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촌 '살아 나가면 서예가 되겠다'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4.09.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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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파 전 두목 김태촌씨, 제2의 인생 준비…아내 이영숙씨, 구명 운동 앞장
<시사저널>은 한국 조직 폭력 세계의 상징적 인물로 꼽히는 전 서방파 보스 김태촌씨의 옥중 수기를 받아 두 차례에 걸쳐 연재했다. 그런데 세 번째인 ‘인천 뉴송도호텔 사장 피습 사건의 숨은 진실’ 편을 앞두고 김씨가 이 내용이 자기의 감호 재심 재판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며 게재 시점을 첫 재판이 시작된 이후로 늦추어 달라고 요청해 왔다. 김씨의 감호 재심 첫 재판은 9월14일 열린다.

1990년 5월 범죄와의 전쟁 당시 조폭 보스로서는 첫 번째로 구속된 김태촌씨는 징역 15년(형집행정지 기간 5년 포함)에 보호감호 7년을 선고받고 현재 청송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다. 기나긴 옥살이는 오는 10월3일에 끝난다. 그러나 감호 7년이 따라붙어 있어 김씨가 곧바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물론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사회보호법 폐지 당론이 확정되어 머지 않아 김씨도 석방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씨는 법 폐지 움직임에 상관없이 1986년 군사정권 시절 자기에게 내려진 감호 처분이 부당하다며 재심의해 달라고 재판을 청구했다.
현재 김씨 석방을 위해 앞장서고 있는 이는 6년 전 옥중 결혼한 아내 이영숙씨(56)이다. 1970년대 나훈아씨 등과 함께 가요계에서 활약한 이영숙씨는 <그림자> <꽃목걸이> <가을이 오기 전에> 등 여러 히트곡을 남겼다. 이씨는 1996년 다니던 교회 목사의 소개로 교도소에서 기독교 신앙 활동을 하던 김태촌씨와 편지를 주고 받으며 인연을 맺었다. 2년간 편지 왕래만 하던 두 사람이 서로를 배필로 맞아들인 때는 만난 지 2년여가 지난 1999년 3월이었다. 그때부터 6년간 이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청송을 오가며 남편 옥수발을 하고 있다.

“8년을 만났어도 80년을 같이 산 부부 같다.” 한 달에 고작 네 번, 그것도 쇠창살 사이로 남편을 만나지만 이영숙씨는 두 사람이 평범한 부부보다 더 속속들이 서로를 알고 있다고 자신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씨는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있기에 온천하를 다 얻은 것보다 든든하다. 면회 시간이 잡히면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다”라고 흐뭇해 했다. 아내 이씨의 남편 자랑도 이에 못지 않다. “너무나 맑고 가식 없는 영혼을 가진 남자라서 반했다. 남편이 휠체어를 타고 교도소 접견장에 들어설 때면 ‘내가 차라리 저 아픔을 대신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져 온다.”

아내 이씨가 감호 재심 재판부에 구명을 호소하는 가장 큰 이유는 김태촌씨의 건강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김태촌씨가 1989년 폐암 수술을 받아 한쪽 폐를 떼어냈다는 사실에 의구심을 보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양잿물을 마시고 일부러 폐수술을 했다는 악성 유언비어까지 퍼뜨린 적도 있다. 이런 소문에 대해 김씨의 폐 절제 수술을 집도한 세브란스병원 의료진은 터무니없는 음해라며 반박했다. 이후 김씨는 수감 중에도 경북대학병원 의료진으로부터 정기 검진을 받아왔다. 최근까지 김씨의 폐암 수술 경과 및 예후를 추적해온 경북대 의대팀의 엑스선 사진과 소견서에 따르면, 김씨는 명백한 폐암 환자이다.

경북대병원측은 지난 7월7일 김태촌씨를 정기 검사한 후 소견서에 ‘폐활량은 정상인의 43%이고, 폐암 치료에 의한 좌폐 절제, 비활동성 폐결핵, 만성 식도염, 위축성 위염, 심한 제한성 환기장해 소견이 있다. 폐암 재발 여부에 대해서는 주기적인 검진과 관찰이 필요하다’라고 적었다.
김태촌씨 스스로도 암이 전이할 가능성에 무척 신경을 쓰고 있다. 지난 6월 하순 김씨는 가까운 친지들에게 유서에 가까운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폐에서 가까운 식도 주위에 종양이 생겼다는 경북대 의료진의 초기 진찰 결과를 통보받고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여긴 것이다. 암이 재발해 전이한 것으로 여긴 김씨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글을 썼다.

지난 2월부터 약 4개월간 ‘조폭 보스 인생의 못다 한 이야기’를 회고하는 글을 <시사저널>에 보내오던 김씨는 이때 마지막에 대비한 글을 적어 보냈다. 암이 전이되어 집필도 곤란한 상황이 오기 전에 자기의 마음을 적고자 한다며 ‘죽음을 앞두고 모든 이를 용서하고 저 세상으로 가고자 한다. 그러나 내가 조직 보스 시절 있었던 그대로의 진실만은 사후에라도 <시사저널>이 기록으로 남겨달라’고 밝혔다. 이후 정밀 검진 결과 식도의 혹은 암이 전이된 것과 상관없는 양성 종양으로 밝혀져 유서 소동은 촌극으로 끝났다.

김태촌씨가 꿈꾸는 제2의 인생은 서예 학원 원장이다. 감옥 생활 초기부터 ‘살아서 나간다면 서예가로 제2의 인생을 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는 김씨는 감옥에서 서예에 몰두해 어느 정도 경지에 도달했다고 한다. 훗날 출소하면 서예 학원을 차려 직업 서예가로서 후학을 양성하겠다는 포부를 가진 김씨는 최근 감옥에서 출품한 서예 작품으로 한국현대미술인협회가 주는 상(특선)을 받기도 했다.

또 자기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지 않고 공부만 제대로 했더라면 조폭 세계로 빠지지 않았을 것이라며 초등학교 졸업 학력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던 김씨는 감옥에서 한문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한문 서예에 도전하겠다는 욕심도 가세했다. 그 결과 한자 5급 자격증을 땄는가 하면, 교도소가 주최하는 각종 경시대회에서 표창과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김태촌·이영숙 부부의 눈물 겨운 노력과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그가 사회에 나오면 조폭 세계에서 완전히 손을 씻을 수 있을지 의구심을 가진 이도 많다. 본인은 조용히 새 삶을 살겠다고 장담하지만 과거 그의 선후배 조직원들이 가만 두겠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씨는 정색을 한다. “수감 생활 15년 동안 과거 서방파 선후배 공범 명단을 스스로 작성해 교도소에 제출했다. 그들이 면회를 오거나 편지를 보내오면 나에게 일절 연락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지금껏 한 번도 이를 어긴 적이 없다.” 이영숙씨 역시 남편이 감호에서 벗어나 만기 출소하면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과거 조직 세계에서 맺었던 인연은 완전히 끊게 하고 치료와 요양에만 전념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처럼 출소 후 삶에 대한 열정과 집념을 버리지 않았다. 김씨는 재판부에 낸 감호 재심 청구서에 이렇게 적었다. ‘만약 나에게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이 있었더라면 청춘을 범죄 속에 방황하며 허송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혼자 몸일 때는 범죄를 쉽게 저질렀지만 이제 사랑하는 아내와 장성한 아들을 얻었기에 한 가장으로서 늦게나마 행복을 찾고 싶습니다. 그들의 눈에 두 번 다시 눈물을 흘리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썼다. 감호 재심 재판부가 김태촌·이영숙 부부의 이같은 구명 호소에 어떻게 화답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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