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공산당 21세기 화두는
  • 북경/주장환 (jjhlmc@sisapress.com)
  • 승인 2000.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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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공산당, 제15기 5중전회에서 21세기 발전 청사진 제시…후계 구도 논의는 유보`
13억 중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6천4백만명의 ‘기관사’를 거느린 중국공산당 제15기 5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15기 5중전회)가 10월9∼11일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후 공보(公報)를 발표하고 폐막했다.

이번 15기 5중전회는 개막 전부터 21세기에 명실 상부한 강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청사진인 ‘국민 경제 및 사회 발전 10차 5개년(2001∼2005년) 계획’의 대강(大綱)을 심의하는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대대적으로 선전되었다.

또한 예년과는 다르게 <런민르바오(人民日報)>를 통해 대규모 인사 개편이 예고되었으며, 특히 당 중앙기율검사위원 및 관련 부서 간부들이 방청한다고 보도되어 ‘부패 척결’과 관련된 조처가 취해질 것이라는 말이 돌았다.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는 당 전국대표대회에서 5년마다 새롭게 구성하며, 중앙위원 및 중앙후보위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이 일반적으로 1년에 한 번씩 여는 회의가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인데, 중전회라고 불린다.

중전회는 봄에 열리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와 함께 중국에서 가장 중요한 양대 정치 행사다. 그 이유는 중전회가 중국의 정치·경제·사회·문화·타이완 문제 등을 토의하고 결정해 그대로 시행하기 때문이다. 또 중전회에 오를 의제들은 당·정·군 지도자들이 모이는 여름 휴양지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사전 토의에 부쳐지는 것이 중국 정치의 특색이다. 15기 5중전회에서 당초 예상대로 제10차 5개년 계획(10-5 계획)의 청사진인 ‘중국공산당 중앙의 국민 경제·사회 발전 제10차 5개년 계획 제정에 관한 건의’가 통과되었다. 주룽지(朱鎔基) 총리가 이 건의의 초안을 설명하고,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보충 연설을 했다.

이번 15기 5중전회에서 장쩌민 국가주석은 ‘경제 발전 3단계론’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경제 발전 3단계론은 1970년대 말 덩샤오핑(鄧小平)이 제기했던 것이다. 첫 단계는 1981∼1990년 국민총생산액을 2배로 늘려 ‘먹고 입는 기본적인 문제(溫飽)를 해결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20세기 말에 국민총생산액을 다시 2배 늘려 국민 생활을 ‘중류 수준(小康)에 이르게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21세기 중기에 국민총생산액을 재차 2배로 늘려 중국을 ‘중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덩샤오핑이 제기한 제1·2 단계 목표는 1987년과 1995년에 실현되었다. 장 주석은 연설에서 “덩샤오핑 동지의 위대한 전략 배치를 견지하여, 21세기 첫 10년간 국민총생산액을 2000년의 2배로 늘림과 동시에 각종 제도를 개선해 21세기 중엽에는 현대화한 사회주의 문명 국가를 건설하자”라고 역설했다.

10-5 계획은 양적인 성장이 아니라 질적인 성장에 중점을 두기로 방향을 정했다. 쩡페이옌(曾培炎) 국가계획위원회 주임은 10-5 계획의 중점은 경제 부문의 구조 조정을 가속화해 질적인 성장과 효율성을 높여 가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9-5 계획 때의 국민총생산액 성장률(9.5%)에 비해 1∼2% 포인트 낮은 7∼8% 정도의 성장률을 잡고, 지속적인 시장 경제 발전, 첨단 과학 기술 중점 육성, 국내 수요 증대를 이루어 가는 것이 주요 목표라고 소개했다.

이는 단순한 양적인 성장만으로는 한계가 있고, 최근 불거진 ‘수출은 증가하는데, 경기는 퇴조하는 현상’ 등 고질적인 경제 구조를 개선하지 않고는 더 발전하기 어렵하다는 인식을 지도자들이 공유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의 상황과 경제 시장화·국제화에 대비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9월 말 중국의 대표적 일간지 <런민르바오>는 이번 15기 5중전회에서 대규모 인사 이동이 결정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조율이 안된 것으로 알려진 제4세대 후계 구도에 대해 고위 지도자들이 합의한 것으로 해석하고 잔뜩 기대했다.

