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마이크로소프트 “믿을 건 정치뿐”
  • 워싱턴/변창섭 (cspyon@sisapress.com)
  • 승인 2000.04.20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 독점 판결 ‘철퇴’…소송 잇따르면 더 큰 위기
“이번 판결은 어느 한 기업이 아무리 강력하건 성공적이건 상관없이 규칙에 따른 상행위를 거부해서는 안되며, 미국 소비자들에게 선의의 (기업간) 경쟁을 무너뜨려서는 안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선언한 것이다.”

지난 4월3일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세계 제1인자인 마이크로소프트 사에 대해 미국 연방지법이 독점 판결을 내린 뒤 연방 법무부 조엘 클라인 독점금지담당 차관보가 한 말이다. 그는 경쟁이야말로 미국 경제의 골간을 이루며, 그래서 독점금지법이 존재한다는 점을 분명히했다. 미국은 물론 전세계의 지대한 관심 속에 진행되어 온 마이크로소프트 사에 대한 독점 소송은 한마디로 공정한 경쟁의 룰을 보장하기 위해 제기되었다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미국의 국부 창출에 수훈 갑이요 21세기 첨단 정보 산업을 이끄는 대표적 회사이지만, 독점적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다른 소프트웨어 업체들의 경쟁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응당 법에 따라 심판받아 마땅하다는 이 단순한 법의 논리 앞에서 크게 휘청거리고 있다.

앞서 클라인 차관보가 지적한 독점금지법이란 1890년에 제정된 ‘셔먼 독점 금지법’을 말한다. 올해로 법 제정 110주년을 맞은 이 법의 취지는, 기업 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촉진해 시장 경제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오늘날 9조 달러 규모의 미국 경제가 세계를 선도하며 승승장구하는 것은 기업 간의 자유로운 경쟁을 보장한 셔먼법이 건재했기에 가능했다.

바로 이 셔먼법을 내세워 미국 법무부와 캘리포니아 주를 포함한 19개 주가 전세계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90% 이상을 석권해온 마이크로소프트 사를 상대로 한 독점 소송에서 승리했다. 1998년 5월 처음 소송을 제기한 후 근 2년 만의 쾌거다. 미국 역사에서 가장 큰 반독점 공방이라 할 이번 소송에서 법원이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독점 행위를 인정해 정부측 주장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주심인 연방지법 토머스 펜필드 잭슨 판사는 지난 4월3일 무려 43쪽에 이르는 최종 판결문을 통해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세 가지 점에서 셔먼법을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즉 ‘반경쟁적’ 수단을 동원해 개인용 컴퓨터 운영 체제에 대한 독점을 유지한 것이 첫 위반 사례이며, 웹브라우저 경쟁사들의 시장 진입을 막기 위해 ‘고의적이고 의도적인’ 수단을 동원한 것이 또 하나이며, 윈도 운영 체제에 자체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팔아 다른 회사들의 웹브라우저 혁신 노력을 방해했다는 것이 마지막 위반 사례로 적시되었다. 이같은 판결 내용은 지난해 11월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행위를 독점이라고 단정한 예비 판결 이후 예견되었지만, 이번의 경우 셔먼법을 위반했다는 구체적인 증거를 명시한 것이 특징이다.
5월24일에 최종 시정 조처

잭슨 판사의 판결이 나오자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은 판결에 불응한다는 뜻을 천명하고 끝까지 법정 투쟁을 벌이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자산 가치 5천억 달러의 컴퓨터 제국으로 발돋움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이번 독점 위반 판결로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잭슨 판사는 판결을 내리기 무섭게 늦어도 오는 5월 말까지 현재의 독점 소송을 끝내겠다는 뜻을 분명히 나타냈다. 이에 따라 그는 원고측에 4월28일까지 시정안을 내라고 요구했고, 피고측 마이크로소프트 사에 대해서도 반론서를 4월10일까지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이를 토대로 오는 5월24일 최종 시정 조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이처럼 서두르는 까닭은, 재판을 질질 끌어 결과적으로 호황인 경제에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해 일부 관측통은 과거 고등법원이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입장에 동조했던 점을 의식해 잭슨 판사가 이번 독점 소송을 연방대법원이 직접 심리해 달라고 요청할지 모른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원고인 연방 법무부와 19개 주가 어떤 시정안을 법원에 요구할까.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한 독점 소송이 제기된 후 줄곧 정부측 소송단을 이끌어온 클라인 독점금지담당 차관보는 구체적인 시정 방안에 침묵하고 있다. 다만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독점 남용 행위에 반드시 종지부를 찍어 소비자는 물론 기업의 혁신과 경쟁 체제를 보호하겠다’는 강한 원칙만을 천명했을 뿐이다. 물론 그가 일부에서 예측하는 대로 마이크로소프트 사 강제 분할이라는 극약 처방을 들이밀 것이라는 데에는 회의적 분위기가 우세하다. 게다가 19개 주정부 검찰총장 가운데 대다수는 강제 분할안이 너무 과격하다고 본다.

