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 사고와는 차원이 달랐다
  • 차형석 기자 (papapipi@sisapres.com)
  • 승인 2002.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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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진 원전 4호기 증기발생기 고장…반핵 단체 “최악 사태 가능성에 근접” 주장



지난 6월12일 수요일 낮 12시 울진 원자력 발전소 앞. 울진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이규봉씨(36)는 플래카드와 피켓을 승합차에서 내렸다. 이씨는 ‘울진 핵발전소 추가건설 저지투쟁위원회’(핵투위)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씨는 지난 5월4일 산업자원부가 울진군 북면 덕천리 일대 29만평을 원자력 발전소 건설 신규 부지로 지정 고시한 후 핵투위 회원 10여명과 함께 수요일마다 발전소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산자부는 울진 5, 6호기 2기를 짓고 있는 북면에 가압 경수로형 140만kW 원전 4기를 추가 건설하기 위해 이번에 지정 고시를 강행했다.


이씨는 “정부는 새 단지를 ‘신울진’이라고 이름만 바꾸고 10기 규모나 되는 세계 최대 핵 단지로 만들고 있다. 우리가 시위를 해도 전기를 많이 쓰는 수도권 사람들은 꿈쩍도 않는다”라며 답답해 했다. 이 날 시위에서 울진 핵투위는 지난 4월5일 있었던 울진 4호기 증기발생기 세관 손상 사고에 대해 정확한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지난 4월5일 울진 4호기가 멈추어 섰다. 그날은 18개월마다 연료를 장전하고 정비하는 계획예방정비일이었다. 원자로를 정지한 후 17시간 뒤 증기발생기 세관 1개가 7.5㎝ 길이로 찢어지면서 파단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10분 동안 이 세관에서 1차 냉각수 45t이 유출되었다. 취출구 부위에 있는 방사능 감지기가 이를 감지했고, 운전원은 새 냉각재를 유출된 냉각재만큼 수동 보충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측은 즉시 증기발생기를 외부와 차단했기 때문에 법적 기준치를 넘어서는 방사능 외부 유출은 없었다고 발표했다. 과학기술부도 5월24일 이번 울진 원전 4호기의 세관 손상을 1등급 고장으로 평가했다. 1등급 고장은 기기 고장, 종사자의 실수, 절차의 결함으로 인하여 운전 요건을 벗어난 비정상적인 상태를 가리킨다.


반핵 단체의 생각은 한수원이나 과기부와는 다르다. 반핵 단체는 이번 사고가 그동안 국내 원전에서 발생한 사고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주장한다. 녹색연합 대안사회국 석광훈 부장은 “울진 4호기 세관 파열 사고는 단순 누설이 아니다. 이번 사고처럼 세관이 완전히 절단되어 냉각재가 일시에 빠져 나가는 ‘길로틴 파단’은 노심 용융과 같은 최악의 사고 가능성에 한국의 원전이 그만큼 근접해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라고 말했다(길로틴 파단은 파이프가 절단된 것을 단두대에 비유한 핵 산업계의 은어이다). 이와 같은 유형의 사고는 세계적으로도 열한 번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증기발생기는 원자로에서 발생한 열을 증기로 바꾸는 핵심 시설이다.





증기발생기에는 효과적으로 증기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하기 위해 세관 8천2백여개가 U자 형태로 설치되어 있다. 1차 냉각재(물)는 원자로를 식히고 난 뒤 고온(310℃)과 고압(150기압)을 지닌다. 이 냉각재가 세관을 통과하고, 1차 냉각재가 지닌 고온을 이용해 증기발생기에서 증기를 만든다. 이 증기를 이용해 터빈을 구동해 전기를 생산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증기발생기의 세관이 노후하면 손상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세관에서 1차 냉각재가 대량으로 흘러나온 상태에서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게 되면 원자로를 식혀줄 1차 냉각재가 부족해 체르노빌이나 드리마일형 대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실제로 1991년 일본 미하마 2호에서 가동중 발생한 증기발생기 세관 파단 사고의 경우, 파단이 일어난 세관으로 유실된 냉각재가 55t이었지만 원자로의 높은 압력으로 인해 주입된 냉각재는 30t밖에 안 되는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이로 인해 이 원자로에서는 노심 용융의 전 단계인 비등이탈 현상이 두 차례나 일어났다).


반핵 단체들은 세관의 재질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울진 4호기 증기발생기 세관은 인코넬 600으로 만들었다. 반핵운동가들은 인코넬 600이 열전도율은 우수하지만 균열에 약해 1988년부터 미국·일본·프랑스 등 세계 각국이 인코넬 690, 800 등으로 점차 교체하는 추세라고 말한다. 한전 내부 자료도 인코넬 600이 균열에 약한 단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전 예측이 힘들었다는 것도 이번 사고의 문제점이다. 한수원측은 세관 파단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울진 4호기는 그동안 사용전 검사 1회, 가동중 검사 2회를 거쳤으나 결함이 나타나지 않았다. 한수원 관계자는 “검사 데이터를 살펴보면 잡음처럼 여겨지는 미세 신호가 잡힌다. 당시에는 결함이 없었지만 가동하고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번 원전 사고의 경우 책임 소재도 모호하다. 한수원 관계자는 “현재까지는 세관 내부에 눌린 자국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제작 실수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증기발생기 제품 하자 보증 기간은 2년이다. 한국 표준형 가압경수로형 발전소인 울진 4호기는 1999년 12월31일 상업 운전을 시작했다. 따라서 2년 3개월 만에 세관이 손상되었기 때문에 책임은 발전소 운영자인 한수원이 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당국의 정보 공개 방법도 문제


과학기술부는 지난 5월25일 냉각재 누설 사고가 일어난 울진 원전 4호기를 재가동해도 좋다고 허가했다. 울진 4호기는 5월30일 전출력 운전에 돌입했다.
이번 울진 4호기 사고는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월드컵 열기와 지방 선거에 묻혀 거의 보도되지 않았다.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정지 상태가 아니었으면 문제가 커졌을 것이다. 사고 유형과 정도가 기존 것과 상이한데도 언론에 거의 나오지 않아 나도 의아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형 원자로의 일반적 문제로 비화할까 봐 조심스럽다”라고 말했다.

당국의 정보 공개 방법도 비판을 사고 있다. 4월5일 과기부와 한수원은 보도자료와 홈페이지에서 ‘세관 누설’ ‘튜브 누설 징후’라는 용어로 울진 4호기 사건을 설명했다. 세관이 파단됐다는 말이 없어 지역 주민들은 으레 있는 세관 누설로 혼동할 수밖에 없었다. 핵투위의 전종률씨는 “이곳에서 반핵 운동을 하는데도 세관이 파단된 줄 몰랐다. 한 달이 넘게 지나 서울의 반핵 단체를 통해 알았다”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한국반핵운동연대는 시민단체·지역 주민·민간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공청회를 열라고 과학기술부에 공개 요청했다.


외국 반핵 단체들도 울진 4호기 세관 파단에 주목하고 있다. 1975년 창립되어 지속적으로 원자력 안전 문제를 제기해온 일본의 민간 연구기관 시민원자력정보센터(CNIC)는 “일본에서는 미하마 2호기 사고 당시 상당 기간 정확한 사고 내용이 은폐됐었다. 한국 당국은 파단 사고의 궁극적 원인 규명에 나서야 한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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