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대 매춘’ 전쟁, 피도 눈물도 없다
  • 나권일 기자 (nafree@e-sisa.co.kr)
  • 승인 2002.0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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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동 윤락 여성들 ‘인권 침해 진정’ 막전막후
한겨울 서울 천호동 윤락가에 모진 삭풍이 불고 있다. 한치 타협 없이 쫓고 쫓기는 천호동 윤락가 전쟁은 벌써 6년째 현재진행형이다. 불법임을 인정하면서도 ‘생존권’을 주장해온 윤락업주와 매춘 여성들은 급기야 지난해 말 가슴 속에 삭여두었던 경찰의 과잉 단속과 ‘인권 침해’ 실태까지 공개했다. 불시에 역습을 당한 경찰은 이제는 단 한 건의 매매춘도 허용할 수 없다는 듯 밤마다 윤락가를 이잡듯이 뒤지고 있다.



매춘 여성들의 국가인권위 진정은 확전을 앞당긴 도화선이었다. 속칭 천호동 텍사스에서 일하는 매춘 여성 70명은 지난 1월4일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김창국)를 찾아 자신들이 낸 인권 침해 진정에 대해 조속히 조사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들의 대표단 격인 여성 11명은 두터운 겨울옷과 목도리·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지만, 인권위 사무실에서 기자들의 질문과 사진 취재를 거부하지 않는 ‘용기’를 보였다.



대형 버스 2대를 전세 내어 집단으로 국가인권위를 찾은 여성들의 ‘시위’는 상당한 파장을 몰고왔다. 일부 언론은 ‘인권 유린’은 안된다며 매춘 여성들을 동정했다. 경찰의 과잉 단속을 비판하는 소리도 터져나왔다. 사실 유례 없는 매춘 여성들의 인권위 진정은 지난 수년 동안 경찰이 천호동에서 진행해 온 ‘윤락과의 전쟁’이 가져온 결과이다.



1996년 당시 김기영 강동경찰서장이 시작한 ‘사창가와의 전쟁’으로 한때 1백70여 업소에 천 명이 넘는 ‘아가씨’들을 자랑하던 천호동 텍사스는 2000년대 들어 50여 개 업소로 줄어들었다. 특히 2001년 1월 주상룡 총경이 강동경찰서장으로 취임한 뒤 윤락 단속에 관한 한 ‘피도 눈물도 없다’는 이종선 경위(현재 천호3동 파출소장)가 천호4동 파출소장을 맡아 앞장을 섰다.


윤락가 입구에는 ‘청소년 통행금지 구역’이라는 녹색 전광판이 설치되었다. 호객 행위가 이루어지는 주요 길목에 폐쇄 회로 TV(경찰은 ‘골목 TV’로 부른다) 4대를 가동해 호객 행위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전쟁을 선포한 경찰은 업주들과 마주쳐도 ‘커피 한잔’ 함께 마시지 않았다. 낮에는 눈인사만 나누며 소 닭 보듯 하던 경찰과 업주들은 밤이면 서로 숨바꼭질하듯이 소규모 전투를 되풀이했다.


단속에 지친 업주들은 처음에는 경찰에 ‘협조’하는 방법으로 활로를 찾았다. 업주들과 토지 소유주는 윤락업소로 쓰던 건물을 헐어 주차장을 만들었고, 비밀 통로와 쪽문도 철거했다. 업주들은 내심 ‘미아리나 청량리 정도로 단속이 완화될 것’으로 기대했다.


“알몸 사진 찍고 구타” 주장에 “사실무근” 반박


그러나 강동경찰서는 지난 한 해 1백30건의 윤락 행위를 적발하고 세 차례 이상 적발되는 호객꾼은 구속하는 고강도 단속을 계속했다. 강동구 여성단체들도 ‘윤락행위방지법’을 보완한 ‘성매매방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윤락가 앞에서 시위까지 하며 업주들을 압박했다.



‘천호동 423번지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결성된 것은 업주들에게 치명타였다. 서울시와 강동구청은 천호동 423번지 일대를 아파트나 주상복합건물 신축이 가능한 ‘준주거지역’으로 용도 변경을 해 달라는, 토지 소유주와 건물주 30여명의 민원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재건축이 추진되면 윤락가는 빠르면 내년부터 철거에 들어간다.


매춘 여성들의 국가인권위 진정은 이러한 윤락과의 전쟁 와중에서 터져나왔다. 현재 가장 큰 관심사는 천호동 매춘 여성들이 주장하는 대로 경찰이 인권을 침해했느냐 하는 문제이다.


