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는 독극물보다 진하다?
  • 고제규 기자 (unjusa@e-sisa.co.kr)
  • 승인 2001.07.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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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포름알데히드 방류 지시자 승진시켜…
증언한 한국인은 해고


지난 7월10일 용산 미군기지 영안실에서 근무하는 유원희씨(61)는 해직 통보서를 받았다. 주한미군은 인력 감축 방침 때문에 부득이하게 7월31일부로 해직한다고 이유를 밝혔다. 비록 정년을 넘겼지만, 지난 2월 그녀는 3년간 연장 근무를 보장받았다. 미군 기지 근로자들은 보통 60세가 정년이며, 본인이 희망할 경우 63세까지 임시직으로 연장 근무할 수 있다.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한국인 근로자에 대한 해고는 직속 상관의 의견이 중요한데, 그녀의 직속 상관은 지난해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하라고 지시한 맥팔랜드였다. 유씨는 지난해 주한미군이 한강에 독극물을 방류한 문제의 영안실에 근무했던 유일한 한국인 근로자다.




지난해 7월13일 녹색연합과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는 주한미군이 한강에 포름알데히드를 무단 방류했다고 폭로했다.


사건 당시 영안실에는 소장인 풀, 부소장인 맥팔랜드, 한국계 미군 군속 김 아무개씨, 한국인 유원희씨가 근무했다. 미군 당국은 이들을 모두 조사한 뒤 풀과 맥팔랜드에게 각각 30일·45일 감봉 처분을 내렸다. 반면에 미군 자체 조사 과정에서 방류 사실을 시인하고, 맥팔랜드의 강압적인 지시가 있었다고 진술한 한국계 미군 군속 김 아무개씨는 재계약을 맺지 않고 해고했다. 유원희씨도 미군 조사에서 김씨가 포름알데히드를 방류한 것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지난 4월 임기가 끝난 풀 소장이 떠나면서 맥팔랜드가 소장 직을 맡았다(직급이 GS11에서 GS12로 승진). 맥팔랜드가 승진하면서 유원희씨는 해직 통보를 받은 셈이다. 유원희씨는 "3년간 연장을 보장받았는데도 해직시킨 것은 지난해 한강 독극물 방류 사건과 관련된 보복이다"라고 주장했다. 유씨의 이번 해직에는 맥팔랜드뿐 아니라 7월16일 본국으로 전보되는 H대령의 입김도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지역 사령관으로,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 때문에 곤욕을 치른 H대령이 떠나면서 그녀를 해직하라고 인사처에 지시했다고 주한미군 관계자는 귀띔했다.


이로써 무단 방류를 저지하려 했던 근로자들은 모두 해고되었고, 방류를 지시했던 맥팔랜드는 영안실 소장으로 승진해 포름알데히드를 관리하고 있다. 용산기지에 근무하는 한 근로자는 "맥팔랜드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이제 한강 물은 더 마실 수 없다"라고 걱정했다.


정화시설 아직도 안 갖춰


〈시사저널〉이 입수한 자료는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했다. 영안실을 관리했던 군수처 소령의 기록에 따르면, 영안실에는 여전히 정화시설(sump pump system)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소령은 '정화시설 미비가 얼마나 큰 환경문제를 일으키는지 미군 군수처는 잘 알고 있다. 정화시설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라고 기록에 밝혔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영안실에서 하수구로 독극물이 흘러 들어가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이 문제는 미군 당국도 잘 알고 있다'라며, 여러 번에 걸쳐 포름알데히드를 비롯한 독극물이 방류되었음을 암시했다. 지난해 독극물 방류는 단 한번뿐이었으며, 상부에 보고되지 않았다는 공식적인 변명과는 대조적이다.


지난 4월5일 법원(담당판사 오재성)은 맥팔랜드를 정식 재판에 회부했다. 그러자 미군 당국은 그에게 '공무수행 증명서'라는 면죄부를 발급했다. '공무 수행중 범죄에 대한 1차적인 재판권은 미군이 행사한다'는 한·미행정협정 조항을 근거로 맥팔랜드가 한국 법정에 서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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