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는 ‘불량 만두’의 진실
  • 김은남 기자 (ken@sisapress.com)
  • 승인 2004.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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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약청 ‘인체 무해’ 소견 공개돼…경찰·언론 책임론 커질 듯
만두의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른바 ‘불량 만두’ 파동이 불거졌던 것이 3개월 전. 추석을 고비로 만두 소비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고는 하지만, 만두를 고르는 소비자의 마음은 여전히 흔쾌하지 않다. ‘쓰레기 만두는 애초부터 없었다’는 업계 주장과 ‘쓰레기라는 표현은 과도했을지 몰라도 만두에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는 경찰의 주장이 여전히 첨예하게 맞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사건의 실체에 접근할 단서를 제공하는 중요한 문건 하나가 공개되었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경찰청이 열린우리당 유필우 의원에게 제출한 <‘불량 만두소’ 관련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감정 결과>가 그것이다. 그간 경찰은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이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기억을 되돌려 보면 불량 만두 파문이 처음 불거진 6월 초, 한 방송사는 이렇게 보도했다. “쓰레기로 버려지는 단무지로 만두 재료를 만들어 온 식품업자들이 붙잡혔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들이 납품한 재료에서는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이 다량 검출됐습니다.”

이런 보도가 나온 근거가 된 것이 경찰의 브리핑이었다. 6월4일 불량 만두 수사 결과를 언론에 브리핑하면서 경찰은 보도 자료에 ‘일부 업체 만두소에서 세균·대장균이 다량 검출된 것으로 국과수 검사 결과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에 공개된 국과수 감정 결과에 따르면, 이들 만두에서 ‘식중독을 일으키는 세균이 다량 검출’되었다거나 하는 대목은 전혀 없다. 국과수는 단지 만두소에서 두 종류의 세균, 곧 포도상구균의 일종인 스타피로코쿠스 오리쿨라리스와 대장균의 일종인 엔테로박터 인테르메디우스가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나아가 국과수는 이들 세균의 경우 증거물을 채취하거나 운반·보관하는 과정에서 2차적으로 오염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소견도 덧붙였다.

문제는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이 이들 세균에 대해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답변했었다는 사실이다. 이번에 유필우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경찰은 국과수로부터 성분 분석 결과를 통보받은 직후인 4월9일 이들 성분이 인체에 유해한지 식약청에 다시 문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경찰이 식약청으로부터 받은 회신 내용은 다음과 같다. △스타피로코쿠스 오리쿨라리스는 비병원균으로서 사람에게 질병을 일으킨다는 보고 없음 △엔테로박터 인테르메디우스는 대장균에 속하나 사람과 동물의 장기 속이나 토양·식품 등 자연계에 널리 분포. 질병 유발 가능성 매우 적고, 가열 처리할 경우 균은 사멸됨.

그러나 경찰 발표에서 이런 대목은 빠져 있었다. 그 결과 만두 제조업자들은 ‘음식 갖고 장난친 파렴치범’들로 몰려 사회적 지탄을 감수해야 했다. 그 와중에 한 만두 업체 사장이 자살하는 비극적인 사건도 발생했다.

최근 만두 제조업체들은 경찰청·식약청·언론사를 상대로 대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오른쪽 상자 기사 참조). 이 중 엄지식품·새아침 등 10여 개 만두 업체의 소송을 대리하고 있는 노관규 변호사 사무실의 한 관계자는 “인체에 유해하다는 확정적인 증거가 없는데도 경찰·언론이 이를 ‘쓰레기’라고 몰아붙임으로써 만두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고, 만두 회사를 빈사 지경에 빠뜨렸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이번 만두 소송이 과거 우지(牛脂) 라면 소송을 잇는 명예 회복 소송이 될 것이라고 자신하기도 했다. 우지 라면 소송에서 재판부는 ‘공업용 우지로 만든 라면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라면회사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경찰 “업자들이 이제 와서 딴말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경찰은 펄쩍 뛴다. 불량 만두 수사를 맡아온 경찰청 외사과 권선영 경감은 우지 라면과 만두소는 명백히 다르다고 말했다. 만두소의 경우 유해성이 문제가 아니라 ‘일반에 차마 공개하지 못할 수준’의 비위생성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단무지가 상온에서 짧게는 이틀, 길게는 1주일씩 방치돼 있는 것을 우리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짓무르거나 검게 변색된 단무지들도 있었다. 이런 단무지를 만두소로 썼다고 스스로 진술했던 업자들이 시간이 흐르니까 딴말을 하고 있다”라며 그는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업자들은 정반대 주장을 펼치고 있다. 썩거나 무른 무는 가공 과정에서 다 가려내어 버릴 뿐더러, 만에 하나 경찰 주장대로 그렇게 비위생적으로 만두소가 만들어졌다면 검사 결과 식중독균 따위가 대량 검출되었어야 마땅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물론 비위생성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들 업체는 응당한 처벌과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그러나 이것이 ‘쓰레기 만두’로 매도되어 사회에서 매장당할 만큼 위법한 행위였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지난 달 식약청장에서 물러난 심창구 서울대 교수(제약학)는 “만두 파동의 근본 책임은 비전문 기관의 여론몰이식 발표 및 보도에 있다”라고 증언했다. 만두를 둘러싼 ‘진실 게임’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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