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맞수는 나야, 나”
  • 워싱턴·변창섭 편집위원 (cspyon@sisapress.com)
  • 승인 2003.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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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에서 ‘선두 돌풍’…참신성·부시 때리기로 인기몰이
미국 웨스트포인트 1등 졸업, 영국 옥스퍼드 대학 로즈 장학생, 은성무공훈장을 받은 베트남전 영웅, 최연소 장군 진급, 나토군 총사령관.’ 지난 9월17일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에 열 번째 후보로 뛰어든 뒤 현재 미국민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있는 웨슬리 클라크 예비역 대장(58)의 간략한 신상 명세서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클라크 후보는 출마를 선언한 지 1주일 만에 1년 이상 유세전을 펼쳐온 당내 후보들을 모두 따돌렸다. 최근 CNN 방송과 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클라크에 대한 지지도는 현역인 조지 W. 부시 공화당 대통령을 근소한 차이로 앞질렀을 정도다.

미국 정치 평론가들은 '클라크 돌풍'을 인정하면서도 지금 같은 인기몰이가 지속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돌풍 요인 중 하나를 평생을 군에서 보낸 뒤 이제 막 정계에 뛰어든 클라크의 참신성에서 찾는다. 유권자들은 존 케리 상원의원·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리처드 게파트 하원의원을 비롯한 후보 9명 대다수에게 식상한 지 오래여서 이들의 경쟁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워드 딘 후보가 얼마 전까지 후보 경쟁에서 선두를 달린 것은, 다른 요인도 있지만 중앙 정치에 때묻지 않은 참신성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클라크 돌풍의 또 다른 요인은, 이라크 문제와 경제 실정으로 연일 죽을 쑤고 있는 부시 대통령의 낮은 인기도에 따른 반사 이익이다. 클라크는 최근 “부시가 나라를 망쳤는데도 이를 인정하기를 거부하기 때문에 후보에 출마했다”라며 본격적인 ‘부시 때리기’에 나서 불만에 가득찬 많은 유권자들로부터 환영받고 있다.

특히 그는 장성 출신이어서 ‘민주당 후보들은 국가 안보 문제에 관심도 없고 대처할 능력도 없다’는 비판을 일거에 잠재울 인물로 꼽혀 민주당원들에게 더욱 인기다.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을 거치며 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만큼 클라크가 후보로 나설 경우 과거 2차 세계대전의 연합군 총사령관 출신으로서 대통령을 지낸 아이젠하워의 영광을 재현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물론 이런 장점 못지 않게 클라크에게는 취약점이나 넘어야 할 고지가 적지 않다. 우선 그는 대선 후보답지 않게 전국적 선거 조직이 아직 없다. 출마를 선언한 날까지도 변변한 선거 조직이나 참모를 갖추지 못했다가 뒤늦게 2000년 대선 때 고어 후보 진영에서 선거 전략을 짠 론 클라인과 도니 파울러, 1992년 클린턴 후보의 선거 사령탑을 지낸 엘리 시걸과 홍보 전문가인 마크 파비아니 등을 영입했다. 최근에는 클린턴 2기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과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진 스펄링도 클라크 후보 진영에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기류를 반영하듯 항간에는 클린턴 전 대통령이 클라크를 적극 밀고있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선거 조직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정치 자금. 그가 내년 초 아이오와 주와 뉴햄프셔 주의 예비선거 때까지 버티려면 오는 12월 말까지 최소한 2천만 달러를 모금해야 하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역대 대선 후보 중 돈과 조직을 갖추지 않은 채 인기만을 믿고 선거에 도전했다가 당선한 경우는 한 차례도 없다는 선례를 감안할 때, 클라크에게는 자금이 커다란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클라크 후보의 ‘복병’은 자기 자신에게도 있다. 바로 군 안팎에 널리 알려진 그의 원만치 못한 성격이다. 그는 43세에 처음 별을 달았을 만큼 고속 승진을 거듭했지만, 그 과정에서 지나친 경쟁 의식과 오만함으로 주위의 빈축을 산 것 같다. 그는 평생을 군에서 보냈으면서도 정작 친구라곤 손꼽을 만큼 군부에 인맥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오죽하면 몇 안되는 군부의 지지자 가운데 한 사람인 존 샬리카시빌리 전 합참의장도 그를 가리켜 ‘너무 건방지고 자아도취적이며, 비판을 수용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비판했을까.

이런 성격적 요인 외에 클라크 후보를 괴롭히는 취약점은 또 있다. 그가 과연 민주당을 대변할 만큼 민주당 가치를 체득했느냐가 그것이다. 일종의 사상 검증인 셈인데, 실제로 그는 얼마 전 자기가 한때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과 로널드 레이건 후보에게 투표한 일이 있다고 밝힌 바람에 당내 대선 후보들로부터 맹공을 당하고 있다. 그는 또 지난해 10월 대 이라크 무력 사용에 관한 의회 결의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가 어쩐 일인지 올해 들어서는 이라크 전쟁을 맹렬히 비난했다.

자신의 이념 성향과 관련한 의혹이 커지자 클라크 후보는 연일 자기가 부시의 이라크 정책에 명백히 반대하며, 낙태와 소수민족 우대 조처를 찬성하는 자랑스런 민주당원이라며 적극 해명하고 있다. 그는 특히 대외 정책에서 부시 행정부의 일방주의를 지양하고 동맹 강화를 통한 다자 외교에 중점을 두겠으며, 그밖에도 선제공격론 배격과 국제형사재판소 찬성 등 부시 행정부의 기존 노선을 민주당 정책에 걸맞게 180°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클라크 후보가 설령 이같은 취약점들을 모두 극복하고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선다고 해도, 과연 부시를 누를 수 있을까. <워싱턴 포스트>의 정치 칼럼니스트인 리처드 코헨은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군 출신인 클라크가 유권자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감과 호감을 개발하지 못할 경우 2000년 대선 때 고어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당시 민주당 고어 후보는 정치 경험이나 현안에 대한 식견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부시 후보를 앞섰지만 딱딱한 이미지 때문에 부시에 비해 유권자들의 호감을 얻지 못했다. 코헨은 오늘날과 같은 텔레비전 만능 시대에 후보의 호감도는 득표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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