특히 관심은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부주석과 쩡칭훙(曾慶紅) 당 조직부장에게 집중되었다. 장 주석이 지난 9월5일 유엔 밀레니엄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할 당시 중국 고대의 유명 시인 수둥포(蘇東波)의 ‘바람을 타고 돌아가고 싶네(我慾乘風歸去)’라는 시 구절을 인용할 때부터 후 부주석에게 국가주석 직이 인계되는 것이 기정사실화되었다.

1984∼1989년 상하이(上海) 시 당 조직부장 등을 거치며 지금까지 장 주석을 보필해온 쩡 조직부장 역시 이번 회의에서 지난해 10월 사망한 전 전인대 부위원장 셰페이(謝飛)를 대신해 22명으로 구성된 정치국 위원으로 진입할 것이라고 점쳐졌다. 특히 10월10일 <졔팡르바오(解放日報)>와 신문 전문 사이트 포커스닷컴(www.focus.com.cn) 등에는 쩡 조직부장의 인사안이 통과되었다고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치국 위원 이상급에 대한 인사 이동은 없었고, 중앙위원으로 웨하이옌(岳海岩)·황즈취안(黃智權)·왕정푸(王正福)가 승진했을 따름이다.
사실 중국 제4세대 지도자들에 대한 논의는 지난 8월 열린 베이다이허 회의에서도 공전했다. 소식통에 의하면, 리펑(李鵬)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부패와 관련되어 이미 사형이 집행된 청커졔(成克杰) 전 전인대 부위원장을 비롯한 자파 인사들을 장 주석이 너무 가혹하게 처리했다고 보고 있어 이 둘의 사이는 악화일로이다. 또 장 주석의 쩡 조직부장 천거안과 주룽지 총리의 광둥(廣東)성 당 서기 리창춘(李長春) 천거안에 대해서도 서로 반대 입장을 표명해 내년에 다시 논의할 것으로 결정했었다. 베이다이허 회의와 이번 회의에서 인사 관련 논의가 공전된 것은 아직 차세대 지도자에 대해 최고위 지도자들이 합의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패 척결에 대한 단호한 의지는 계속 표출되었다. 회의는 국무원 실세 부서인 국방과학기술공업위원회 쉬펑항(徐鵬航) 부주임(차관급)을 중앙후보위원 직에서 파면했다. 죄목은 1993년 국무원 국가경제무역위원회 부주임 때 후베이(湖北)성 소재 국유기업 캉사이(康賽) 그룹이 증시에 상장하는 것을 도와주고 이 회사의 사내 노동자 주식을 이용해 거액(인민폐 1백13만 위안 상당)을 축재했다. 특히 그는 지난 12월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조사에 나선 것을 안 후 즉시 축재한 돈을 캉사이에 되돌려주었으나 ‘중국공산당기율처분조례’를 위반했다고 처벌을 받았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부패 척결의 희생양이라는 평가도 있다.

타이완 문제도 공보에서 지적되었다. 이번 회의에서는 타이완의 정국 혼란을 틈타 통일에 대해 아리송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을 뒤흔든다는 단기 전술이 확정된 것으로 소식통은 전했다. 이는 10월16일 발표된 <2000년도 중국 국방 백서>와 일련의 군부 움직임을 통해서 드러났다. 국방 백서는 ‘중국 인민해방군은 타이완이 독립을 추구하거나 계속 불확실한 태도를 보이면 타이완을 무력 침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중국이 타이완을 침공할 경우 예상되는 미국의 참전을 두고 ‘만약 외국 군대가 중국 국내 사업을 간섭할 경우, 중국은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라고 못박았다. 지금까지만 보면 이 계획은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타이완 주가가 폭락하고, 천 총통이 중국에 완곡한 어조로 ‘대화’를 촉구했기 때문이다.

15기 5중전회는 전체적으로 경제 문제에 치중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랬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경제와 관련해서 토론이 순조롭게 이루어진 이유는 10-5 계획 자체가 덩샤오핑의 발전 전략 구상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 특히 인사 문제는 덩샤오핑과 같은 권위가 존재하지 않아 진통을 겪는 것이다.

역대 정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한 권력 기반을 갖고 있다고 평가되는 장 주석 중심의 제3세대 지도자 그룹이 어떻게 안정적으로 정권을 재창출할 것인가가 이후 중국 사회를 바라볼 때 관심을 기울여야 할 주제라는 것이 이번 회의를 통해서 더욱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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