물론 피고인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잭슨 판사가 어떤 시정 방안을 내놓든 곧바로 관할지인 워싱턴 D.C. 순회고등법원에 제소한다는 방침이다. 고등법원은 잭슨 판사의 판결을 뒤엎고 재심을 요구하든가, 아니면 1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든가 양자 택일을 하게 된다. 물론 고등법원이 잭슨 판사의 판결을 받아들일 경우,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곧바로 연방대법원에 상고한다는 입장이어서 최종 판결은 2002년께에 나올 것 같다. 현재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곧바로 고등법원에 제소하지 않고 일단 시간을 벌겠다는 계산인 것 같다.

공화당으로의 정권 교체가 한 줄기 희망

시간 벌기 과정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사에 한 가닥 희망이 있다면 정치적 변수이다. 반독점 문제에 다소 관용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 조지 W. 부시가 당선될 경우 의외로 일이 순조롭게 풀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금이야 클린턴의 민주당 행정부에서 재닛 리노 법무장관이나 클라인 차관보가 결사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독점 행위를 들추어내고 있지만, 만일 정권이 공화당으로 바뀌면 독점 문제에 좀더 신축적인 공화당 인사들이 법무부에 등용되어 정치적으로 해결할 실마리가 풀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지나쳐서 안될 것은 이번 판결을 근거로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경쟁사들이 대거 독점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다. 여기에는 최대의 피해자인 넷스케이프와 이를 인수한 아메리카온라인, 자바 프로를 개발한 선마이크로시스템, 애플컴퓨터, IBM 등이 포함된다. 잭슨 판사는 자신의 판결문에서 이들 기업이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억압적인 경쟁 방해’ 행위로 피해를 보고 있다고 명시했다.

게다가 잭슨 판사는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독점적 시장 지배력을 이용해 윈도 운영 체제 가격을 터무니없이 높였다고 판시함으로써 굴지의 컴퓨터 회사인 델·컴팩·게이트웨이·IBM 등이 이 판결문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들 회사가 승소할 경우 마이크로소프트 사는 천문학적인 비용을 물어야 한다. 현재까지 마이크로소프트 사를 상대로 반독점 소송이 제기된 건수는 10여 개 주에서 100건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독점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졌다고 한다. 실제로 지난해 마이크로 소프트 사의 쟁쟁한 엔지니어와 중역 들이 신생 인터넷 벤처 회사로 많이 옮겨 갔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신규 수익 사업 분야에서 마이크로소프트가 이미 경쟁사들에게 밀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개인용 컴퓨터 운영 체제인 윈도에서 인터넷 분야로 사업 확장을 꾀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일대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경쟁에는 성역 없다”MS ‘3대 원죄’ 심판

