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다 싫어 <조선일보>"
  • 권은중 기자 (jungk@e-sisa.co.kr)
  • 승인 2001.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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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가 '안티조선' 들불처럼 번져…
구독·입사·기고 거부하는 '3불운동' 계획


올해 〈조선일보〉 수습 기자 공채 지원자 숫자는 왜 그렇게 적은가. 또 결시율은 왜 그렇게 높은가.' 언론계에서 말이 많다.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세무 조사를 지루하게 비판해온 〈조선일보〉에 대한 젊은층의 중간 평가라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지난 6월18일부터 41기 수습 기자를 모집한 〈조선일보〉에 지원한 사람이 6백20명에 그친 데다, 2백60명이 시험을 보지 않아 결시율이 43%에 달했다. 비슷한 때 수습 기자를 뽑은 〈동아일보〉에 1천5백명, 〈경향신문〉에 7백명이 지원한 데 비해, 업계 최고 대우를 해주는 〈조선일보〉 지원자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 인사팀 이영훈 과장은 "이번 공채부터 학벌을 따지지 않기 위해 서류 전형을 없앴다. 대신 지원 자격을 강화했다. 그래서 지원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가 지원자에게 요구한 자격은 '토익 820점·토플 PBT 580점·CBT 237점, 텝스 730점·한자능력검정시험 3급' 가운데 하나 이상 충족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가난하더라도 당당한 기자 되겠다"


〈조선일보〉 관계자들은 서류 전형을 한 1999∼2000년 지원자들에게 올해 지원 자격을 들이대면 1999년 지원자 1천13명 가운데 5백2명, 2000년 지원자 6백63명 가운데 3백40명만이 자격이 충족된다고 말했다. 따라서 올해 지원자 6백50명은 예년에 비해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올해 결시율이 43%로 높았다고 하지만, 인터넷으로 지원서를 받은 1999년부터 매년 결시율은 40%대였다고 밝혔다.


그렇지만 '언론 고시'를 준비했던 대학생들은 〈조선일보〉와는 다르게 말한다. 절대 다수는 아니지만 〈조선일보〉에 원서를 내고 시험 치르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생겼고, 그것이 이번 시험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고려대 정외과 이 아무개씨(29)는 "언론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 사이에 〈조선일보〉 시험을 보겠다고 말하기 쑥스러운 분위기가 생겼다. 아예 시험을 안 보겠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성균관대 신방과 선 아무개씨(27)는 "과에서 여론을 주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진보적이어서 〈조선일보〉를 싫어한다. 자연스럽게 입사 시험을 보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라고 밝혔다.


언론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잘 알려진 웹진 〈언론고시〉 게시판에서는 시험을 앞두고 〈조선일보〉에 지원하지 말자는 운동까지 펼쳐졌다. 이 사이트에서 시험 거부를 선언했던, '횃불을 들라'는 아이디를 쓰는 고려대의 한 학생은 "돈·지위·시스템에서 〈조선일보〉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가난하더라도 당당한 기자가 되기 위해 〈조선일보〉 시험을 거부하겠다"라고 주장했다. 이 운동에 참여했던 연세대 정외과 유 아무개씨(아이디:촘스키)는 "〈조선일보〉에 들어가서 〈조선일보〉를 바꾸자는 반론도 있었지만 그런 조직에서 내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곳에서 일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시험 거부운동에 대한 반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언론고시〉 사이트에는 "실력이 없으니까 못가는 거지, 안 가는 거냐"는 비아냥과 "들어가서 개혁하자"는 신중론도 제기되었다. 언론사가 기자를 10명 남짓 뽑고, 시험을 치르는 시기도 제각각인 만큼 〈조선일보〉 시험을 안 보기는 어렵다는 현실론도 나왔다. 서울대 사회학과 신 아무개씨는 "다섯 곳 시험 봐서 세곳에 합격한다면 당연히 〈조선일보〉에 안 가겠지만, 언론 고시 특성상 불가능하다. 실력이 되면 〈조선일보〉 시험을 볼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조선일보〉 입사 거부운동이 언론사 세무 조사 이후 대학가에서 다양한 형태로 벌어지는 안티조선 운동의 하나로 보기도 한다. 그만큼 대학가에서는 안티조선 운동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으며, 구체적인 행동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까지 안티조선 모임이 결성된 학교는 전북대·부산대 등 몇 군데 되지 않았지만 올해는 서울대·연세대·고려대를 비롯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부산대 학생들은 7월10∼15일 안티조선 1인 시위를 부산역 앞에서 펼치고 있다.