천호동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이 아무개씨(28)와 유 아무개씨(24) 등 매춘 여성 8명은 지난해 12월21일 인권위 최초 진정에서 ‘2001년 8월께 파출소 직원이 업소 문을 부수고 들어와 손님도 없는데 욕설과 구타를 했다. 파출소에서 조서를 작성하는데 거짓말을 한다며 머리를 때렸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 ‘경찰이 옷을 벗겨 나체 사진을 찍어 갔고, 수갑을 채워 욕설과 손찌검을 했다’며 천호4동 파출소와 강동경찰서 직원을 가해자로 지목하는 진정서를 냈다.


인권위 진정을 주도한 이 아무개씨(28)는 “알몸 촬영은 지난해 2∼3월 업소 현장에서 일어난 일로 모두 사실이다. 경찰은 이미 진정자들의 명단까지 다 알고 있고, 증거물인 사진도 벌써 인멸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씨는 “나는 파출소에 끌려간 경험이 없어 자세한 내용은 알지 못한다. (단속 때문에) 상황이 나빠졌다”라며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했다.


심각한 인권 침해가 자행되었다는 매춘 여성들의 진정에 대해 경찰은 한마디로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천호4동 파출소 관계자는 “남녀가 알몸으로 함께 있는 현장을 급습해 증거로 삼기 위해 찍는 경우는 더러 있지만 강제로 옷을 벗기지는 않는다. 윤락 행위 조사의 특성상 구체적인 성행위 내용을 물어 봐야 하기 때문에 원색적인 용어들이 튀어나오고 윤락녀들이 거짓말하면 호통을 치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 윤락업주는 “경찰은 밤에 2∼3시간 동안 현장에 꼼짝 않고 잠복해 있다가 가이드가 손님을 데려가면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 현장에서 알몸 사진을 찍는다. 현장을 놓치면 아가씨들에게 그 전날 ‘연애’한 일을 추궁하고 협박해 사건을 처리하기도 한다”라고 주장했다. 업주들로 구성된 ‘천호동 주변 정화위원회’ 총무는 “경찰이 강제로 찍은 알몸 사진 여러 장과 ‘윤락녀 OOO’이라는 팻말을 들고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다. 때가 되면 공개하겠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자에게 사진을 직접 보여주는 것은 거절했다.


여성부의 의뢰를 받아 대도시 집단 성매매 지역을 중심으로 ‘성매매 실태의 성산업구조에 관한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는 보건사회연구원 김승권 박사 역시 “천호동 여성들을 현장 조사했지만 인권 침해 주장은 많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업주와 매춘 여성들이 인권위에 진정한 진짜 목적은 ‘인권 회복’이 아니라 ‘단속 완화’가 아니겠느냐고 보기도 한다.



이와 관련해 한때는 업주였지만 빚더미에 올라 앉아 호객꾼 생활만 6년째 하고 있다는 김 아무개씨는 “사실 아가씨들이 거기(인권위) 찾아간 이유는 인권도 중요하지만 단속 때문에 돈을 못벌어 생존권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에 100여 건이 적발되었지만 미성년자 윤락은 한 건도 없었다. 성인 윤락은 대충 눈감아 주는 다른 윤락가와 형평을 맞춰달라는 것이 우리들의 솔직한 심정이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미 조금이라도 ‘여유가 있는’ 업주와 매춘 여성들은 매춘 단속이 그리 심하지 않은 미아리·청량리·용주골 등으로 옮겨갔다. 남아 있는 업소 30여 곳과 호객꾼 40여 명, 매춘 여성 1백30여 명은 떠날 곳조차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 한 윤락 여성의 말이다.


윤락 여성들, 하루에 ‘2~3개씩’ 실적 올려
벌금 수백만원과 구속을 각오하는 위험 부담 때문에 천호동은 업주와 매춘 여성이 수입을 50 대 50으로 공평하게 나눌 정도로 다른 윤락가보다 조건이 나아졌다. 일부 여성은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PC방이나 비디오방을 자유롭게 드나들기도 한다.


특히 통유리를 통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서울 미아리·청량리·영등포와 달리 천호동 매매춘 업소는 밤에도 불이 꺼진 개점 휴업 상태이지만 호객꾼들의 귀신 같은 ‘영업력’으로 아직까지 매춘 여성들이 한 사람당 하루 2∼3개(업주들은 매춘 여성들의 윤락 횟수를 갯수로 표현한다) 실적을 올리고 있다. 경찰이 물샐 틈 없는 단속을 벌인다고 하지만 천호동 423번지에서 잔뼈가 굵은 업주와 호객꾼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진정 사건의 파문에도 불구하고 강동경찰서의 단속 의지는 확고하다. 오히려 경찰은 인권위 조사 결과 매춘 여성들의 주장이 거짓으로 밝혀지면 무고죄가 성립한다며 으름장까지 놓고 있다. 지난해 천호4동 파출소에 근무했던 한 경찰은 “매춘 여성들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그 때문에 또 다른 인권 침해를 당하는 주민과 행인 들의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 불법 행위 단속은 변함없는 경찰의 임무이다”라고 말했다. 국가 인권위는 곧 사실 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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