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자식 위해 명예 버린 미국 루빈 장관
  • 워싱턴/변창섭 (cspyon@sisapress.com)
  • 승인 2000.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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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빈 미국 국무부 대변인, 아내 출산 앞두고 전격 사임
세계 각국에서 온 수백여 기자들이 열띤 취재 경쟁을 벌이는 미국의 수도 워싱턴. 이들이 매일 한번씩 참석해야 할 ‘행사’가 있다. 12시30분께 시작되는 국무부의 정오 브리핑이 바로 그것이다. 주요 국제 사안에 관한 미국 정부의 공식 입장을 확인하는 자리인 만큼 국무부 대변인은 그야말로 말 한마디 한마디에 세심하게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때로는 대변인의 말에서 미묘한 뉘앙스를 찾아내려는 기자들과 이를 극구 해명 또는 부인하려는 대변인이 숨바꼭질을 벌이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브리핑장 분위기는 사무적이고 딱딱하기 마련이다. 긴박하고 중요한 사안이 많은 날일수록 더욱 그렇다.

그런데 언제인가부터 국무부 브리핑장이 유머가 넘쳐나고 농담이 오가는 친숙한 장소로 변했다는 소리를 듣는다. 브리핑장을 찾는 기자들은 그 공을 제임스 P. 루빈 대변인(39)에게 돌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수년째 브리핑장을 찾는다는 한 미국 방송국 기자는 “루빈 대변인은 아무리 긴박한 사안을 브리핑하더라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으며, 능청스런 농담을 늘어놓아 브리핑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어 놓는다”라고 말했다. 루빈은 역대 어느 대변인보다 예리한 사태 분석력을 갖추었으면서도 유머 감각을 잃지 않는 국무부의 인기 있는 ‘입’이라는 것이다.

유머 감각·분석력 뛰어난 외교 전문가

바로 그 루빈이 오는 4월1일 국무부를 떠난다. 브리핑 때면 단아한 색상의 아르마니 싱글 차림으로 나타나 기자들을 마주하던 루빈을 앞으로는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1997년 5월23일 클린턴 대통령이 국무부 공보담당 차관보로 임명하고, 곧이어 7월에 상원의 인준을 받아 대변인 직을 시작한 지 32개월 만이다. 그는 올 봄 출산을 앞두고 있는 부인이 사는 런던으로 가 그곳에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그는 <뉴스위크> 최근호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껏 아내와 나는 서로 다른 곳에 떨어져 살면서도 되도록 많이 접촉하려고 노력해 왔다. 그러나 아내가 출산을 앞둔 상황이고, 또 런던을 무대로 일을 해야 하는 만큼 내가 결단할 때가 온 것 같다”라고 말했다.

루빈이 말한 아내란 CNN의 간판 기자인 크리스티안 아만포다. 지난해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포함해 분쟁 지역 취재를 도맡다시피 한 아만포는 CNN이 자랑하는 국제통 여기자. ‘수석 특파원’이라는 직함을 가진 그녀는 인지도에서 웬만한 나라의 대통령을 뺨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고, 그 덕분에 종종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처럼 좀체로 인터뷰하기 어려운 인물을 만나기도 했다.

1998년 8월 37세 노총각 루빈이 동갑인 아만포와 결혼식을 올렸을 때 그 자체로도 대단한 화제를 뿌렸다. 한쪽은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요, 다른 한쪽은 굴지의 뉴스 방송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기자였기 때문이다. 특히 양가 부모 못지 않게 기뻐한 사람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었다. 유엔대사 시절부터 루빈을 최측근 공보 참모로 데리고 다녔을 만큼 절친했던 올브라이트 장관이 사석에서 장관 직을 그만두기 전에 꼭 한 가지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루빈을 장가보내는 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얘기는 유명하다.

