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중의 상 공쿠르가 너무해
  • 유재화 (자유기고가) ()
  • 승인 2003.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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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회 수상작’ 발표 일방적으로 앞당겨…프랑스 출판계·서점가 ‘황당’
프랑스 서점가는 11월이 대목이다. 수많은 문학상들이 10월 말에서 11월 사이에 집중적으로 발표되기 때문이다. 영광의 붉은 띠를 두른 수상작들을 찾는 독자들이 줄을 이어, 출판사든 서점이든 가만히 앉아 매출을 올릴 수 있다. 더욱이 올해는 공쿠르상이 100주년을 맞는 해여서 기대가 한층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소문난 잔치에 불과했는지, 먹을 것이 별로 없었다는 평이다.

소문난 잔치는 공쿠르상 주최측이 연출했다. 관례로 정해져 있는 날짜(11월3일)를 어기고 2주 전에 수상자를 발표한 것이다. 미리 수상 작품을 쟁여놓지 않은 서점은 당황했고, 다른 문학상 심사위원들도 규칙 위반이라며 펄쩍 뛰었다.

독자들 사이에서는 올해는 100주년 수상작인 만큼 뭔가 달라도 다를 것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여기서 다르다는 것은 작가가 여자 신예 작가여야 하며, 그 작품이 작은 출판사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100주년 기념 수상작은 이런 기대를 여지 없이 배반했다. 이번 수상자는 여러 차례 공쿠르상 후보에 오른 바 있는, 잡지 <포앵> 소속 문학평론가 자크-피에르 아메트의 <브레히트의 정부(La maitresse de Brecht)>에 돌아갔다. 출판사도 작은 데가 아니라, 최근 상당한 세를 과시하고 있는 알뱅 미셸이었다.

공쿠르상의 깜짝쇼 때문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문학상은 페미나상과 메디치상이었다. 두 상은 원래 공쿠르보다 1주일 앞서 발표하기로 되어 있었다. 페미나상 심사위원장 레진 드포르주(<푸른 자전거>의 작가)는 “만일 공쿠르측에서 올해가 100주년이니만큼 순서를 바꾸자고 사전에 양해를 구해왔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라고 개탄했다. 이에 대해 공쿠르 심사위원장인 에드몽드 샤를르-루는 “우리가 정말 뽑고 싶은 작가가 다른 상을 먼저 수상해버리면 우리는 그 작가를 선정할 수 없게 된다”라며 “올해 100주년만큼은 좀 자유롭게 선택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올해는 10월23일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이 가장 먼저 수장작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 대상의 유력한 후보였던 아메트가 이 상을 덜컥 수상해버리면, 공쿠르는 다른 작가를 선정해야 하는 처지였다. 공쿠르측은 ‘새치기’를 하면서까지 100주년만큼은 자기들이 원하는 작가에게 상을 주고 싶었던 것이다. 다른 상 심사위원들은 공쿠르 심사위원들이 너무 오만한 탓이라며 볼멘 소리를 냈다.

공쿠르 상이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10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개혁론 혹은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 1896년 사망한 에드몽드 드 공쿠르의 유언에 따라 만들어진 공쿠르 상은 1903년 처음 수상자를 낸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들을 찾아서>(더 정확하게는 제2부 <꽃피는 아가씨들 그늘에>)를 비롯해 앙드레 말로의 <인간 조건>,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시몬 드 보부아르의 <망다랭>, 미셸 투르니에의 <마왕>,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등 수상 작가와 작품만으로도 그 명성과 역사가 한눈에 드러날 정도다.

수상하면 돈방석…최고 마케팅 상품으로 통해

그러나 오늘날의 공쿠르상은 한마디로 ‘최고의 마케팅 전략’으로 통한다. 수상 작품은 프랑스 서점에만 기본으로 30만부가 깔린다. 이후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어 막대한 이득을 얻게 된다. 따라서 공쿠르상은 작가보다는 출판사에게 준다고 보아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공쿠르상의 보수성과 경직성은 수상자를 낸 출판사 명단만 보아도 훤히 짐작할 수 있다. 지난 100년 동안 갈리마르 출판사가 33회, 그라세 출판사가 16회, 알뱅 미셸이 10회, 쇠유가 5회다. 특히 알뱅 미셸은 최근 10년간 세 차례나 공쿠르 수상작을 냈다. 이런 사실을 들어 프랑스 출판계가 갈리그랄뱅(galligralbin)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을 정도다.

물론 갈리마르·그라세·알뱅 미셸이 공쿠르상을 휩쓰는 이유는 있다. 문학 작품을 주로 출판하고, 좋은 작가를 많이 확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출판사의 영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아무리 좋은 작가가 좋은 작품을 써도 유명 출판사에서 책을 내지 못하면 수상할 확률이 낮아진다.

게다가 세간에는 ‘공쿠르상을 받기 위한 지침서가 따로 있다’는 말도 공공연히 나돈다. 첫째, 공쿠르적인 소설을 쓸 것. 둘째, 심사위원들이 책을 내는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할 것.상황이 이쯤 되자 <리베라시옹>(10월23일자)은 공쿠르상을 개혁해야 한다며 소리를 높이고 나섰다. 영국이나 독일의 예처럼, 순환 심사위원제를 두거나 출판사와 이해 관계가 없는 외부 인사를 심사위원으로 두자는 방안도 내놓았다. <리베라시옹>은 이 기사의 제목을 ‘공쿠르상, 친구들(끼리끼리) 상’이라고 달았다. 프랑스 굴지의 출판사와 대학, 신문사, 방송사 등이 파리 도심 몇 km 반경 안에 다 모여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이 같은 파티에 참가하고, 같은 식당에 가며, 같은 지하철을 타고, 함께 바캉스를 보내는 사실을 비꼰 것이다. 또한 작가인 동시에 기자이고, 출판사 편집자이자 심사위원인 경우가 많아, 모두 한통속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10월 말에서 11월 사이에 몰려 있는 각종 문학상들의 발표 날짜를 조정하자는 의견도 있다. 패자 부활전 같은 인상을 주는 ‘12월상’이 따로 있는데, 이 상 역시 11월에 발표된다. 서로 자존심 싸움이 심한 공쿠르상과 페미나상의 발표 간격을 멀찍이 벌려놓자는 제안도 있다. 페미나상은 공쿠르상 심사위원들이 남자 일색인 것에 반발해 여성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상이다. 자신들이 점찍어둔 작가가 미리 다른 상을 수상해버릴 경우 좀 처지는 작가를 뽑거나 중복해서 선정함으로써 상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도 왕왕 있었다. 공쿠르상과 페미나상은 그 타협안으로 한 해씩 번갈아 가며 1주일 먼저 수상작을 발표하자고 약속한 바 있다.

공쿠르상 100주년 기념이라는 영광까지 함께 받은 수상자 자크-피에르 아메트는 잡음에 휘말려 우울한 승자가 되었으나 좋은 작가라는 평가까지 훼손된 것은 아니다. 수상작 <브레히트의 정부>는 프롤레타리아-사회주의적인 새로운 연극을 만들려 했던 극작가 브레히트의 열정을 다룬 소설인데, 동독 비밀경찰 스타치의 첩자인 한 젊은 여배우와의 만남이 주요 줄거리를 이룬다. <브레히트의 정부>는 11월 들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우리들 친구, 인간들(Nos amis les humains)>을 제치고 판매 부수 1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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