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수꾼 킬러' 인천공항 로버
  • 주성민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1.06.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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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관 비밀 요원, 경험·감각으로 범인 색출…
엑스레이 투시 없어 '유일한 감시망'


6월13일 오후 5시, 아시아나 항공 308편이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중국 옌타이에서 탑승한 승객들이 법무부의 입국심사대를 통과한 후 입국장의 5번 화물 수취대에서 짐을 찾느라 둘러서 있었다. 50대 초반 남자가 가방 하나를 든 채 '마샬'로 불리는 세관 검사지정관에게 다가갔다. 마샬이 김 아무개씨(50)에게 "신고할 게 있느냐"라고 묻자 그는 "없다"라고 대답했다. 마샬은 통과하라고 말했지만, 그에게서 수상한 낌새를 챈 사복 차림인 비밀 세관원 한 사람이 그를 가로막으며 검사대로 가라고 지시했다. 세관 검사원은 즉시 그의 가방을 수색해 비닐 봉지 안 마늘 속에 감추어진 금색 롤렉스 시계 8개를 찾아냈다. 개항한 지 불과 70여 일인 인천공항에서 아흔일곱 번째로 밀수품을 적발해낸 것이다.




김 아무개씨를 검사하라고 한 사람은 공항세관의 비밀순회감시요원 최 아무개 반장(45)이다. 이들 비밀 요원은 공항에서 로버(Rover)로 통한다. 로버는 입국장 승객들 사이에 사복 차림으로 섞여 있다가 행동과 표정이 자연스럽지 못한 사람을 찾아내는 세관의 전문 요원이다. 이들은 감시 업무 경력자에 한해 선발되며, 경험과 본능적인 감각으로 밀수범을 적발한다.


'우범 항공기' 집중 감시…
PDA 이용 범인 검거


예전의 김포공항에서는 휴대물품도 일일이 검사했다. 가방을 모두 열어보고 치약도 짜보고 병뚜껑도 열어 보아 입국장 통과에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인천공항은 휴대물품에 대해 엑스레이 투시를 하지 않으며, 세관 신고 물품이 없는 일반 승객에게는 휴대품 신고서도 받지 않는다. 이 때문에 밀수품 반입에 취약할 수밖에 없어,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배치한 감시 요원이 바로 로버다.


로버 제도가 가장 잘 되어 있는 나라는 호주와 뉴질랜드다. 따라서 세관원 6명이 호주로 파견되어 단기 교육을 받았고, '여행자 추적 감시 시스템'인 로버를 도입해 김포에서 3주간 시범 운영을 한 후 인천공항에서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공항세관 휴대품통관국 소속으로 산하 8개 휴대품검사관실에 계장을 포함한 8명씩 모두 64명이 일한다. 로버는 하루 2개조씩 16명이 근무하지만, 입국자가 몰리는 오후 2시부터는 1개조가 늘어나 24명이 감시 업무에 들어간다. 로버는 '우범 항공기'에 감시를 집중하고 있다. 우범 항공기란 오사카·후쿠오카·홍콩·타이완·방콕·중국 등 우범 지역으로 분류한 곳에서 이륙한 항공기를 말한다.




지난 6월10일 방콕에서 도착한 아시아나 344편 승객들이 입국심사대를 빠져나오자 로버의 눈에 30대 남자 한 사람이 포착되었다. 박 아무개씨(38)는 마샬에게 "신고할 게 없다"라고 말하며 통과했으나 로버가 그를 제지했다. 그는 검사대로 보내졌고 휴대한 쇼핑백에서 상자에 든 위스키 1병이 나왔다. 그러나 위스키치고는 지나치게 무거웠다. 상자에서 꺼낸 병의 밑바닥에는 석류석과 토파즈를 포함한 보석 원석이 1천1백60개나 숨겨져 있었다.


인천공항은 여행자 사전정보 시스템인 아피스(APIS)를 가동하고 있다. 해외에서 항공기가 이륙하면 세관 정보분석과는 탑승객 명단을 미리 입수해 1만5천여 명의 우범 여행자 데이터 베이스와 대조한다. 우범 여행자가 입국하면 입국심사대에서 확인해 로버가 휴대한 PDA에 띄운다. 로버의 PDA에는 이름·성별·입국심사대의 위치까지 뜨게 되고, 여러 곳에 배치된 로버는 우범 여행자가 이동할 때마다 다른 로버에게 옷차림과 특징을 알려준다.


