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선은 포스코의 ‘보배’
  • 소종섭 기자 (kumkang@sisapress.com)
  • 승인 2002.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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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스트로 맹활약, ‘핫코일’ 미국 수출길 지켜…벤처 투자회사 설립도 제안
지난 4월25일 오전, 서울 포스코빌딩에서 포스코 계열사 사장들이 참석하는 임원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특이한 주제가 하나 거론되었다. 타이거풀스 주식을 포스코가 매입한 것에 대해서였다. 회의에서 어느 정도로 이 문제가 논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한 참석자는 가볍게 얘기를 주고받은 정도였다고 전했으나, 관련 임원들이 줄줄이 소환되는 형국이어서 여러 대책이 논의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최규선 게이트를 수사 중인 서울지검 특수 2부는 이미 포스코 계열사 2개와 협력사 4개가 타이거풀스 대표 송재빈씨 소유 주식 20만주를 70억원이라는 고가에 매입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최규선씨와 관련해 왜 난데없이 포스코가 거론되는 것일까. 실타래를 따라가 보니, 송재빈 타이거풀스 대표·최규선 미래도시환경 대표·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 부시장 그리고 대통령 3남 김홍걸씨의 이름까지 나온다. ‘최규선 게이트’의 핵심 인물들이 포스코와 관련해 모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전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을 거슬러올라갈 필요가 있다. 지난해 미국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철강업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대선 과정에서 미국 철강업계의 지원을 받은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자마자 외국산 철강 수입을 제한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했기 때문이다. 특히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한국산 철강에 대해 강도 높은 수입 제한 조처를 취할 것이라는 설이 파다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포스코는 무언가 대책을 마련해야 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최규선씨였다. 최씨와 포스코 사이에 다리를 놓은 사람은 포스코건설 조용경 부사장이었다. 두 사람은 1998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시절 처음 만났다. 당시 자민련 총재였던 박태준 전 총리 밑에서 환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조부사장은 이 과정에서 인수위 사무실을 드나들던 최씨를 알게 되었다.



“최규선이 포스코에 횡재를 안겼다”



1999년 초, 정치권을 떠나 포스코건설로 직장을 옮긴 조부사장은 부시 대통령이 당선된 뒤 최씨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미국이 철강 수입을 제한하는 정책을 쓰고 있어 골치가 아프다고 털어놓았다. 최씨는 “내가 미국 인맥이 풍부하다. 특히 공화당 쪽에 발이 너르다”라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때부터 포스코와 최씨는 협력 관계를 맺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최씨는 유상부 회장 등 포스코 고위 인사들과도 몇 차례 만났다.



비슷한 시기에 김희완 전 서울시 정무 부시장도 포스코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지난해 1월 포스코 경영연구소 상임고문이 되었다. 부시 대통령의 당선이 확정된 직후이다. 포스코측이 전에 없던 ‘고문’ 자리까지 만들어 계열사 사장 수준의 급여를 지급하며 김희완씨를 영입한 배경은 무엇일까.






김씨는 “포스코측이 국제적인 경영을 펼칠 필요성을 인식하고 나를 영입하겠다는 요청이 와 응했을 뿐이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포스코의 한 고위 임원은 최씨와 김씨가 ‘한 팀’이었다며, 최씨가 전면에 나서기 어려워 김씨를 내세운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해 7월까지 이 연구소에 근무했다.



최씨는 포스코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한 것일까. 포스코측은 이에 대해 국익을 위해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사정에 정통한 인사들에 따르면, 최씨는 미국 고위 인사들을 포스코에 연결해 주고 미국의 로비 회사와 포스코가 관계를 맺도록 하는 등 큰 도움을 준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인사는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다. 미국 공화당 외교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그는 부시 전 대통령이 자문역으로 있는 칼라일 그룹에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는 등 부시 대통령 가문과 남다른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지난해 5월 한화갑 의원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을 때 포스코측 인사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철강업계 사정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포스코가 최씨가 연결해준 스칼라피노 교수와 베이커 전 국무장관 등을 활용해 미국 쪽을 뚫었다고 말했다.



