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고어 뛰고 부시 날다
  • 워싱턴·卞昌燮 편집위원 ()
  • 승인 2000.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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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공화당 선두 주자로 첫 시 험대 통과…여론조사는 부시 우세
오는 11월7일 백악관에 입성하려는 미국 대통령 후보들의 열띤 선거전이 지난 1월 하순 아이오와 주 코커스(당원대회)를 시작으로 본격화했다. 각 후보가 유세 강행군에 들어간 것은 물론이고 텔레비전 방송사들이 주선한 이런저런 토론회에 나가 홍보전에 진력하는 모습도 곧잘 눈에 띈다. 특히 선거전이 갈수록 뜨거워지면서 얼마 전까지 볼 수 없었던 ‘네거티브 캠페인’(상대 후보 비방)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현재 공화당 대선 후보는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 존 매케인 상원의원, 출판 재벌인 스티븐 포브스, 유엔 대사를 지낸 앨런 키스, 극우 보수주의자 게리 바우어 다섯 사람이다. 이처럼 5명이 경합하는 공화당에 비해 민주당은 처음부터 앨 고어 부통령과 빌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 간의 2파전으로 압축된 상태이다. 물론 각종 여론조사는 전국적으로 공화당에서는 부시 후보가 단연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고, 민주당의 경우 지난해 다소 부진하던 고어가 최근 들어 브래들리를 앞지르고 있다.

부시, 누구와 맞서도 승리는 ‘떼어놓은 당상’

부시와 고어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둘 다 현직이라는 프리미엄 외에 당내 조직 기반이 든든하다는 점이다. 다만, 여론조사 결과는 지난해와 마찬가지여서, 당장 내일 선거가 치러질 경우 공화당 부시 후보가 민주당의 어느 후보와 맞서도 거뜬히 이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들 후보가 백악관에 입성하기 위한 첫 시험대는 1월24일 아이오와 코커스였다. 공화·민주 양당에 등록된 당원들이 참가해 주 전역 2천1백43개 행정 구역에서 실시된 대의원 선거에서 예상했던 대로 공화당에서는 부시 후보가 41%로 선두를 기록했고, 민주당에서는 고어 후보가 무려 63%를 차지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이 결과에 따라 공화당에서는 아이오와 주에 배정된 대의원 총 25명 중 부시 후보가 10명을, 30%로 2위를 차지한 포브스 후보가 8명을 각각 확보했다. 민주당에서는 총 47명의 대의원 가운데 30명을 고어가, 나머지 17명은 브래들리 후보가 차지했다.물론 아이오와 주 코커스 결과만 가지고 백악관 입성 가능성을 점칠 수는 없다. 1977년 조지아 주지사로 무명이던 민주당 지미 카터 후보가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 선거)에서 1위를 차지한 뒤 백악관에 입성한 사례가 있기는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상황은 바뀌었다. 1980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각각 선두를 차지했던 공화당 부시와 민주당 카터는 백악관 입성은커녕 당내 후보 지명전에서도 탈락했다. 또 1988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승리한 공화당 봅 돌 후보도 당내 경선에서 패했다.

가장 큰 이변은 1992년 대선 때 일어났다. 당시 민주당에 혜성처럼 나타난 클린턴 아칸소 주지사가 아이오와 코커스는 물론 뉴햄프셔 예비 선거에서 모두 선두를 빼앗기고도 전당대회에서 후보 지명권을 따냈고, 그 여세를 몰아 백악관 입성에 성공한 것이다. 이처럼 들쭉날쭉한 결과를 내놓기는 해도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예비 선거 결과는 전통적으로 역대 대선 후보의 백악관 입성을 가늠하는 풍향계 구실을 해왔다.

현재 공화·민주 양당 후보의 세력 판도를 살펴보면, 공화당의 경우 부시 후보가 단연 선두를 달리고 매케인 후보가 그 뒤를 바짝 쫓는 형국이며, 민주당의 경우 지난해까지도 고어·브래들리 두 후보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최근 들어 고어 쪽이 다소 앞서는 상황이다. 다만 민주당의 경우 브래들리 후보가 가장 많은 대의원이 걸린 캘리포니아 주와 뉴욕 주 예비 선거가 열리는 3월7일까지는 고어와 계속 후보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여 혼전이 예상된다.

우선 공화당 사정부터 살펴보자. 단연 선두 후보는 부시다. 그는 1월27일 CNN이 주선한 텔레비전 토론회에 출연해 세금 감면·낙태·보호 무역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를 놓고 자당 후보들을 거뜬히 제압하는 솜씨를 보였다. 최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포브스가 선전했지만 아직 부시의 상대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다. 포브스가 선전한 까닭은 우선 다크호스인 매케인 후보가 코커스에 참여하지 않은 데다 아이오와 주의 보수적 유권자가 그에게 표를 던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부시의 잠재적인 경쟁자는 지난해 12월 한 여론조사에서 그를 앞질렀던 매케인 상원의원이다. 당시 아메리칸 리서치 그룹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매케인은 부시보다 7% 높은 37%를 기록했다. 그러나 매케인의 최대 약점은 선거 자금 개혁과 관련해 당 지도부와 대립한 전력 때문에 당내에서 ‘왕따’ 당하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CNN 토론회에서 낙태 문제에 실언을 해 점수를 잃었기 때문에 부시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상태다.

