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뉴월에 벌벌 떠는 외국인 노동자들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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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단속으로 2천여명 연행…"동물 취급 하지 말라"


"이미그레이션(출입국관리국)이 떴다!" 지난 6월18일 점심을 먹던 압둘 슈만 씨(28·가명)는 숟가락을 내던졌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공장 밖으로 뛰쳐나가 곧장 야산을 향해 뛰었다. 동료들도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다. 길이 없는데도 수풀을 헤치며 그들은 달리고 또 달렸다. 옆 공장의 외국인 노동자들도 산으로 뛰었다. 출입국관리국 직원이 도착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공장 일대가 발칵 뒤집혔다. 외국인 노동자 3백여 명이 달리기 시합을 하듯이 산으로 향했다. 미처 피하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는 공장 안이나 집안 은밀한 곳에 숨었다. 낮 12시에 산으로 도망쳤던 슈만 씨는 밤 8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갔다. 맨몸으로 피했기에 그는 8시간 동안 물 한 방울 먹지 못했다.




21만명에 달하는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계엄령이 떨어졌다. 법무부가 6월18일부터 7월17일까지 경찰·출입국관리국·국정원까지 동원해 특별 단속을 벌이겠다고 선포하면서 슈만 씨처럼 불법으로 체류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특별 단속으로 2천명 이상이 붙잡혔다. 시민단체가 이번 단속을 '인간 사냥'이라고 부르기에 주저하지 않을 만큼, 공장에서 버스 안에서 슈퍼마켓에서 무차별적으로 단속이 이루어지고 있다.


자진 출국 기간에 '건수 올리기' 특별 단속 병행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집해 사는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에도 단속의 손길이 뻗쳤다. '국경 없는 마을'로 유명한 이곳에 지난 6월19일 합동단속반원 10여 명이 들이닥쳤다. 이들이 먼저 찾은 곳은 고시원. 원곡동 일대에는 고시원이 60여개 있다. 보증금 없이 월 15만∼20만 원만 내면 생활할 수 있기에 외국인 노동자가 주로 이용한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단속반은 차를 대기 쉬운 큰길가 고시원부터 조사했다. 이들은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각 방문을 열고 여권을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여권이 없으면 무조건 연행했다. ㅂ 고시원 김석홍 사장이 신분을 밝히라고 요구하자 이들은 단속 중이라고만 말했다.




이 날 단속으로 ㅂ 고시원에서 3명, ㅅ 고시원에서 1명이 붙잡혔다. 인원은 적었지만 파장은 컸다. 단속 소식은 국경 없는 마을에 급속히 퍼졌다. 이 날 단속이 있고 나서 ㅂ 고시원은 방 24개 가운데 절반이 비었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두려운 나머지 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피한 것이다. 밤만 되면 번잡하던 국경 없는 마을의 거리도 통행 금지가 실시된 듯 한산해졌다.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이들은 퇴근 후에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다. 심지어 하루 다섯 번씩 모스크(이슬람교 기도원)에 모여 기도하는 것을 철칙으로 여기는 이슬람교도들조차 집 밖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 불법 체류자 단속이 이슬람교도에게는 종교 탄압이 된 셈이다.


지금까지 특별 단속은 범법자를 적발하기 위해 1년에 한 차례씩 연말에 이루어졌다. 또한 불법 체류자를 줄이기 위해 자진 출국 기간도 따로 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6월11일부터 7월31일까지 자진 출국 기간이라고 정해놓고도 6월18일부터 7월17일까지 특별 단속을 병행하고 있다. 유례 없는 이중 정책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번 특별 단속이 연례적으로 이루어지는 범법자 색출 조처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민단체는 특별 단속이 자진 출국을 종용하기 위한 건수 올리기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비난한다. 안산의 국경 없는 마을에서처럼 단속하기 쉬운 고시원을 덮치거나, 경기도 고양시 가구단지처럼 공장 안에까지 들어가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를 붙잡아 가기 때문이다.




특별 단속이 벌어지는 동안 시민단체의 전화통에는 불이 났다. 한국이주노동자센터는 한밤중에 방글라데시 노동자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단속을 피해 산에 올라왔어요. 우리를 도와 주세요." 경인지역평등노동조합(평등노조) 이윤주 지부장의 핸드폰도 쉴새 없이 울렸다. "의정부로 가는 32번 버스를 탔다가 잡혔어요." "기도 시간에 모스크에 갔다가 20명이 붙잡혔어요." 외국인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인정하는 평등노조에는 비상이 걸렸다. 평등노조는 특별 단속을 알리는 경고문을 만들고, 출입국관리국 앞에서 특별 단속을 중지하라는 규탄 집회를 열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얌체 사업주들은 특별 단속을 교묘히 활용했다.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박천응 목사는 "밀린 임금이나 산업 재해를 당한 노동자에게 보상금을 주지 않기 위해 자발적으로 신고하는 사업주도 있다"라고 귀띔했다.


