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선 실패 ‘부전자전’ 안될까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
  • 승인 2003.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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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아버지 전철’ 피하려고 일찌감치 내년 대선 준비…감세안·안보 카드 활용
요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라크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도 마음이 썩 편치가 않다. 내년 11월 치러질 대선 가도에 벌써부터 빨간 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미국인 10명 중 7명이 그의 직무 수행을 지지할 만큼 탄탄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그가 고민하는 까닭은 경제난 때문이다.

그가 취임한 2001년 1월 이후 경기 침체로 일자리가 무려 2백10만개나 사라졌다. 이라크 공격이 개시된 지난 3월 한 달에만 실직자가 10만여 명 늘어났다. 현재 상태가 그대로 지속되면 1991년 페르시아 만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지지율 90%의 높은 인기를 누리다가 경제 실정으로 재선에 실패한 부친의 전철을 밟을지도 모른다.

1991년 페르시아 만 전쟁이 끝난 뒤 현 대통령의 아버지인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은 누가 보아도 ‘떼어 놓은 당상’이었다. 43일 간에 걸친 전쟁 동안 그에 대한 지지도는 전쟁 직전에 비해 무려 23%나 상승했다. 게다가 종전 직후에는 3주간 주가가 20%나 치솟고, 유가도 종전보다 3분의 1이나 하락해 국내 경제가 순항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경제 상황은 반전했다. 그런데도 전쟁 승리에 따른 도취감에 젖었던 그는, 종전 직후의 반짝 경기가 장기 불황으로 빠져드는 것을 보고도 제때 대처하지 못했다.

아들인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아버지 때와 똑같은 상황에 접어들고 있다. 경제 실정이 부친이 재선에서 실패하는 직접 원인이 되었음을 누구보다 잘 아는 부시 현 대통령은 그 때문에 마음이 더욱 급하다. 이라크 전쟁이 끝난 직후 그에 대한 미국민의 지지도는, 페르시아 만 전쟁 직후 부친이 얻었던 지지도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70%나 된다. 그러나 경제 수행 능력에 대한 지지도는 절반을 밑돌고 있다. 페르시아 만 전쟁 때처럼 이라크 전쟁 종전이 주식 시장을 일시적이나마 활황으로 끌어올린 것이나, 유가가 하향세를 보이는 것도 아버지 때와 흡사하다. 물론 그에게는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부친과의 차별점도 있다. 이를테면 지난 1990년 부친이 세금을 올림으로써 보수층 지지 기반을 잠식했던 것과 달리, 그는 오히려 그 반대인 감세안을 내놓았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나아가 페르시아 만 전쟁 직후 경제 위기에 늑장 대응했던 부친과 달리, 부시는 이라크 전쟁 종전과 동시에 일찌감치 감세안 의회 통과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그는 의회가 휴회에 들어가는 4월 말까지 전국을 순회하며 ‘경제 대통령’으로 변신하려고 한다. 또 존 스노우 재무장관을 비롯해 행정부 고위 경제 관료 29명을 미국 전역의 주요 행사에 내보내 자신의 경제 정책에 대한 홍보 작업을 벌일 예정이다. 하지만 그 결과는 기대와는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현재 부시가 내세운 경제 회생책은 역대 공화당 정부의 단골 메뉴인 감세안이다. 지난 1월 연두교서에서 모습을 드러낸 감세안의 골간은, 앞으로 10년간 주식 배당세나 상속세 폐지 등으로 가계와 기업을 위해 세금 7천2백60억 달러를 깎아주자는 것이다. 일자리를 계속 창출하고 경기를 진작하려면 감세안밖에 없다는 것이 부시의 주장이었다.

문제는 그의 감세안이 상·하원 모두를 공화당이 장악했는데도 난관에 봉착해 있다는 것이다. 상원은 그의 감세액을 절반으로 뚝 잘랐고, 하원도 3분의 1이나 깎았다. 모두 ‘재정 적자’ 폭이 지나치게 커질까 걱정해서이다. 경제 전문가들에 따르면, 부시의 감세안이 유권자들의 표와 연결될 수 있으려면 늦어도 내년 6월까지는 어떤 식으로든 효과를 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구체적으로 내년 상반기까지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최소 3%는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시 행정부의 경제 참모진은 감세안이 늦어도 오는 6월 의회에서 통과되어야 선거의 해인 내년 상반기 중 그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고 예상한다. 그들은 충분한 경제 부양 효과가 나타나려면 감세안이 발효한 직후 통상 9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본다.

레이건 행정부 시절 의회 예산국장을 지낸 루돌프 페너 씨도 “역사적으로 일자리가 창출되기 위해서는 6개월 이상 계속해서 최소 3% 이상의 경제 성장이 필수이다”라고 지적했다. 의회를 통과한 감세안은 내년 1월1일을 기해 발표하기 때문에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사실상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시가 경제 위기를 해소할 묘책은 없을까. 정치 분석가들이 주목하는 것은 이른바 ‘안보 카드’다. 지난해 11월 의회 중간 선거 때 그랬듯이 내년 대선에서도 이라크 전쟁 승리 후 새롭게 조성된 안보 위기를 십분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 사령탑은 백악관 최고의 책사이자 부시의 최측근으로 꼽히는 칼 로브가 맡을 전망이다. 로브는 지난해 의회 선거를 공화당 승리로 이끈 1등 공신이다. 워싱턴에 있는 두뇌 집단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스티븐 헤스 선임연구원은 부시가 이라크 전쟁 승리에서 얻은 정치적 자산을 경제난 타개로 활용할 수 있느냐가 재선의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점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이 최근 불거지고 있는, 시리아로 전선을 확대하는 문제다. 실제로 민주당측은 부시가 이라크와 마찬가지로 시리아에 대해서도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했다는 혐의를 씌워 내년 대선 직전까지 위기를 고조시키지 않을까 의심한다. 이럴 경우 부시의 경제 실정을 대선의 최대 쟁점으로 내세우려던 민주당 지도부의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부시 행정부가 시리아 공격과 관련해 훨씬 더 강한 경고음을 낼 경우, 유권자들의 관심은 또 한번 순식간에 국가 안보로 옮아갈 가능성도 높다.

이같은 경고음이 ‘안보 효과’를 염두에 둔 고도의 정치적 계산에 따른 산물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대선 후보 중 선두 주자인 존 케리 상원의원의 선거 참모인 짐 조던이 “민주당 대선 후보도 부시 못지 않게 국민의 안위를 걱정한다는 인상을 심어주지 않는 한 내년 대선 승리는 난망하다”라고 지적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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