연방지법 판결문 요지/셔먼법에 의거해 ‘끼워 팔기’ 등 인정

잭슨 판사가 마이크로소프트 사에 대해 독점 판결을 내린 근거는 ‘셔먼 독점 금지법(Sherman Antitrust Act)’이다. 그는 43쪽에 이르는 판결문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개인용 컴퓨터 운영 체제 부문에서 반강제적인 수단을 동원해 독점을 유지했고, 웹브라우저 시장에 대한 독점을 기도하려 했으며, 자체 웹브라우저인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윈도에 끼워 팔아 결과적으로 독점금지법을 위반했다고 판시했다. 그러나 잭슨 판사는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다른 기업들과 일련의 협정을 체결해 인터넷 익스플로러의 흥행을 도모하려 했다는 원고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독점에 대한 해석과 관련해 잭슨 판사는 셔먼법 제2항을 들었다. 이 조항은 ‘개인이건 기업이건 상대와의 교역이나 거래에서 독점하는 행위는 불법이다’라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잭슨 판사는 특히 어떤 회사에 독점이라는 굴레를 씌우려면 우선 그 회사가 해당 분야의 ‘관련 시장(relevant market)’에 종사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며, 다음으로는 문제의 회사가 가격을 조작할 수 있는 실제 힘을 가져야 한다고 내세웠다. 이런 근거에 따라 그는 ‘관련 시장’이란 인텔 사와 호환 가능한 개인용 컴퓨터 운영 체제 시장이며, 바로 이 부분에서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독점 행위를 했으므로 불법이라고 판시했다. 특히 그는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 대한 윈도의 시장 장악력이 95%를 초과함으로써 윈도 이외의 다른 어떤 운용 체계도 소비자의 수요를 이끌어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번 판결의 또 다른 핵심 대목인 마이크로소프트의 ‘끼워 팔기’에 대해서도 잭슨 판사는 셔먼법 제1항을 들었다. 이 조항의 핵심은 ‘경쟁을 저하시키는 그 어떤 계약이나 결합 또는 음모도 금한다’고 되어 있다. 잭슨 판사는 과거 대법원 판례를 들어 가며 ‘끼워 팔기’와 ‘배타적 상거래 계약’이 바로 이 조항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잭슨 판사는 과거 이스트맨 코닥 사가 소비자에게 사진 복사기를 팔면서 관련 부품까지 강매한 것은 부품과 서비스에 대한 소비자의 기호를 무시한 불법 행위라고 판결한 대법원 판례를 예로 들었다. 이런 맥락에서 잭슨 판사는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1995∼1998년 윈도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팔아 결과적으로 경쟁사인 넷스케이프에 상당한 손해를 끼쳤다고 판시했다.

“반경쟁적 수단 동원했다”

잭슨 판사는 특히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윈도에 끼워 파는 과정에서 이른바 반경쟁적 수단을 동원했으며, 이는 셔먼법 제2항에 위배된다고 판시했다. ‘반경쟁적’이라는 표현과 관련해 그는 ‘관련 시장에서 피고측 회사가 상당히 배타적인 영향력을 보이는 것이 확인될 경우 그런 행위는 반경쟁적이라 볼 수 있다’고 정의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윈도 운영 체제를 고집함으로써 넷스케이프의 내비게이터나 선마이크로시스템의 자바 기술이 활용될 여지를 막았다고 판시했다.

그는 ‘본질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경쟁사들이 나름의 장점을 갖고 인텔과 호환 가능한 개인용 컴퓨터 운용 시장에 경쟁이란 요소를 도입할 수도 있었을 기업적 노력을 고의적으로 압살했다’며 ‘마이크로소프트 사의 반경쟁적 행위는 컴퓨터 소프트웨어 산업의 혁신성을 자극하고 소비자에게 최적의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요체인 경쟁적 과정을 짓밟았다’고 판시했다.

다만 잭슨 판사는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애플이나 컴팩 같은 기업들과 공조적 계약을 맺은 것이 셔먼법 제1항에 위배된다는 원고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마이크로소프트 사가 이들 회사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적극 활용해 결과적으로 넷스케이프 사의 웹브라우저인 내비게이터를 배제하도록 했다고 원고측이 주장하지만, 이런 계약들로 인해 넷스케이프 사가 관련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완전히 배제되었다는 증거는 없다고 판시했다. 또 워싱턴 D.C. 순회고등법원이 1998년 판결을 통해 윈도에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끼워 팔아도 무방하다고 한 데 대해 이의를 제기했다. 이 판결이 비록 ‘소비자에게 혜택을 줄 만한 주장이 있을 경우’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경쟁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어떤 상품이건 반독점의 꼼꼼한 심사 대상에서 제외하려는 듯 보인다’며 대법원 판례에도 어긋난다고 판시했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