사실상 압승 국면에 접어든 부시는 지난해 단 몇 달만에 선거 자금을 6천7백만 달러나 모금했을 만큼 자타가 공인하는 당내 선두 후보다. 그는 1월24일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승리를 거둔 직후 ‘오늘은 클린턴 시대의 마지막이자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며 마치 대통령 선거 당선자라도 된 듯한 자신감을 내보였다. 그가 이처럼 인기를 독차지한 이유는 대통령을 지낸 부친의 후광이 결정적으로 작용한 데다, 후보전에 뛰어든 상대 후보들이 전국적인 지명도에서 그에게 뒤처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그가 줄기차게 외치고 있는 ‘인정 어린 보수주의(compassionate conservatism)’라는 구호는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시절 풍미한 보수적 가치들을 다시 한 번 재현할 수 있는 대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고어, 클린턴 등에 업고 경제 호황 부각

이처럼 공화당 대선 후보 경쟁에서 부시의 독주가 기정 사실화하자 미국 주요 언론의 관심은 민주당 대선 후보 경쟁에 쏠리고 있다. 과연 브래들리 후보가 현직 부통령이라는 프리미엄을 누리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는 고어 후보를 따돌릴 수 있겠느냐가 관전 포인트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달 아이오와 코커스 결과는 브래들리에게 상당한 타격으로 작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지난해 무려 73일 동안 아이오와 주에 머무르면서 선거 자금을 2백20만 달러나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아이오와 코커스를 승리로 장식하고 여세를 몰아 뉴햄프셔 예비 선거에서 고어를 ‘완패’시킨다는 전략을 짠 그였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고어가 63%로 자신(35%)을 훨씬 앞지른 것으로 나타나 이런 전략에 차질이 빚어졌다.

사실 브래들리가 지난해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고어는 그를 철저히 무시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브래들리보다 현직 부통령인 고어가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지난해 9월 초 CNN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부시 후보의 맞상대로 고어가 나설 경우 17% 차이로 뒤지는 반면 브래들리가 나서면 20%나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 달 뒤 <뉴스위크>가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고어가 부시에 9%나 처진 데 반해 브래들리는 이보다 적은 5%로 나타나 고어 선거 진영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부시와 고어의 지지율 격차가 좀체로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브래들리의 인기가 상승하자 한때 민주당에서는 브래들리 쪽을 염두에 둔 듯한 ‘후보 대안론’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위기감을 느낀 고어는 급기야 자신의 선거본부를 워싱턴에서 고향인 테네시 주로 옮기고, 샌님 이미지에서 벗어나 직접 발로 현장을 누비며 ‘행동하는 부통령’ 이미지를 심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지난해 말부터 그에 대한 지지율이 차츰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브래들리 후보가 자신의 심장 박동에 이상이 있음을 시인한 뒤로 고어 지지율은 더욱 치솟았다.

현재 고어 후보는 초반의 조바심에서 벗어나 현직 프리미엄을 한껏 살려 기필코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따내겠다는 결의에 차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성추문 사건 때문에 한때 고어는 그와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려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정반대다. 그는 클린턴 집권 8년의 최대 자랑거리인 경제 호황을 적극 부각하고, 이 호황을 지속시킬 수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라며 오히려 클린턴의 ‘적자’임을 자처한다. 클린턴은 아직 노골적으로 고어를 지지하지 않고 있지만,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고어가 승리한 직후 전화를 걸어 격려했다고 한다. 특히 클린턴은 고어에게 ‘앞으로 계속 경제 치적을 선거 이슈화할 경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한다.

유권자 “공화당의 공격적 선거운동에 호감”

유권자의 최대 관심사는 공화·민주 선두 주자끼리의 대선 경쟁 시나리오다. 즉 내일 당장 대선이 치러진다고 할 때 그 결과는 어떻게 나타날까. 이와 관련해 1월22일 미국의 유력한 전국지 <유에스에이 투데이>와 CNN이 갤럽과 공동으로 여론조사를 해 발표한 결과가 흥미롭다. 유권자 1천4백96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부시와 고어가 대결할 경우 부시가 53%, 고어가 42%를 얻을 것으로 나타났다. 또 부시 대 브래들리의 경우 부시가 49%, 브래들리가 45%로 역시 부시의 승리로 나타났다.

만일 공화당 후보가 부시가 아니고 매케인이라면 다른 결과가 나올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래도 공화당이 이기는 것으로 나온다. 매케인과 고어가 맞대결할 경우 매케인이 52%로 고어의 42%를 훨씬 앞질렀고, 매케인 대 브래들리의 경우 역시 매케인(47%)이 브래들리(43%)를 앞지를 것으로 나타났다. 즉 공화당의 경우 부시든 매케인이든 오는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는 ‘떼어놓은 당상’이라는 것이다. 이런 일방적 예측 결과에 대해 이 신문은 다트머스 대학 정치학과 린다 폴러 교수 말을 인용해 ‘고어와 브래들리의 점잖은 스타일보다 부시와 매케인의 과감한 선거운동 방식이 유권자에게 더 먹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아무튼 아이오와 코커스와 뉴햄프셔 예비 선거의 관문을 통과한 각당 후보들은 오는 6월까지 각 주 별로 유권자의 심판을 받는다. 그러나 대의원 수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 주와 뉴욕 주를 포함해 수십개 주의 예비 선거가 동시에 열리는 3월7일을 기점으로 공화·민주 양당의 대통령 후보가 누가 될지 최종 윤곽이 드러나게 된다. 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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