이들의 역할과 관련해 업계에서는 지난 3월 미국 정부가 취한 긴급 수입제한조처(세이프가드) 대상에서 포스코가 미국 현지 법인인 UPI로 수출하는 핫코일 75만t이 제외된 것에 주목한다. 이 핫코일 수출액은 현재 연간 2억 달러 정도이지만 앞으로 외국산 철강 수입이 감소하면 가격이 천정 부지로 치솟을 전망이어서 핫코일은 포스코의 수익성 증대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포스코 내부 사정에 밝은 계열사의 한 고위 임원은 “최씨가 금액으로 따질 수 없는 횡재를 포스코에 안겼다”라고 말했다.



최규선-김희완 씨와 이런 관계를 맺은 포스코는 지난해 3월 타이거풀스 주식 20만주를 사들였다. 포스코측은 ‘계열사들의 주식 투자일 뿐 포스코와는 관계없다’고 말하지만 여러 정황을 보아 포스코 경영진이 관여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우리를 돕는 사람이 소개했고, 당시 사놓으면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 여유 있는 계열사에서 도와주자는 말이 있었다”라고 한 임원은 증언한다. 현재 포스코측은 계열사 2개의 이름은 공개하면서도 피해가 갈 수 있다며 협력사들의 이름은 공개하지 않고 있다.






계열사인 포항강판과 포철기연은 지난해 3월 일제히 타이거풀스 주식을 사들였다. 이 회사들은 포스코와 KT 등 25개 기업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기업간 전자 상거래 업체인 엔투비,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텍기술투자 외에 일반 회사로서는 유일하게 타이거풀스 주식에 투자했다. 포스코는 포항강판의 주식 100%, 포철기연의 주식 95.2%를 갖고 있는 최대 주주이다. 계열사들의 주식 매입은 이사회 의결 사항이기에 포스코 유상부 회장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왜 타이거풀스 주식을 비싸게 샀을까?



두 회사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철강재를 제조·가공·판매하는 회사인 포항강판은 7만8천주(0.8%)를 27억3천만원에 사들였고, 광양제철소 설비를 제작·가공하는 포철기연은 3만3백주(0.296%)를 10억5천만원에 사들였다. 그러나 주가가 하락해 현재 포항강판은 23억원, 포철기연은 9억원 정도 손실을 입었다. 포스코측은 당시 주당 3만5천원 정도에 매입해 고가 매입 논란이 일고 있다. 포스코가 타이거풀스 주식을 매입한 직후 최씨가 주당 만원씩에 이 회사의 주식 11만5천주를 매입했기 때문이다. 포스코측은 당시 한 회계법인이 4만원대에 고시하기도 해 결코 비싸게 산 것이 아니라고 해명하고 있다.






포스코와 최씨의 관계는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김홍걸씨와 벤처 투자 회사를 세울 계획을 갖고 있던 최씨는 포스코에 사업을 제안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국제 금융계 거물인 사우디 알 왈리드 왕자의 돈을 들여와 회사를 만들고자 했던 그는, 알 왈리드 왕자를 설득하기 위해 포항공대가 사업성을 평가해 주는 시스템을 갖추려고 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 투자한 회사가 성과를 거두면 일정액을 장학금으로 기부한다는 계획이었다.



포스코 한 고위 인사는 “계열사 가운데 이런 분야를 전담하는 포스텍기술투자를 최씨측에 연결해 줘 석 달 가까이 연구했으나 막판에 정치적인 이유로 무산되었다”라고 말했다. 이 인사가 말한 정치적인 이유란 국정원과 대통령의 첫째 아들인 김홍일 의원이 홍걸씨가 관련된 벤처 투자 회사 설립을 반대한 것을 의미한다. 당시 최씨는 이 인사에게 도와주었는데 미안하게 되었다며 회사 설립이 무산된 데 대해 무척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포스텍기술투자 이전영 사장은 “최규선씨를 알지 못한다. 그런 얘기는 전혀 없었다”라고 부인했다.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서울지검 특수 2부는 필요하면 포스코 유상부 회장도 조사한다는 계획이어서 ‘최규선 게이트’의 불똥은 빠르게 포스코 핵심부로 옮겨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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