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언론계 '만신창이'
  • 나권일 광주 주재기자 ()
  • 승인 2001.06.2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자 비리·성희롱·편파 보도 의혹 확산…
수습·통제력 없어 '심각'


언론 공해라는 비판에 시달리는 광주 지역 기자들이 사면초가에 몰렸다. 광주·전남 기자협회장이 CBS 파업 복귀 문제로 자신이 소속된 노조에서 제명되는가 하면, 기자협회 사무국장은 기자들이 반발하자 사표를 냈다. 여기에 최근 목포의 한 일간지 주재기자가 공무원들의 집단 반발로 취재와 구독 거부를 당해 광주 지역 언론계는 추스르기 힘들 정도로 혼란에 빠져 있다.




지난 6월2일 목포시청 회의실에서는 6급 이하 시청 공무원 7백여 명이 언론 보도를 문제 삼아 결의문을 채택하는 이례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호남신문〉 박 아무개 목포 주재기자(35)가 6월1일 보도한 '목포 북에 옥수수 지원, 전남도 사업 재고 통보' 기사에 반발해 이 신문에 대한 구독 및 취재 협조 거부를 선언한 것이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청탁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보복성 기사를 일삼고 사실을 왜곡한 〈호남신문〉에 단호히 대처해 가겠다'며 목포시청 신문 투입구에 빠짐없이 '〈호남신문〉 구독 사절'을 붙여놓았다. 목포시 공무원들에 따르면, 박 아무개 기자는 목포시가 해마다 실시하는 시청 직원 해외 배낭여행 프로그램에 자신이 참여하고 있는 공무원 모임 회원들을 포함해 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뒤 문제의 기사를 작성했다.


목포시청 6급 이하 동우회 관계자는 "개청 이래 공무원들이 자발적으로 그토록 많이 모인 적이 없었다. 출장 간 직원들과 시장실·공보실·시의회를 제외한 거의 모든 6급 이하 직원 7백42명이 한 시간 만에 서명을 마쳤다"라고 말했다. 언론과 기자에 대해 쌓인 불만이 한꺼번에 터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아무개 기자는 "보도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배낭여행 건도 권유 수준이지 청탁이 아니었다"라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지역 기자 52% "전직 희망"




현재 목포시청 행정동우회는 〈호남신문〉 사건 외에도 언론에 의한 피해 사례를 광범위하게 제보받고 있어, 이번 사건이 주민 계도지 비용 축소나 주재기자 제도 전체에 대한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광주 지역 언론계 사건은 이뿐만이 아니다. 광주방송(KBC)은 최근 여사원이 지역 인터넷 게시판에 올린 '성희롱' 파문으로 홍역을 앓고, 〈광주매일〉은 자체 제작한 〈뉴스 연감〉을 관청과 기관에 강매하고 있다는 시비에 시달렸다. 〈전남매일〉의 경우 '기름값이 없어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취재 기자의 형편을 호소한 글이 인터넷 게시판에 오르기도 했다. 또 광주 KBS는 지난 5월29일 '광주·전남 언론학회'가 주최한 언론 개혁 세미나에서 현직 신문방송학 교수가 특정 프로그램의 보도 내용을 '편파 보도'라고 공격하는 사태에 휘말렸다.


결정적인 사건은 기자 사회 내부에서 터졌다. 광주·전남 기자협회(회장 임영호)가 〈광주·전남 언론 백서〉 발간을 준비하면서 기자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를 지난 5월25일 보도자료로 언론사에 보낸 것이 화근이었다. '광주 지역 기자 52.2%가 전직을 희망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결과보다 더 문제가 된 것은, 지역 언론사 평가 항목. 언론 기능에 충실한 지역 언론사로 광주KBS(46.3%), 〈광주일보〉(37.8%), 〈광주타임스〉 (26.8%) 광주MBC(24.4%)라는 순위가 공개된 것이다.


〈광주일보〉와 〈광주타임스〉는 발 빠르게 다음날 신문에 자사의 성적표를 자랑스럽게 공개했고, 광주 KBS도 저녁 7시·9시 뉴스에 '고득점' 사실을 홍보했다. 그러나 하위권을 기록한 언론사 기자들이 반발했다. 결국 보도자료를 내보낸 기자협회 사무국장은 사표를 냈고, 문제가 된 부분은 백서에서 삭제키로 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