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솟아날 구멍도 막아라" 방공망 재구축 경쟁
  • 박성준 기자 (snype00@e-sisa.co.kr)
  • 승인 2001.10.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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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 · 레이더 '방패 산업' 활기…한국군에도 '발등의 불'
디펜스 앤드 스페이스(EADS)·보잉·록히드마틴·노스롭 그루먼·레이시온…. 이들은 세계 군수산업을 주무르는 최첨단 무기 회사들이다. 군수산업에 불황이 닥쳤던 1990년대 중반 이들은 기업 합병·매수와 대규모 구조 조정 등을 통해 한 차례 생존 게임을 펼쳤다. 이 회사들이 21세기에 들어오자마자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뉴욕과 워싱턴을 강타한 9·11 테러 참사와, 곧이어 시작된 테러와의 전쟁 덕분이다.




특히 9월11일 테러 참사 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두 도시 뉴욕과 워싱턴의 하늘이 뚫린 일이 이들에게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방공망을 재정비하는 일이 세계 각국의 안보에 긴급 현안으로 떠오르면서 이른바 '방패 산업'이 급신장할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관심은 우선 미국으로 쏠린다. 미국은 이미 방공망 구축 사업을, 21세기 최대의 군사 과제로 지목한 미사일방어(MD) 계획과 연계할 뜻을 분명히했다. 테러 참사 직후 미국에서는 미사일 방어 계획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이 고개를 들었다. '민간 항공기에 의한 테러에도 무방비인 처지에 무슨 가당치 않은 미사일 방어 계획에 천문학적 돈을 쏟아붓느냐'는 것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반전되고 있다. '9·11 테러 참사'를 오히려 미사일방어 추진의 구실로 삼으려는 움직임이 분주해지고 있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공습이 한창이던 지난 10월11일, 미국 부시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기자들이 테러 참사 이후의 미사일방어 계획에 대해 묻자 "9·11 테러 사건으로 미사일방어의 필요성이 입증됐다"라고 주장했다. 이 계획을 둘러싼 논란에 마침표를 찍고 계획을 가속화할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미사일방어 계획이 '순조롭게' 추진된다면, 1차 집행 대상은 전역미사일방어(TMD) 체제 중 지표면으로부터 20km 미만 저고도 대기권에서 적의 단거리 미사일·항공기·순항 미사일 따위를 요격하는 것을 목표로 한 '저층 방어형'이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전역미사일방어는 적의 장거리 미사일, 즉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로부터 미국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계획인 국가미사일방어(NMD)와 함께 미사일방어를 구성하는 두 축인데, 미국은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이미 당장 실행에 옮겨도 될 만큼 기술적 진보를 이룩해 놓았다. 전역미사일방어의 핵심은 요격 미사일 기술이다. 미국 레이시온 사가 만드는 패트리어트 신형(PAC3)은 이미 실험 평가를 마무리짓고 주한미군·주일미군 등 해외에 주둔한 미군 기지 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은 '패트리어트 신형', 유럽은 '애스터' 개발




패트리어트 신형은 목표물 근처에서 폭발해 그 충격으로 목표물을 요격하는 재래형 PAC-2와 달리, 목표물을 따라가서 맞추는 '히트-투-킬(hit-to-kill)' 방식을 채택했다. 그만큼 요격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유럽과 일본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영국의 브리티시에어로스페이스·프랑스의 에어로스페시알·이탈리아의 알레니아 마르코니 시스템 등이 합쳐 1999년에 설립한 디펜스 앤드 스페이스는 최근 합병한 지 3년 만에, 방공망과 관련된 주목할 만한 신제품을 내놓았다. 70∼120 km 떨어진 목표물을 마하 3.5∼4.5의 속도로 날아가 명중시키는 지대공 미사일 '애스터(aster)' 시리즈 두 종을 선보인 것이다.


디펜스 앤드 스페이스 한국 지사 김 양 고문은 "이 무기에는 '피프 파프'라는 신기술이 적용됐다"라고 소개했다. 이 기술은 표적의 갑작스러운 방향 변화에 맞추어 미사일 방향도 함께 바꾸도록 해 그만큼 명중률을 높인 것이다. 애스터 미사일은 사거리에 따라 애스터15와 애스터30으로 나뉘는데, 이 중 애스터15는 프랑스 항공모함 샤를르드골 호 등에 이미 실전 배치되었으며, 애스터30은 최근 개발을 막 끝냈다. 두 미사일은 항공기·미사일을 요격하며, 패트리어트 신형과 마찬가지로 '히트-투-킬' 방식을 채택했다.


군사 월간지 〈밀리터리 월드〉 안승범 편집장은 "방공망 재구축 경쟁은 이미 전세계에서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다"라고 잘라 말했다. 미국의 미사일방어, 미국과 독일·이탈리아 등이 유럽에 실전 배치할 목적으로 공동 개발 중인 '중범위 확장형 항공 방어 체제(MEADS)',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 1999년 양해 각서를 체결한 '해상 미사일 방어 체제 공동 연구 계획' 등이 모두 방공망 재구축 사업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방공망 구축과 관련된 세계적 추세는 차세대 미사일 도입 사업인 샘(SAM)-X, 한국형 대공 미사일 개발 사업인 KM-SAM 등 국내의 굵직굵직한 방공망 재구축 사업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샘-X는 비용(약 2조5천억원 소요 예정)에 비해 효율이 의심스럽다는 지적을 받아온 PAC3 도입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실전에 배치된 지 40년이 넘은 호크 미사일(중고도 및 저고도 침투 항공기 방어용)을 대체하기 위해 국방과학연구소가 독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KM-SAM도 중대 전기를 맞고 있다. 노후한 나이키허큘리스 미사일을 대체할 계획인 샘-X를 값이 비싸 도입하기 어렵게 되자 KM-SAM을 아예 샘-X의 대안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국방부는 사안의 민감성과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 이 문제에 대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만, 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당국이 KM-SAM을 나이키급도 아우를 수 있게 두 가지 버전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다'는 말도 흘러나온다. 어느 쪽이 되었든 방공망 체계 업그레이드 작업은 현재 한국군에게도 '발등의 불'이다. 한 군사 기술 개발 관계자는 "분명한 사실은 KM-SAM은 현재 일반 항공기는 물론 탄도 미사일 요격 능력까지 갖는 첨단 무기로 개발될 것이며, 현재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라고 말했다.


9·11 테러 참사와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이처럼 현대 안보에서 방공망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시키며 세계 각국으로 하여금 냉전 이후 최대의 군비 경쟁을 하도록 부추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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