6월3일 오사카에서 대한항공 726편이 이륙하자 세관 정보분석과에서는 아피스 정보로 우범 여행자 봉 아무개씨(33)가 파악되었다. 그가 도착하자 PDA로 정보를 받은 제4 검사관실의 로버들은 집중 감시에 들어갔다. 입국심사대를 통과한 그가 세관검사대로 내려가자 2층의 로버는 1층의 로버에게 추적을 지시했다. 휴대물품만 가진 그는 간단히 마샬 앞을 통과하려 했지만 앞을 가로막은 로버가 검사대로 보냈다. 검사원은 정밀 검사에 들어가 쇼핑백에 숨겨진 1억원 상당의 진주 13kg을 찾아냈다. 그는 보석상인 윤 아무개씨로부터 운반비 4백만원을 받기로 하고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서 진주를 넘겨받아 들어왔으나, 아피스 정보와 로버의 추적으로 적발되어 경찰에 구속되었다.


'전자 실'도 밀수범 적발에 한몫




공항 세관에서 승객의 화물을 검색해 밀수품을 적발하는 또 다른 방법은 전자 실(seal)을 이용하는 것이다. 항공기에서 화물이 도착하면 엑스레이 투시기로 검색한 후 식별하기 힘들거나 정밀한 검사가 필요할 때는 실을 붙인다. 일상적인 검사가 필요한 화물에는 노란 실을 붙이고, 상용 물품 중 분량이 많거나 안보와 관련된 경우에는 빨간 실을 붙여 로버가 집중 감시한다. 승객이 실이 붙은 화물을 카트에 싣고 마샬에게로 향하면 바닥에 전자 감응 매트가 깔려 있어 실에서 '삑삑'하고 경고음이 울린다. 이런 경우 검사원은 짐을 샅샅이 조사한다.


6월2일, 제5 검사관실의 로버가 로스앤젤레스에서 아시아나 201편으로 입국한 김 아무개씨(여·50)를 검사대로 보냈다. 조사한 결과 가방에서 비아그라 34병(1천20정)이 발견되었다. 여자 검사원이 몸수색을 해 가슴·배·다리에 비닐 랩으로 싸서 감춘 비아그라 3천4백80정을 더 찾아냈다. 6월12일, 타이베이 항공 628편으로 입국한 최 아무개(여·69) 씨와 이 아무개(여·54) 씨를 수상하게 여긴 로버는 이들을 검사원에게 넘겼다. 엑스레이를 투시하지 않은 휴대 가방에서 롤렉스 시계 47개가 쏟아져 나왔다.


로버 요원들은 경험을 통해 익힌 '감'으로 여행자들을 살피면서 세관이 적발하는 대부분의 밀수범을 찾아내고 있다. 마샬은 입국장에서 통과하는 사람을 일일이 인터뷰하며 검사할 대상을 집어내야 한다. 한두 가지를 물어보고 대답을 들으며 수초 내에 검사할지 내보낼지를 결정한다. 휴대물품의 엑스레이 투시와 신고서도 없앤 상황에서 마샬의 임무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마샬의 인터뷰가 길어지면 승객이 통과하는 시간이 지체된다. 이 때문에 로버는 늘 돌아다니며 검사할 대상을 찾아내면서 일반 승객은 신속하게 통과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호주 세관에서 교육을 받은 제3 검사관실 소속 로버 이해동 계장(40)은 "우리의 경험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우범 항공기가 많이 들어올 때에는 인력이 모자란다"라고 말했다. 로버는 조직적이고 체계화한 교육을 통해 더 전문화해야 한다. 요원도 늘려야 하고 감시 방법도 더 세련되어야 하며, 요원들은 적발해 내겠다는 사명감과 직업 의식이 투철해야 한다. 승객들을 편하게 하면서도 밀수범 검거율을 높이자면 현재 상황에서는 유능한 로버를 배치하는 외에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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