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오버’와 ‘심리적 오버’
  • 정혜신(신경정신과 마음과 마음 원장) ()
  • 승인 2002.05.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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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한나라당 윤여준 의원(아래 오른쪽 사진)과 관련된 일련의 사태를 보면서 ‘전략적 오버’와 ‘심리적 오버’의 의미를 생각한다. 지난 4월19일 민주당 설 훈 의원(아래 왼쪽 사진)은 “최규선씨가 한나라당 윤여준 의원을 통해서 이회창 전 총재에게 2억5천만원을 전달했다”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윤여준 의원을 통해서’라는 대목이 의미심장하다. 아마 윤의원 본인을 겨냥한 자금 수수 의혹이었다면 ‘정치 생명을 건 싸움’으로까지 비화하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윤의원이 ‘내 개인의 명예나 인격만이 아니고 이회창 전 총재나 당의 명예가 걸린 문제’라고 한 말처럼, 끝까지 진실을 규명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게 되었다.


윤의원의 대응 방식은 신속하고 다양하다. 설의원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의원 직을 사퇴하겠다며 원내총무에게 조건부 사직서를 제출하고, 국회 의원회관에서 철야 농성에 돌입하고, 설의원을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과 20억원 손해배상 소송을 내놓았으며, 진상을 가리는 텔레비전 공개 토론회까지 요구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처들은 이회창 전 총재에 대한 보호 심리와 ‘노풍’ 차단, 이회창 저격수로 떠오른 설 훈 의원을 견제하려는 의도가 포함된 일종의 ‘전략적 오버’처럼 보인다. 원내총무를 비롯한 의원 10여명이 윤의원의 조건부 사직서를 들고 설의원의 방을 찾아가는 장면 등은 드라마틱하다. 그러나 내가 흥미롭게 여기는 것은 정치인의 전략적 오버라는 직업적 측면보다는 윤의원이 취한 일련의 조처들을 ‘심리적 오버’라는 점에서 바라보았을 때 생겨나는 단상들이다.





사실 규명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심리적 오버가 일어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다. ‘나의 진실’을 과시하기 위한 경우와 ‘나의 허물’을 위장하기 위한 경우다. 먼저 이런 경우를 상정해 보자. 사상 검증이라는 우격다짐으로 빨강 딱지를 붙이려다가 실패할 경우에 흔히 쓰이는 비열한 수법 하나. “그럼 네가 빨갛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해 봐.” 윤의원이 돈을 전달받은 사실조차 없고 따라서 그를 뒷받침할 물증이 나오지 않아도, 윤의원은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은 사안임을 증명해야 하는 무죄 증명 요구에 시달리게 된다. 이런 경우 심리적 오버가 일어나는 것은 당연지사다. 누명을 쓰고 살인범으로 몰린 사람은 격하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다가 오히려 개전의 정이 없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몰려 더 가혹한 형을 받기도 한다. 이때의 심리적 오버는 자신의 진실을 믿어주지 않는 ‘벽’으로 인해 증폭된다.





진실 주장을 위한 오버인가, 반동 형성에 의한 오버인가


반대로 자신의 허물을 위장하기 위한 경우에도 심리적 오버가 일어난다. 일종의 ‘반동 형성’이다. 반동 형성이란 자신이 용납할 수 없는 감정이나 충동 등이 있을 때 그것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자기 방어를 위한 심리 기교이다. 내적으로는 매우 공격적인 사람이 겉으로는 예의 범절이 더없이 깍듯하게 행동하는 것들이 그런 경우다.


얼마 전 어떤 고위 공직자는 뇌물을 받았다면 할복 자살을 하겠다고 극단적인 공언을 했지만 며칠 후 ‘할복 자살 할 일’이 사실로 밝혀지기도 했다. 반동 형성에 의한 심리적 오버였던 것이다. 그런 심리적 메커니즘으로 따져본다면 윤의원의 행동을 ‘제 발이 저린 듯한 과민 반응’이라고 눈흘김하는 사람들을 마냥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전에 테이프를 들어보지 않은 경솔함’을 인정하는 설 훈 의원의 발언이 있기는 했지만, 아직까지 윤의원의 심리적 오버가 어떤 종류인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윤의원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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