특히 방우영 〈조선일보〉 회장이 재단 이사장으로 있는 연세대에서 이런 움직임이 가장 활발하다. '〈조선일보〉를 반대하는 연세인 모임'(조반연)은 올 4월에 만들어졌는데 두 달 사이에 회원이 2백명으로 늘었다. 강준만 교수가 재직하는 전북대 안티조선 모임의 회원 수가 50여 명인 것과 비교된다. 연세대 오승훈씨(25)는 "방우영 회장이 연세대 재단 이사장이라는 점 때문에 이 신문에 대한 거부감이 더 크다"라고 분석했다. 조반연 학생들에 따르면, 연세대에는 친〈조선일보〉 교수들이 유난히 많은데, 이 교수들과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언론 개혁을 놓고 빈번하게 충돌했다고 한다. 조반연도 지난 5월 신방과 수업 때 한 교수와 설전을 벌이던 학생들이 의기 투합해서 만든 것이다. 그래서인지 조반연이 만든 신문 〈조선바보〉에서 '연세 친〈조선〉인물 열전'이 가장 인기가 높다.




이런 추세를 반영하듯 안티조선 모임이 있는 대학의 학생들은 7월12일부터 신문 개혁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아 7월19일 서울 안국동 카페 느티나무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신문개혁 1차 대학생 선언'을 할 계획이다. 대학별 안티조선운동의 연합체인 우리모두(www.urimodu.com) 학생분과를 맡고 있는 중앙대 김재선씨(23)는 "미래의 지식인인 대학생들이 〈조선일보〉가 개혁되기 전까지 〈조선일보〉를 구독하지 않고, 입사하지 않고, 기고하지 않겠다는 '삼불(三不)운동'을 벌일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젊은층 열독률,
〈중앙일보〉가 〈조선일보〉 앞서


이런 움직임을 반영하듯 최근 열독률 조사에서 젊은층은 〈조선일보〉보다 〈중앙일보〉를 더 많이 읽는 것으로 나타난다. 광고주협회 수용자 조사나 최근 여론조사기관의 열독률 조사에서 전체 집단에서는 〈조선일보〉가 〈중앙일보〉를 눌렀지만 젊은층에서는 〈중앙일보〉가 앞섰다. 지난 4월 발표된 광고주협회 수용자 조사 결과, 전체 표본을 놓고 볼 때 〈조선일보〉의 1주 접촉률(19.9%)이 〈중앙일보〉(19.5%)에 비해 근소하게 앞섰지만 20·30대 남자의 경우 〈중앙일보〉 (21.4%·28.7%)가 〈조선일보〉(18.7%·25.3%)보다 각각 높았다.


국내 굴지의 광고대행사가 최근 조사한 열독률 조사(4월)에서도 이런 현상은 다시 한번 확인된다. 전체 남자의 〈조선일보〉 열독률(29.5%)은 〈중앙일보〉(25%)보다 높았지만 10·20대 남자의 열독률은 〈중앙일보〉(21.7%·29.4%)가 〈조선일보〉(19.3%·28.2%)보다 앞섰다.


젊은 세대들의 이런 추세에 대해 〈조선일보〉측은 느긋하다. 〈조선일보〉의 한 기자는 "우리도 사석에서 안티조선을 고민하지만 안티조선은 다수의 아젠다가 아니다. 〈조선일보〉가 그렇게 문제라면 왜 호남에서, 또 대학생들 사이에서 1등이라는 조사가 나오는가"라고 반문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라는 한 신방과 교수는 "색깔론으로 편가르기에 골몰하던 〈조선일보〉가 젊은층을 비롯해 교수들에게까지 따돌림을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더 이상 늦기 전에 변화를 바라는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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