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아들의 죽음 책임져라”
  • 정희상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2.03.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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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당국, 의문사 166건 재조사 ‘시늉’만…유족들, ‘순직’ 처리 목표로 소송
경기도 평택에 사는 윤옥순씨(66)는 군에 보낸 아들이 의문사한 뒤 가슴에 못이 세 번 박였다. 12년 전 21사단에 입대한 홍완표 이병은 4월13일 새벽 근무중 초소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유족에 통보되었다. 얼굴에 심한 타박상을 입고서 총을 맞았다는 점에서 유족은 타살 의혹을 제기했으나 바로 묵살당했다. 당시 평택중학교 교사이던 홍이병의 부친 홍순요씨는 아들의 장례를 치른 지 보름 만에 화병으로 쓰러진 뒤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병원에서 사망했다.





이런 윤씨의 가슴에 마지막 못을 박은 곳은 국방부 합동조사단이었다. 1999년 김 훈 중위 사건의 여파로 군대 의문사 문제가 공론화하자 국방부는 합동조사단을 만들어 다른 군 의문사에 대한 재조사 방침을 발표했다. 하지만 2000년 4월 군당국의 재수사 결과 역시 자살이었다.



사망자와 유족 능욕한 ‘재조사 결과문’



윤씨는 당초 군이 자살로 처리한 사건을 스스로 뒤엎으리라고 믿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망한 아들과 유족을 능욕하리라고까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군당국은 유족에게 보낸 조사 결과문을 통해 ‘내성적인 성격에 꺼벙하고 바보 같은 모습의 병사’라는 표현을 거침없이 사용했던 것이다.



이처럼 군당국의 태도에 모멸감을 느꼈다고 호소하는 이들이 홍이병 유족만은 아니다. 20여 년간 건강하게 아들을 키워 군에 보낸 부모가 자식의 사망 통보를 받으면 누구나 가슴에 못이 세번 박인다고 말한다. 한 번은 아들을 잃은 충격과 고통에, 그리고 사망 원인이라도 속시원히 알자고 부대 문턱을 넘었다가 부딪히는 싸늘한 반응과 자살몰이 수사 관행 때문에, 마지막으로는 자식을 한줌의 재로 돌려주며 개 취급도 안하는 국가의 무책임한 태도를 접했을 때다.



지난 3년간 국방부 합동조사단이 재조사하겠다고 접수한 군 의문사는 1백66건이었다. 이들 유족의 대부분은 군당국의 재조사가 시늉에 그쳤다고 말한다. 특히 재조사 과정에서 유족들은 아들이 죽은 원인을 어떻게든 부대 밖에서 찾으려고 하는 군당국의 태도에 상처만 더 깊어졌다. 일부 사고 부대 간부는 “애 잘못 키워 군대 보내서 재수 없이 우리 부대가 당하게 생겼다”라고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접수된 군내 사망 사건 1백66건 중 자살 결론이 바뀐 것은 단 2건에 불과했다. 당초 요란하게 출발했던 국방부의 의문사 합동조사단은 지난해 말 슬그머니 해체되었다.
결국 유족들은 이런 상황에 반발해 집단으로 법정의 문을 두드렸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가 의문사한 장병들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묻는 행정 소송을 낸 것이다. 이돈명·김형태·유현석 변호사 등 천주교인권위 소속 법조인들은 무료로 진행하는 이 소송의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징병제를 취하고 있는 현실에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병역 의무를 이행했던 군대 내 사망자에 대해서는 국가가 제대할 때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그 의무를 다하도록 안전하게 관리할 법적 책임이 있다.”



현재의 보훈 규정은 군부대에서 근무하다가 발생한 의문사·변사·자살자에 대해서는 순직 인정을 하지 않아 당사자와 유족들은 아무런 예우와 보상을 받을 수 없다. 따라서 이번 소송은 군부대(국가)의 관리 소홀 또는 가혹 행위 등이 원인이 되어 자해 행위로 사망한 병사들의 경우도 순직 군경 예우를 해주도록 규범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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