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렁이는 경찰 조직 "포돌이가 동네북이냐"
  • 차형석 기자 (papapipi@e-sisa.co.kr)
  • 승인 2001.1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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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영 전 청장 구속에 일선 경찰 거세게 반발
'포돌이 조직은 동네북이 아니다.' '이무영 전 청장을 위해 모금 운동을 전개합시다.' 지난 12월10일 '수지 김 살인 사건' 은폐 혐의로 이무영 전 경찰청장이 구속 수감된 이후 각 경찰서 홈페이지에는 충격과 분노에 휩싸인 경찰들의 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검찰과 국정원이 수지 김 사건 조작을 경찰이 주도한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는 비판이 주를 이루어 자칫 국가기관 간의 갈등으로 비화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경찰들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 전 청장이 '개혁의 전도사'로서 경찰 조직원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아왔기 때문이다. 이씨는 경찰청장 재직 시절 24시간 격일제 파출소 근무를 12시간 3교대제로 전환하고, 중·하위직 경찰들의 봉급을 대폭 인상해 일선 경찰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20년 동안 경찰 생활을 해온 수원남부경찰서 김인수 경위는 경기지방경찰청 홈페이지에 검은 리본을 달고 근무하자는 글을 올렸다. 김경위는 "경찰 개혁의 상징이었던 이 전 청장이 구속된 것에 대해 동료들이 분개해 검은 리본을 달고 근무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희생양론' 비등…
'경찰 독립론'도 다시 불거져


또한 '희생양론'도 경찰 내부에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수지 김 사건의 본질은 1987년 당시 누가 이 사건을 조작하고 은폐하려 했는지를 밝히는 데 있는데, 이런 본질이 왜곡되었다는 시각이다. 대공·대북 관련 사건의 경우 국정원이 수사 조정 통제권을 쥐고 있어 경찰은 피동적 입장이 될 수밖에 없는데도 '힘 없는' 경찰이 '독박'을 썼다는 주장이다. 이씨가 구속된 다음날인 12월11일 수지 김 사건 당시의 안기부장 장세동씨가 소환되었다. 장씨는 "조직의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라고 하면서도 시종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그 날 이후 '이무영씨는 희생양'이라는 경찰 내 여론이 비등했다.


경찰 독립론도 다시 불거져 나오고 있다. 황운하 용산서 형사과장은 "단순히 이무영 개인을 구하기 위한 차원이 아니다. 경찰들이 식민-지배 관계라 할 수 있는 검-경 관계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황과장은 1999년 6월 성동경찰서 재직 시절 검찰에 파견된 부서 직원을 복귀시킨 적이 있었다. 지난 4월에는 경찰대 총동문회장으로서 부평 폭력 진압 사건 이후 경찰의 자성을 촉구하는 성명을 주도했었다. 황과장은 "이무영씨의 유·무죄 여부와 상관없이 경찰은 이 사건을 계기로 독자적 수사권 논의를 공론화해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일선 경찰들과 달리 경찰청은 경찰의 반발이 국가기관 간의 갈등 양상으로 비칠까 봐 경계하는 분위기이다. 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국민이 경찰도 분명히 잘못했다고 보는 상황에서 표적 수사라고 하면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결코 조직에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또한 "월드컵과 지방 선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경찰의 수사권 독립을 논의할 시기도 아니다"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경찰의 성토에 대해서 검찰은 '법대로 처리했다'며 끄떡도 하지 않는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무영씨가 바로 얼마 전까지 15만 경찰의 총수였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했다. 그렇지만 살인 사건을 은폐하려 했다는 건 대단히 큰 범죄 행위이므로 대상이 누구라도 당연히 처벌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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