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결승전 오른 두 고민남
  • 워싱턴/변창섭 (cspyon@sisapress.com)
  • 승인 2000.03.23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백악관 향해 달리 는 두 명의 고민남
오는 11월 초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이 온통 선거 바람에 휩싸여 있다. 특히 지난 3월7일 ‘슈퍼 화요일’을 계기로 대선 구도가 부시와 고어의 대결로 압축되자, 텔레비전·신문·잡지 등 모든 언론이 경쟁적으로 선거 보도에 뛰어들어 선거 열기가 더욱 거세졌다. 따라서 온 나라의 관심은 부시 대 고어의 맞대결 구도가 어떤 식으로 펼쳐질지에 쏠려 있다.

슈퍼 화요일 행사가 끝나기 무섭게 부시와 고어는 본격적인 경쟁에 들어선 모습이다. 부시는 3월8일 NBC 방송에 출연해 고어를 가리켜 ‘워싱턴의 현상 유지를 대변하는 후보’라고 헐뜯었고, 이에 맞서 고어는 부시를 거명하지 않은 채 ‘공화당 후보 어느 누구와도 상대방을 비방하지 않고 정책 대결을 통해 승부를 가리겠다’고 점잖게 대꾸했다. 때마침 슈퍼 화요일 당일 NBC 방송과 <월 스트리트 저널>이 발표한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두 사람 모두 전국적인 지지율 46%를 기록하고 있어 경쟁은 이제부터라고 볼 수 있다.

부시·고어 전국 지지율 46%로 ‘막상막하’

슈퍼 화요일의 결과는 일찍이 예상했던 대로였다. 탄탄한 당 조직과 선거 자금을 밑천으로 공화당에서는 조지 W. 부시가, 민주당에서는 앨 고어 후보가 각각 승리한 것이다. 13개 주에서 동시에 치러진 예비 선거에서 부시 후보는 자기를 맹추격해온 존 매케인 후보를 동부 네 주를 뺀 아홉 주에서 제압했다. 또 민주당 고어 후보는 열여섯 주에서 실시된 예비 선거 모두에서 빌 브래들리 후보에게 완승을 거두었다. 이 날 승리를 기점으로 부시는 지금까지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1천34명 가운데 절반이 넘는 6백17명을, 고어는 2천1백70명 가운데 역시 절반이 훨씬 넘는 1천4백24명을 확보했다.

양당의 예비 선거는 지금까지 선거를 치르지 않은 나머지 주에서 오는 6월까지 계속된다. 이를 통해 최종적으로 공화당은 대의원 4천3백36명, 민주당은 2천66명을 뽑는다. 슈퍼 화요일 예비 선거에는 전당대회에 나갈 대의원 수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1백62명)와 뉴욕(1백1명) 주가 포함되어 있었는데, 3월7일 하루 만에 대의원 6백13명이 뽑혔다. 이 정도 대의원 수라면 공화당·민주당 모두 후보 지명권 확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바로 이 슈퍼 화요일을 고비로 공화·민주 양당의 최종 대선 후보가 판가름 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번 선거 결과를 두고 <뉴욕 타임스>의 이름 난 정치 분석가인 R.W. 애플은 “부시가 비록 슈퍼 화요일을 승리로 장식하기는 했지만 그 결과를 곰곰이 따져보면 그다지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말 그럴까. 사실 부시는 매섭게 추격해온 매케인 후보에게 뒤질까 봐 막판에는 기독교연합 같은 극우 단체의 지지까지 얻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유명한 극우 보수주의자인 팻 로버트슨 목사가 공개적으로 부시를 지지하고 나선 까닭도 따지고 보면 부시측의 득표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부시의 극우 끌어안기는 매케인을 물리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부시는 수많은 온건파 공화당원과 중도파 유권자로 하여금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따라서 부시가 정작 민주당 고어 후보와 본격 유세 경쟁에 들어갔을 때 ‘극우파 동조자’라는 오명이 붙어 다닐 경우 감표 요인이 될 수 있다. 실제로 부시는 슈퍼 화요일까지만 해도 중도파 유권자보다는 기독교적 우파를 포함한 핵심 공화당원의 지지에 크게 의존했다. 3월8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대의원 1백62명을 뽑는 캘리포니아 주 예비 선거에서 부시에게 몰표를 던진 사람 중 25%가 자신을 기독교적 우파라고 대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투표에 참가한 사람 대부분은 공화당 이념을 철석같이 믿어온 핵심 당원으로 나타났다.

