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일 '갈등의 바다'에 화해의 물결 넘실
  • 박병출 부산 주재 기자 ()
  • 승인 2001.09.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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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26개 대학,
해양자원 공동 연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 진행키로


동해와 동중국해는 한·중·일 바다 국경이 그물코처럼 얽혀 3국간 치열한 생존 경쟁의 무대가 되어 왔다. 그러나 앞으로 적어도 한국과 일본만큼은 '바다 동맹'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수역을 대상으로 양국 학자들이 대거 참여하는 초대형 공동 연구 프로젝트가 출범했기 때문이다.




부산 부경대학교(총장 강남주)는 최근 한국과 일본의 연근해 해양수산자원을 공동으로 연구 조사하고 그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양국 수산학자 1백75명이 참여하는 '한·일 수산학 국제 공동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프로젝트는 올해부터 2010년까지 10년간 시행하게 된다. 한국의 부경대와 일본의 홋카이도 대학이 거점 대학이 되어 추진하는 이번 프로젝트에는 수산 관련 학과를 개설한 경상대·군산대·제주대·여수대·강릉대 등 국내 13개 대학과 도쿄 대학·도쿄수산 대학 등 일본의 13개 대학이 협력 대학으로 참여한다. 거기에 양국의 수산·식품 관련 기관 연구자들도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는 등 사실상 양국의 해양·수산 및 관련 분야 연구자들이 망라될 예정이다.


연구진은 앞으로 10년간 △동해와 동중국해의 해양 환경 및 수산 자원 변동 규명 △선택성 어획 기술과 자원량 평가기법 개발 △건강한 어패류 품종 개발과 종묘 생산·육성 기술 개발 △미이용 자원에 대한 식량·건강식품·의약품 이용 기술 개발 등 4대 과제를 공동으로 추진한다. 이 과정에서는 한·일 양국 수역에 분포한 어류를 망라한 어류도감을 발간하고 아직 밝혀내지 못한 연어와 송어의 회유 경로를 규명하는 등 부수적인 성과들도 기대되고 있다.


경성대와 일본 홋카이도 대학 합작품




한국측 책임연구원으로 선임된 부경대 이주희 교수(수산학 박사)는 이번 프로젝트의 숨은 산파이다. 부경대의 전신인 부산수산대학을 졸업한 그는 1985년부터 모교 해양생산관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한·일 수산학계 사이에 길을 트는 데 힘을 쏟아 왔다. 일본 수산학계의 양대 인맥을 이루고 있는 동경수산 대학과 홋카이도 대학에 유학한 것이 큰 힘이 되었다. 이번 프로젝트도 경성대가 자매 학교인 홋카이도 대학과 공동으로 입안하고, 일본 학술진흥회와 한국과학재단의 승인을 받아 이루어졌다. 두 단체는 10년 동안 프로젝트 진행비로 60억원을 공동 지원하고, 양국의 연구자 1명 이상이 공동 참여해 진행하는 개별 연구 과제에는 연구비를 별도로 지원한다.


이교수는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동해와 동중국해의 자원 변동에 대한 장기 예측이 가능해지고, 데이터를 공유하고 동일한 자원 해석 기법을 적용함으로써 서로 신뢰를 쌓고 수산자원 공동 관리를 촉진하는 성과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는 국내의 반일 감정에 대해, 국민 정서는 표출하되 교류 단절 등 지나친 감정적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밝혔다. 좁은 바다를 함께 사용해야 하는 양국의 처지이므로 갈등과 대립보다는 연구를 통해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인식을 공유하고 공동의 이익을 찾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경성대가 프로젝트 출범을 발표한 8월 21일은, 일본이 우리 어선들의 쿠릴 열도 조업에 대한 보복 조처로 산리쿠 해역 조업 허가장 발급 시한(8월 20일)을 그냥 넘겨버린 다음날이었다. 공동 연구진은 이날 오후 경성대에서 프로젝트 출범을 기념하는 공동 학술 세미나를 열었고, 앞으로도 세미나를 통해 연구 과정에서 확보한 정보와 성과를 수시로 나눌 계획이다. 일본에 대한 감정이 과거 어느 때보다 좋지 않은 시기에, '상생(相生)'을 향한 또 다른 걸음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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