평등노조나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등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지자, 법무부는 지난 6월28일부터 특별 단속을 중지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단속이 중단되었더라도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인권 침해는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18일 하미르 레자울 군(17)은 집에서 점심을 먹다가 특별 단속에 걸렸다. 1999년 10월 열다섯 살에 코리안 드림을 안고 방글라데시를 떠난 레자울 군은, 이번 단속으로 평생 잊지 못할 상처를 받았다. 8백만원 상당을 송출 브로커에게 주고 꿈에 그리던 한국 땅을 밟았지만,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망가진 몸과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다.


보호 시설 부족해 교도소 수감,
범죄자 취급


출입국관리국 직원에게 체포된 뒤 레자울 군이 연행된 곳은 출입국관리국 보호소가 아니라 의정부 교도소였다. 스무 살도 안된 그는 한국인 범죄자와 똑같이 푸른 수의를 입고 꽁보리밥을 먹으며 범죄자로 취급되었다. 외부 전화도 금지되었다.


불법 체류자는 원래 해당 출입국관리국 보호소로 연행된다. 이곳에서는 외부와 전화 통화도 가능하고, 옷도 그대로 입는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너무 많은 불법 체류자를 잡아들이자 출입국관리국의 보호 시설이 턱없이 부족했다. 고육지책으로 법무부는 의정부나 인천 등 교도소에 불법 체류자를 수감시켰다. 레자울 군은 6월28일까지 꼬박 10일 동안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요도 질환을 앓아온 그는 연행되면서 먹던 약도 챙기지 못했다. 교도관에게 '아프다'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교도소측은 진통제만 지급했다.


6월29일에야 그는 경기도 화성 외국인보호소로 이송되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수용 가능한 인원이 4백명인데, 경기도 화성 외국인보호소는 이번 단속으로 정원이 초과된 5백여 명을 수용했다. 좁은 보호소 방에서 레자울 군은 칼잠을 자야 했다. 그는 이곳에서도 고통을 호소했지만 역시 무시되었다. 지난 7월4일 면회 시간에 평등노조 안정은 간사(28)를 만난 레자울 군은 "아파요 아파요. 너무 아파요"라며 더듬더듬 한국말로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눈물을 글썽였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안정은 간사는 "베티나이도 쏩쏩마이 메씨메씨"라고 미리 적어온 방글라데시 말을 레자울에게 전했다. 담당자에게 아프다고 말하라는 내용이었다.




레자울 군을 면회한 뒤 안정은 간사는 그의 고통을 알리기 위해 담당자를 찾았다. 경기도 화성 외국인보호소 심사과 관계자는 "이 사람 교도소에는 왜 갔어요"라고 물었다. 왜 범죄를 저지르고 교도소까지 갔느냐는 뜻이었다. 안간사는 "우리에게 물어보면 어떡합니까? 당신들이 더 잘 알잖아요"라고 대답했다. 그제야 심사과 관계자는 "아, 교도소나 여기 보호소나 똑같습니다"라며 얼버무렸다. 심사과 관계자는 "치료할 방법은 없다. 아프면 빨리 본국에 송환하는 게 유일한 치료책이다"라고 말했다.


불법 체류자를 교도소에 수감한 것에 대해 출입국관리국 관계자는 "보호시설뿐 아니라 법무부장관이 지정하는 곳은 어디든 수용할 수 있다"라며 아무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교도소에 수감되면 일단 일반 교도소 규칙에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성남 중국동포의집 김해성 목사는 "불법 체류자는 원칙적으로 미등록(undocumented) 외국인이다. 과태료 부과 대상자이지, 중죄인처럼 교도소에 구속될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교도소에서 범죄자와 똑같은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동요하고 있다. 레자울 군이 붙잡혔던 경기도의 한 가구공단에는 외국인 노동자가 천명이 넘게 살고 있다. 방글라데시·인도네시아·필리핀 등 동남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대부분인데, 이들이 자체 운영하는 공동체 조직이 있다. 지난 7월1일 레자울 군 소식을 접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공동체 모임을 열었다. 회장 릴라 씨(30·가명)는 "우리는 범죄자가 아니다. 우리를 함부로 대해서는 안된다"라고 한국 정부를 성토했다. 20여 명이 모인 이 날 모임에서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받았는데 당장에 반납해야 한다. 우리를 동물 취급 하는 나라의 대통령이 받을 상은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던 레자울 군은 지난 7월7일 오후 3시40분 비행기로 한국을 떠났다. 그는 다시는 한국에 오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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