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 노조' 결성한 얼굴 없는 외국인들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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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노조에 '지부'로 가입…조합원 신원·규모는 극비


"우리는 노동자입니다. 우리에게도 인권이 있습니다." 지난 7월5일 서울 목동 출입국관리국 앞에서는 외국인 노동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가 불법 체류자 단속을 규탄하는 집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목소리로만 동참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모두 평등노조 조합원.




지난 5월26일 비정규직 노동조합인 경인지역 평등노조(위원장 임미령)에 이주노동자 지부가 만들어졌다.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노동조합이 처음으로 탄생한 것이다.


노조가 출범한 지 한 달째, 아직까지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는 걸음마 단계다.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는 다른 노조처럼 임금이나 노동 조건을 놓고 사업주와 협상할 수 없고 노조원의 얼굴을 공개할 수도 없다. 현재까지 평등노조 이주노동자 지부의 조합원 규모는 극비 사항이다. 최근 한 일간지 보도에 따르면, 국정원까지 이들의 활동을 주시하고 있어 노조원의 신원이 밝혀지는 순간 강제 추방될 위기에 처한다. 이 날 시위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목소리를 녹음해 참여한 것도 보안 때문이다.


공개적으로 활동하는 노조 간부는 한국인으로 모두 10명이다. 10명 가운데 9명이 여성 활동가다. 이윤주 지부장을 포함해 이들은 모두 외국인 노동자 인권운동으로 잔뼈가 굵은 활동가이다. 이들은 외국인 이름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데 이윤주 지부장은 '리케야'라고 불린다.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존경하는 독립투사 이름을 이씨에게 붙여주었다.


현재 실정법의 테두리에서 합법적인 외국인 노동자는 산업 연수생·연수 취업생·해외투자기업 연수생으로 구분된다. 이들은 9만명에 불과하고, 21만명에 달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대부분 불법 취업한 경우다. 1990년대 초반에 비해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이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차별이 지속되고 있다. 이런 불평등이 평등노조가 힘을 얻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평등노조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외국인 노동자 대책은 고용허가제이다. 연수 없는 연수생 제도를 철폐하고 노동 3권을 보장하는 고용허가제 도입을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제시한다.


그러나 이런 대안이 제도화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정부 당국이 추진했던 형식적인 고용허가제마저 중소기업협동중앙회와 법무부 등 관련 기관이 반대해 좌초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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