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 천형의 한 어디다 호소하나
  • 정희상 기자 (hschung@sisapress.com)
  • 승인 2005.0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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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 피해 2세 김형률씨 ‘방사능 유전병’ 입증 위해 악전고투…인권위 실태 조사 이끌어내
비쩍 마른 한 젊은이가 연신 기침을 토해낸다. 30여분 동안 쉴새 없이 쿨럭대는 그의 곁에서 늙은 어머니가 휴지와 따뜻한 물을 번갈아 건넨다. 키 163cm에 몸무게 36kg.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듯 심한 아들의 기침이 멎자 두 모자는 여의도 국회의사당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어머니는 60년 전 다섯 살 나던 해에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피폭된 이곡지씨(65)이고,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자기를 괴롭혀온 병마가 피폭 유전에서 말미암았다고 믿는 김형률씨(35)이다.

부산에 사는 두 모자는 지난 2월16일 모처럼 서울 나들이를 했다. 이들이 국회로 간 까닭은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들을 만나 원인 모를 병마와 싸우며 숨어 지내는 원폭 피해자 2세들에게 인도적인 지원책을 마련해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이다. 마침 하루 전날인 2월15일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원폭 피해자 2세에 대한 건강검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03년 8월 김형률씨가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인권위에 진정을 낸 것이 받아들여진 결과물이다.

일반인 비해 암 발병률 등 현저하게 높아

김씨의 진정을 접수한 인권위는 지난해 8월부터 12월까지 5개월간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인의협)에 의뢰해 원폭 피해자에 대한 기초 현황과 건강 실태를 조사했다. 광복 60년이 되도록 피폭자 2세에 대한 건강 조사가 실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조사 대상 국내 거주 원폭 피해자 2세는 4천여명이었는데, 이미 사망한 2백99명 중 절반이 넘는 1백52명이 열살 전에 죽은 것으로 드러났다. 밝혀진 사인은 선천성 기형이나 감염성 질환, 암 등이었고, 60% 이상은 시름시름 앓다가 원인도 모른 채 세상을 뜬 것으로 확인되었다. 생존한 피폭 2세들 중에는 희귀 질환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 남성은 대장암·갑상선암이 주종이었고, 여성은 백혈병과 난소낭종 발병률이 높았다. 피폭 2세 남성들의 경우 같은 연령대의 일반 국민에 비해 발병률이 빈혈 88배, 심근경색 81배, 우울증 65배, 천식 26배, 정신분열증 23배, 갑상선질환은 14배나 높았다. 피폭 2세 여성의 발병률도 일반인에 비해 심근경색과 협심증이 81배, 우울증 71배, 유방양성종양 64배, 천식 23배, 빈혈 21배, 정신분열이 18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 조사로 원폭에 의한 피해가 유전성을 지니고 있다고 충분히 규명된 것은 아니다. 그래서인지 인권위는 조사 말미에 원폭 피해자 2세에 대한 더 정밀한 역학조사 및 분자생물학적 유전학 조사가 실시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제대로 조사에 나서서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1970년 일란성 쌍둥이로 태어난 김형률씨가 살아온 34년 인생은 죽음과의 긴 전쟁이었다. 쌍둥이 동생은 생후 1년 뒤 현재 김형률씨가 앓고 있는 병으로 사망했다. 살아온 날 중 20년을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는 김형률씨의 병명은 ‘면역 글로블린 결핍증’. 의학사전에는 이 병이 ‘X염색체상에서 열성 유전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적혀 있다. 1995년 부산 침례병원 내과 의료팀에 의해 김씨의 증상은 어머니의 원자폭탄 피폭 가족력을 가진 희귀병 사례로 의학계에 보고되기도 했다.

김씨가 평생 앓아온 자기의 병이 어머니의 피폭과 관련된 방사능 유전병이라고 의심하게 된 것은 2001년 우연한 기회에 이 논문을 입수하고서부터였다. 병세가 악화해 시시각각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는데도 굴하지 않고 김씨는 이때부터 전국 각지에서 고통을 숨기고 살아가는 피폭 2세 환자와 가족을 찾아 나섰다. 또 일본의 원폭 피해자 모임 및 피폭 2세 단체와 e메일을 주고 받으며 정보를 모았다. 이 과정에서 일본인 원폭 연구가 이치바 준코 교수가 쓴 <한국의 히로시마>라는 두 권짜리 일본어판 책을 구한 김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서울에 있는 역사비평사로 찾아가 번역판을 내달라고 호소했다. 역사비평사측은 2003년 8월 흔쾌히 단행본을 발행해 국내에 배포했다. 피폭 2세 유전병을 밝혀내고야 말겠다는 일념으로 뛰는 김형률씨의 투혼에 감복한 결정이었다고 한다.김씨는 동시에 희귀병을 앓고 있는 전국 각지의 50여 피폭 2세 환자들을 모아 ‘원폭 2세 환우회’를 결성했다. 그는 또 아픈 몸을 이끌고 부산에서 상경해 인권운동사랑방·건강세상네트워크·교회여성연합회 등 각 시민·인권 단체의 문을 두드렸다. 이들 단체는 ‘원폭2세 환우공대위’를 구성해 피폭 2세 문제를 공론화하고 김씨가 국가인권위에 진정을 내는 데 동참했다.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인권위에 진정해 이번 조사 결과를 이끌어낸 김형률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김씨는 자신의 건강을 장담하지 못해, 원폭 2세의 건강권을 지키기 위해 자기가 지핀 촛불이 사그라들까 봐 걱정이다. 그도 그럴 것이 김씨가 앓고 있는 병을 앓는 환자들은 대부분 열 살이 되기 전에 사망한다. 국내에서 최장 생존 기록을 가진 이는 29세에 불과하다. 의료진은 김씨가 35년을 넘긴 것은 기적이라고 말한다.

정부 공식 입장은 “국가 지원 불가능”

게다가 이번 인권위의 조사 결과가 병마에 시달리는 피폭 2세 환자들에게 당장 별다른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이다. 진정을 낸 김씨만 해도 그동안 엄청난 병원비를 감당하지 못해 발만 굴러왔다. 그나마 최근 서울대학병원이 김씨에게 고가의 면역 글로블린 주사제를 보험 처리해준 덕분에 한 달에 한 번씩 부산과 서울을 오가며 힘겹게 살아가는 실정이다. 이처럼 제국주의 전쟁과 국가에 의해 이중 삼중으로 피해를 본 피폭 2세 환자들에 대한 사회 안전망은 전무하다.

최근 문세광 사건 관련 자료와 함께 비밀 해제된 1974년 보건사회부 작성 3급 비밀 문서에는 ‘실태 파악 결과 원폭 피해자의 후손들에 대한 건강 관리가 크게 우려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치료와 재활 대책을 위해 3개소에 80병상 규모의 치료센터 및 재활원 설립이 요망된다’고 정리되어 있다. 일본 정부에 보내기 위한 기밀 문서였다. 그러나 현재 보건복지부에게 피폭 2세 문제는 강 건너 불이다. 원폭 후유증이 의학적으로 확인된 바가 없으니 국가적 지원은 불가능하다는 공식 입장만 되풀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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