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개발에 정치 생명 건 중국 원자바오 총리
  • 베이징 . 이기현 통신원 ()
  • 승인 2003.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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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바오 총리, 서부·연해 지역 잇는 ‘삼극론’ 제시
중국이 서부에 이어 동북 지역 개발에도 시동을 걸었다. 지난 11월 공산당 제16기 전국대표대회에서 노후한 중공업 기지인 동북 지역의 구조 조정과 개혁을 지지하는 방침을 세운 뒤, 최근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를 중심으로 본격 개발을 선언하는 등 동북 개발에 점차 힘을 싣고 있다.

원총리가 동북 개발에 쏟는 관심은 각별하다. 이미 후진타오 정부 출범 후 몇 차례 동북 지역을 방문했으며, 지난 8월에는 동북 3성(랴오닝·지린·헤이룽장)의 주요 간부를 지린(吉林) 성 창춘(長春)에 소집해 정책 회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원 총리는 동북 지역을 서부와 같은 주요 전략 거점으로 삼을 것이라고 밝히고, 각 성은 진흥 전략을 연구해 내놓으라고 지시했다.

동북 지역은 중국 건국 초기에는 중공업 기지였다. 계획 경제 시기에는 ‘중국의 큰아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위세가 대단했다. 이는 마오쩌둥의 내륙 중시 안보 전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개혁 개방 이후 더딘 체제 전환으로 인해 낙후 지역으로 몰락해갔다. 특히 국유 기업 몰락과 대량 실업 사태로 이 지역에서는 사회 불안까지 증폭되어 왔다. 석탄 자원이 고갈되면서 폐광이 속출해 실업자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왔다. 현재 4백만명 이상이 실업 상태이며, 이들에게 지급할 연금과 실업 수당만 해도 10억 위안 이상이다.

동북 지역 문제는 역사의 산물이다. 중화학공업 시설은 일제 때 세운 것이어서 매우 낙후해 있다. 또한 계획 경제 시기부터 국유 기업들이 떠맡아온 사회 복지 부담은 여전히 남아 있다. 랴오닝(遼寧) 성의 경우 대형 기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중앙 직속인 국유 기업이다. 수익은 전부 국가가 회수하지만, 적자는 고스란히 지방의 몫이다. 현재 지린(吉林) 성의 경우 국유 기업 2백82개가 도산 위기에 처했으며, 핵심 국유 은행의 부실 채권도 전국 평균을 훨씬 웃도는 수준이다.

중국 정부는 동북 지역 재개발을 통해 사회 불안 요인을 제거하고, 아울러 동남부 연안 지역에서 소비하는 공업용 원·부자재를 생산하는 기지를 육성해 이 지역을 경제 성장의 한 축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중국인들은 동북 개발이 서부 개발보다 성공할 확률이 더 높다고 여기고 있다. 중국의 서부 지역은 풍부한 지하 자원을 빼고는 인프라 구축의 어려움 등 경제적 매력이 적어 외국 자본들이 진출을 꺼리는 상황이다. 이와 달리 동북 3성은 이미 도로 철도 등 교통 수단이 발달했고, 오래 전부터 중공업 기지로 기능해 왔기 때문에 기초 인프라는 이미 확보된 셈이다. 또한 한국 러시아 일본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도 있어 외자 유치가 유리하다. 다롄(大連) 같은 항구 도시를 자유항으로 개발해 동북아 지역의 물류 기지로 키울 수도 있다.

이번 동북 개발 구상에는 원자바오 총리의 야심이 깔려 있다. 원 총리의 경제 개발 목표는 중국의 지역간 균형 발전이다. 총리가 된 후 최근까지 그는 동북부뿐 아니라 홍콩을 비롯한 남부와 경제 중심지 상하이(上海) 등을 시찰하면서 ‘삼극론’이라는 중국 경제 발전 전략을 제시했다. 삼극론은 연해 지역·서부·동북부 등 3개 지역을 집중 개발해 중국 전체의 경제 수준을 함께 끌어올린다는 내용이다. 다른 한편으로 국유 기업이 몰려 있는 동북 지역을 개발해 계획 경제의 마지막 잔재를 제거한다는 것이다.

개혁 개방 이래 중국의 지도자들은 경제 개발 분야에서 저마다 하나씩 ‘작품’을 만들었다. 덩샤오핑(鄧小平)의 연해 지역 개발, 주룽지(朱鎔基)의 상하이 푸둥(浦東) 지구 개발, 그리고 장쩌민(江澤民)의 서부 대개발까지. 이들은 자신만의 프로젝트로 정치 기반을 공고히 다지며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원 총리가 동북 개발에 힘을 쏟는 것은, 바로 이같은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고 관측통들은 풀이하는 것이다.
이번 동북 개발의 일선에 차세대 총리감으로 꼽히는 랴오닝 성 성장 보시라이(薄熙來)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다롄 시장에 재임할 당시 경제 발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험과 중국 인민의 적극적인 지지에 당내 세력 기반까지 갖춘 그의 적극적인 참여는 동북 개발에 더욱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보시라이 성장은 중국 시사 주간지 <신원저우칸(新聞週刊)>과 가진 인터뷰를 통해 “중앙과 정부가 동북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제 우리가 일어날 차례이다”라고 자신 있게 선언했다.

동북 개발을 위해서는 최소 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이 필요하다. 그러나 중국 정부는 이미 서부 대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붓기 시작해 재정이 넉넉한 편이 아니다. 정부는 외자로 재원을 조달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외국 자본이 몰려올지는 아직 두고 보야야 할 일이다. 하지만 만일 계획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동북 3성은 서부에 준하는 경제 중점 개발 지구가 되면서, 홍콩 일대의 주장(珠江) 삼각주, 상하이 일대의 창장(長江) 삼각주, 베이징 일대의 베이징-텐진 지구에 이어 중국의 4대 경제 기지로 발돋움한다.

이는 동북 개발에 정치 명운을 걸고 있는 원자바오 총리에게는 축복이 될 확률이 높지만, 동북 지역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북한이나 한반도에는 악재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동북 개발에 힘을 쏟는 중국의 움직임을 태평하게 감상만 하고 있을 여유가 없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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