반면 고어 후보는 어떤가. 고어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느긋하게 대선 경쟁에 뛰어들었다. 무엇보다 현직 부통령이라는 프리미엄이 그를 자만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지난해 초 대선 가도에 뛰어든 ‘경량급’ 브래들리 전 상원의원의 인기가 치솟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는 선거본부를 워싱턴에서 고향인 테네시 주로 옮기고 대중에게 파고드는 유세에 나섰다. 귀족적인 인상에 목석 같은 이미지를 버리기 시작한 것도, 성추문 사건으로 톡톡히 망신당한 클린턴 대통령과 일정한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도 그즈음이었다. 특히 그는 낙태, 총기 규제, 동성연애자와 여성의 권익 보호, 의료보험 등과 같은 굵직굵직한 현안에 대해 브래들리보다 현실적이고 비전 있는 대안을 제시했다. 그 결과 올 초부터 고어의 인기가 브래들리를 앞지르기 시작해 마침내 지난주 슈퍼 화요일에 열여섯 주에서 완승한 것이다.

무어니 무어니 해도 슈퍼 화요일의 가장 쓰라린 패자는 매케인 후보이다. 그는 중앙 정치 무대인 워싱턴을 특정 이익단체와 로비스트의 입김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선거 구호를 내세우며 뉴햄프셔 주 예비 선거에서 무려 17% 차로 부시를 눌렀다. 또 공화당의 자금줄이나 마찬가지인 무제한의 선거 자금(소프트 머니)을 규제하라고 주창하기도 했다. 그러나 공화당 소속인 그는 바로 그 구호 때문에 당 지도부는 물론 당원 대다수로부터 외면당했다. 그 때문에 그는 유세 내내 자신의 정치 개혁 메시지에 공감하는 무당파와 민주당원의 지지에 의존하다시피 했다. 매케인이 슈퍼 화요일에 동부 네 주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이들 덕분이었다. 그러나 그는 잔뜩 기대를 걸었던 뉴욕 주에서조차 부시에게 패했다. 슈퍼 화요일 바로 전날과 당일 <뉴욕 타임스>가 사설을 통해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했는데도 말이다.

상대방 흠집 들추며 치열한 맞불 작전

그렇다면 문제는 앞으로다. 부시나 고어 모두 취약점을 안고 있기에 이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따라 백악관에 입성하려는 꿈의 성사 여부가 좌우될 수 있다. 우선 부시의 경우, 앞서 지적한 대로 그동안 유세에서 이용해온 극우 보수 세력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급선무로 꼽힌다. 이미 그의 참모들은 부시의 이미지 대변신 작업에 착수했다. 부시도 슈퍼 화요일 다음날부터 자신의 원래 이미지인 ‘인정 어린 보수주의자’로 되돌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가 슈퍼 화요일 승리를 확인한 직후 발표한 회견문에서 공화당은 이제 소외된 자를 모두 아우르는 강력한 나라를 세워야 하며, 원칙 있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다.

부시의 또 다른 문제는 유세 내내 상대인 매케인 후보가 주장해온 선거 개혁 문제에 관해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그는 법정 제한을 받지 않는 소프트 머니를 규제하는 데 원칙적으로 찬성하면서도 전제 조건을 제시한 상태다. 즉 민주당 표밭인 전국 단위의 각종 노조가 민주당에 소프트 머니를 제공하지 않으면 자기도 공화당 자금원인 대기업들로부터 소프트 머니를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어정쩡한 부시의 태도를 놓고 매케인은 공격의 화살을 퍼부어 왔다. 매케인은 부시가 이 문제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11월 대선에서 상대인 고어 후보에게 패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고어의 고민도 부시 못지 않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부시가 이념적 성향에서 다양하게 분류된 공화당 유권자를 규합해야 하는 ‘내부적 고민’에 빠져 있다면, 고어는 자신과 클린턴을 한통속으로 보려는 유권자들을 어떻게 달래느냐 하는 문제와, 1996년 불법 선거 자금과 관련한 석연치 못한 문제 같은 ‘외부적 고민’에 빠져 있다는 점이다.

특히 부시가 본격 선거 경쟁 체제에 돌입하면 무엇보다 도덕적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끄집어낼 것으로 보여 고어의 고민은 더하다. 좋든 싫든 그는 성추문 사건으로 오점을 남긴 클린턴 대통령 밑에서 8년간 부통령을 지내 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1996년 로스앤젤레스의 한 불교 사원에서 선거 자금 모금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부시로부터 호된 공격을 받고 있다. 고어는 이런 공격에 대해 클린턴 치하 8년간 미국이 최고의 경제 성장을 구가했다는 점, 또 클린턴 집권 직전의 공화당 정부가 만성 재정 적자와 무역 적자에 시달려 나라를 황폐하게 만들었다는 점을 집중 부각하며 ‘맞불 작전’을 펴고 있다. 과연 ‘개혁과 쇄신’을 다짐한 공화당의 부시가 백악관 입성의 꿈을 이룰지, 아니면 경제 호황에 힘입어 고어가 민주당 정부를 계속 이어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