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살 의심할 정황·증거 있지만…”
  • ()
  • 승인 2002.03.19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 훈 중위 사망 사건 1심 재판부, 의문사 인정…손해배상 청구는 기각
1998년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인근 지하 벙커에서 사망한 김 훈 중위 사건에 대해 세 차례에 걸친 군 당국의 수사와 자살 발표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의문사로 간주했다. 현재 이 사건은 유족(김 척 예비역 중장)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해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이다.





지난 1월31일 1심 재판부는 수사 잘못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기각했지만 판결문을 통해 이 사건이 ‘의문사’임을 분명히했다. 재판부는 판결문 소결론에서 ‘이 사건에서 나타난 증거들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느 증거에 더 큰 비중을 두느냐에 따라 타살이라고 확신하는 측과 자살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측이 나뉘어 있다. 새로운 결정적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 한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진실을 발견한다는 것은 이미 인간의 능력 범위를 벗어난 듯하다’라고 적었다. 결론적으로 자살이냐 타살이냐 여부를 지금으로서는 가리기 어렵다는 뜻인 셈이다.



재판부는 특히 초동 수사 미흡, 유류품에 대한 임의 조작, 현장에서 격투 흔적이 있었다는 점, 자살 동기의 비합리성 등 타살로 의심할 정황과 증거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수사기관의 고의 과실이라고는 볼 수 없다는 입장에서 국가의 배상 책임을 면해주었다. 이 때문에 유족과 천주교인권위원회는 이 판결이 모순덩어리라고 반발하며 즉각 서울고등법원에 항소장을 제출했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가슴에 묻고 지난 4년간 진상 규명에 매달려온 김 척씨는 이렇게 말했다. “재판부가 자살도 타살도 아닌 미제 사건으로 결론을 내놓고도 국가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채 망자와 유족에게 불리하게 판결했다. 이것은 헌법 정신에 비추어 공권력이 약자를 묵살한 경우이다. 최소한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더 기다리도록 하는 것이 망자와 유족의 명예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진실의 승리를 위해 법정 안팎에서 계속 싸우겠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