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마지막 승부 가를 TV 토론
  • 워싱턴/변창섭 (cspyon@sisapress.com)
  • 승인 2000.10.1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어·부시, TV 토론회에서 최후의 승부…인신 공격은 자제
1984년 10월 초순 재선에 도전한 공화당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월터 먼데일과 전국에 텔레비전으로 생중계되는 토론을 벌였을 때의 일이다. 질문자 가운데 한 사람인 <볼티모어 선>의 외교 전문 기자 헨리 트레위트가 당시 73세인 레이건 대통령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역사상 제일 나이가 많은 현직 대통령으로서 비상 시국이 닥치면 잠도 제대로 못 잘 텐데, 과연 국정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레이건이 발끈했다. “전혀 문제없소. 그런데 트레위트 씨, 난 이번 유세 기간에 나이를 가지고 문제 삼지 않겠소. 절대로 상대방의 연소함이나 경험 부족을 문제 삼아 정치적 목적을 거둘 생각은 추호도 없단 말이오”라고. 레이건의 멋진 반격을 지켜본 유권자들은 한바탕 웃었지만, 바로 그 질문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은 오히려 먼데일이었다. 선거 결과가 예상과 달리 레이건의 압승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오는 11월7일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요즘 미국은 대통령 후보 간의 텔레비전 토론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특히 최근까지도 여론조사에서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와 민주당의 앨 고어 후보가 서로 앞서거니 뒷서거니해 온 상황이어서 이번 토론 결과가 당락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아직까지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부동층에게 이번 텔레비전 토론회는 절호의 선택 기회를 제공한다. 게다가 ABC·NBC·CBS 등 전국 텔레비전 방송이 황금 시간대인 밤 9시부터 90분 동안 이번 토론회를 생중계할 예정이다.

사실 이번 토론회 일정과 형식 문제를 놓고 부시와 고어 양측은 팽팽한 의견 대립을 보였다. 특히 언변이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진 부시는 딱 한 번만 전국 텔레비전망을 통해 90분짜리 토론회를 갖고, 나머지 두 번은 CNN의 <래리킹 쇼>와 NBC 방송의 <시사대담 쇼>에서 60분짜리 토론회를 갖자고 궁색한 제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토론에 자신있는 고어의 생각은 달랐다. 전례대로 초당적인 대통령선거위원회가 정한 규칙에 따라 토론회를 갖고 ABC·CBS·NBC 등 3대 텔레비전 방송이 생중계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부시측은 처음에는 완강히 고어측의 제의를 거부했다. 전국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이 부시의 옹색한 태도를 비판하자 부시는 마지 못해 고어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난 9월 중순 대통령선거위원회가 중재해 양측이 합의한 바에 따르면, 토론은 10월 3일·11일·17일 모두 세 번 실시되며 각 90분씩이다. 또 패널을 구성하지 않고 사회자가 토론을 주관한다. 첫 번째 토론회에서 각 후보는 사회자의 질문에 2분씩 답변할 기회가 주어지며, 상대측 답변에 대해 1분씩 반박할 기회도 갖는다. 또 사회자의 재량에 따라 3분30초 가량 상대 후보를 비판할 시간이 주어진다. 두 번째 토론부터는 사회자의 질문에 답변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기로 했다. 또 1차 토론 때는 각 후보가 연단에 서서 사회자의 질문에 대답하게 되며, 2차 토론 때는 탁자 앞에 앉아서, 마지막 토론 때는 각계각층의 청중을 모아놓고 자유롭게 질문을 받는 식으로 진행한다. 토론의 사회자로는 PBS 방송의 권위 있는 뉴스 앵커이자 1988년 이래 대선 후보의 텔레비전 토론회 사회를 맡아온 언론인 짐 레러가 선정되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세 차례 토론회는 부시·고어 후보의 당락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적인 행사다. 이 때문에 두 후보는 참모들을 동원해 모의 토론을 벌이는 등 치밀하게 준비해 왔다. 부시는 이미 지난 5월부터 텍사스에 있는 주지사 저택에서 뉴햄프셔 주 연방 상원의원인 저드 그레그를 고어 역으로 삼고 본격적인 모의 토론회를 가져 왔다. 이에 반해 고어는 불과 몇주 전에야 측근 참모들과 몇 차례 모의 토론회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만큼 토론에 관한 한 그는 무슨 주제이건 부시를 누를 수 있다고 자신한다.

