서 판공비와 기밀비 등의 명목으로 한달에 5백만원 안팎씩 챙긴다. 중앙회장의 경우 연간 1억6천만원인 판공비와 기밀비를 사용해 사실상 사회의 최상급 고액 연봉자인 셈이어서 명예직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또 정관에 따라 3년 임기인 지회장 및 지부장은 무한정 연임할 수 있다. 대부분의 지방 지회 지부장은 10년 이상 한자리에 앉아서 판공비와 기밀비를 챙기고 있으며, 심한 경우 27년째 한자리에 눌러앉아 있는 사람도 있다. 회원을 가진 단체장이어서 이들은 정치적 대접도 받는다. 국회의원·시의원과 민선 단체장은 표를 의식해 지회장과 지부장을 상전 받들 듯이 한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지회장과 지부장 자리를 둘러싸고 암투가 치열하다. 대의원 간접 선거 방식으로 치러지는 이 단체 선거 때마다 대의원 줄세우기와 매수, 이면 계약을 통한 상대 후보 매수 등 크고 작은 말썽이 끊이지 않는다. 더구나 선거는 지부장이 대의원을 지명하고 그 대의원이 지부장을 뽑는 매우 해괴한 방식으로 치러진다.


욕심이 지나쳐 지회장과 지부장을 겸임하는 이들도 있다. 정관상 두 직책은 겸임할 수 없지만 중앙회장이 인준할 때는 예외로 한다는 단서 조항에 따라 전북·대전·충남에서는 두 자리를 한 사람이 겸임해 왔다. 기밀비와 판공비를 이중으로 챙기는 대가로 중앙회장에게 충성을 바치는 구도인 셈이다.


문제는 회비를 내는 대부분의 식당 업주들이 음식업중앙회의 이런 복마전 구조를 모른다는 데 있다. 사회 전반이 민주적 조직 구조와 의사 결정 시스템으로 변화해 가는 추세에서 41만 회원들은 자신들이 어떤 독재 체제에 있는지도 모르고 있는 셈이다.


위생검사 권한 이양 받아 반강제로 회비 거둬


이 단체의 고질적 부패 구조와 반민주적 전횡에 제동을 걸어야 할 곳은 당연히 보건복지부이다. 그러나 복지부는 이런 기현상을 바로잡기는커녕 오히려 방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음식업중앙회가 전국 41만 식당업자들로부터 회비를 강제적으로 거둘 수 있는 것은 복지부가 칼자루를 쥐어 주었기 때문이다. 위생검사 권한과 식당 운영자 위생교육 권한을 이양받은 음식업중앙회는 이를 통해 벌금과 영업정지 등을 위협 수단으로 삼아 손쉽게 회비를 거둘 수 있다. 심지어 단속을 묵인하는 대가로 비회원인 무허가 식당에서 회비를 징수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서울역 앞에서 무허가 식당을 운영하는 박 아무개씨(65·여)는 "중앙회에서 왔다면서 매년 1만5천원씩 회비를 거둬간다. 뺏기는 심정이지만 단속이 무서워 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IMF 이후 전국의 식당들은 매출이 급격히 줄어 허리띠를 졸라매거나 폐업하는 등 고통을 겪고 있지만 음식업중앙회 조직은 그 아픔에 아랑곳 없이 이권과 권력 다툼에 여념이 없다는 눈총을 받아왔다. 이런 실정에서 최근에는 일반 회원들 사이에도 음식업중앙회의 횡포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움직임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상자 기사 참조). 이같은 심상치 않은 기류를 감지한 남상해 신임 중앙회장이 `'변화와 개혁'을 기치로 내걸어 당선한 것이다. 회원을 무시한 비민주적 정관을 개정하고, 회비도 모자라 특별회비까지 거두어 분당에 짓고 있는 1백10억원대의 종합교육관 건립 공사를 중단해 그 돈을 회원들에게 되돌려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남회장의 정치성 때문에 회의적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대선을 앞두고 중앙회 조직이 정치에 휘말리지 않겠느냐는 우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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