오늘날 대통령 선거에 앞서 ‘통과 의례’처럼 되어버린 텔레비전 토론회가 처음 열린 것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이다. 당시 주인공은 공화당의 리처드 닉슨 후보와 민주당의 존 F. 케네디 후보. 그 때만 해도 흑백 텔레비전 시대여서 영상을 통한 텔레비전 토론이 과연 시청자에게 얼마나 영향을 줄 것인지 모를 때였다. 게다가 토론 직전까지의 여론은 현직 부통령인 닉슨의 우세로 나타났다. 그러나 영상 매체가 주는 이미지 효과는 그런 여론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았다. 재수 없게도 며칠 전 무릎을 다친 닉슨은 초췌한 모습으로 연단에 섰고, 젊고 패기찬 케네디는 시청자에게 신선한 신뢰감을 주었다. 이들의 토론을 들은 라디오 청취자들은 언변이 더 능한 닉슨에게 후한 점수를 준 반면, 텔레비전 토론을 지켜본 7천만 시청자 대부분은 케네디에게 지지를 보냈다. 텔레비전 토론이 대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첫 기록이다.

그러나 대선 후보간 텔레비전 토론회는 ‘닉슨-케네디 토론’ 이후 16년 간이나 열리지 않았다. 1964년에는 린든 존슨이, 1968년과 1972년에는 닉슨이 토론회 자체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1976년에 들어 텔레비전 토론은 재개되었다. 당시 미국 사회는 베트남전 패배에 따른 후유증과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어지러웠다. 자연히 유권자들은 이런 고질을 치유해 새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후보를 원했고 그것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텔레비전 토론회가 다시 도입되었다. 1976년 대선의 경쟁자는 공화당의 제럴드 포드와 민주당의 지미 카터. 토론회 결과 ‘동유럽은 소련의 지배 아래 있지 않다’고 돌출 발언을 해 점수가 깎인 포드가 패했다.

이처럼 텔레비전 토론회가 대선의 당락을 좌우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 문화로 자리잡은 까닭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텔레비전이라는 생생한 영상 매체를 통해 각 후보의 진실성과 가식이 낱낱이 가려지기 때문이다. 각 후보가 전국을 누비며 그럴싸한 선거 구호를 제시하는 유세 활동이 미리 준비된 행사라면, 텔레비전 토론회는 후보의 ‘준비되지 않은’ 실력까지도 검증할 기회를 제공한다. ‘텔레비전 토론의 달인’이라는 빌 클린턴 대통령은 “텔레비전 토론이야말로 진짜 당신의 본색을 드러나게 해준다. 왜냐하면 당신이 세계 최고의 배우가 아니고서야 상대방과 열띤 논쟁을 벌이다 보면 본색을 감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텔레비전 토론회와 관련해 부시와 고어 후보 진영은 나름의 ‘게임 플랜’을 마련해 두었다. 고어는 무엇보다 현재의 사회보장제도를 수술하기 위해 천억 달러를 투입하겠다는 부시의 야심 찬 계획이 얼마나 허구적인가를 완전히 까발릴 작정이다. 이에 반해 부시는 이번 선거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교육 문제를 단단히 물고늘어질 태세다. 또 고어가 제시한 처방전 약품에 대한 정부 보조금 계획이 7백만으로 추정되는 노인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잔꾀라고 규정하고, 이를 맹공격한다는 방책도 세워놓았다. 다만, 전례를 보아 두 후보 모두 상대방에 대한 인신 공격은 자제한다는 방침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