루빈과 아만포가 결혼했을 때 특히 언론계의 관심은 기사와 관련한 부부의 ‘짬짜미’ 가능성 여부였다. 다시 말해 사건의 진위 여부를 확인해줄 수 있는 루빈이 다른 기자들에게는 입을 다물지 몰라도 아내인 아만포에게만은 그럴 수 없지 않겠느냐는 관측이었다. 루빈도 이 부분에 대해 나름으로 고심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아내가 해외에서 기자 생활을 해 국내 외교 사정을 잘 모르는 데다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해 자신이 ‘훈수’는 종종 한 적이 있지만, 그 경우에도 분명한 선은 그어놓고 설명했다는 것이다. 그는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하는 일의 공통점은 신뢰를 쌓는 일이다. 아내는 자신의 직장에서 엄청난 신뢰를 쌓은 사람이고 나는 장관과 대통령에 대해 신뢰를 쌓았다. 양쪽 어느 곳에서도 우리의 행동거지를 문제 삼지 않았다면 그것으로 됐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그가 다소 의심을 살 만한 일은 있다. 바로 지난해 봄 미국이 세르비아 공화국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를 국제사법재판소에 기소하기로 했다는 뉴스가 CNN을 통해 제일 먼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정작 이 부분에 대해 루빈은 터무니없는 난센스라고 일축했다. 그런 확인된 뉴스가 CNN을 통해 제일 먼저 나오면 경쟁 매체의 ‘물 먹은’ 기자들이 늘상 그런 식으로 자신과 아내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다는 것이다.

루빈이 국무부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상사인 올브라이트 장관 덕이다. 그는 1993년 5월부터 약 3년 동안 당시 유엔대사였던 올브라이트의 고위 보좌관이자 대변인으로 활약해 신임을 얻었다. 그 후 1996년 8월부터 11월까지 3개월 동안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 운동본부에서 외교 정책 국장을 지내느라 올브라이트 곁을 잠시 떠났다. 그러나 재선에 성공한 클린턴 대통령이 올브라이트를 역대 최초로 여성 국무장관에 임명하자, 올브라이트는 곧바로 루빈을 국무부 대변인으로 불러들였다.

그런 올브라이트를 두고 떠나는 그의 심정은 어떨까? 서로를 무척 그리워할 것이라는 말이 그가 <뉴스위크>에 털어놓은 심정이다. 그러면서 후임인 리처드 바우처가 과거 제임스 베이커·로런스 이글버거·워런 크리스토퍼 등 국무장관 세 사람과 호흡을 함께했던 사람인 만큼 올브라이트 장관을 잘 보좌할 것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브리핑장에 나오고, 또 이런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국내외로 보도되는 까닭에 루빈은 종종 올브라이트 장관보다 더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실제로 그가 올브라이트 장관을 수행해 지난해 여름 코소보 지역을 탈출한 알바니아계 소수 민족 피난민들이 모여사는 텐트촌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수백여 피난민들이 난데없이 “루빈, 루빈!”을 연호하며 올브라이트 장관보다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더 익숙한 루빈을 찾는 바람에 두 사람이 한바탕 크게 웃었다.

지난 3년간 언론을 상대로 한 힘겨운 숨바꼭질 게임을 뒤로 하고 대변인 직을 떠나는 루빈의 언론관은 무엇일까. 특히 그의 주관심사인 외교 정책 분야의 경우 말이다. 전통적으로 외교 정책의 우선 순위는 대통령과 국무장관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특정 사안에 대한 언론의 집중적인 보도로 여론이 환기되어 외교 우선 순위가 뒤바뀔 때가 있다는 것이 루빈의 설명이다. 이를테면 1990년대 중반 소말리아 내란 당시 미군이 무참히 살해된 채 질질 끌려 다니는 모습이 텔레비전을 통해 미국 안방에 생생히 전달되었을 때라든가, 또는 지난해 코소보 사태 때 수십만 피난민이 아비규환을 이루는 모습이 알려졌을 때 미국 여론이 발칵 뒤집혔고, 자연히 클린턴 행정부도 뒷전에 방치되어 있던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역점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TV 해설가·정치인 변신 추측

루빈은 천직처럼 여기던 국무부 대변인 직을 그만두면 무엇을 할까. 텔레비전 해설가로 나선다는 소문도 있고 정계로 진출할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이에 대해 그는 딱히 긍정도 부인도 않는 태도다. 그에게 정치·언론·외교 분야는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공동 관심사라는 것이다. 또 이 세 분야를 이상적으로 합쳐 놓은 일이 바로 국무부 대변인 직인데, 막상 이 자리를 떠나고 나면 이에 버금갈 자리가 민간 분야에 있겠느냐는 것이 그의 불평 아닌 불평이다. 그러나 공직은 앞으로도 고려 대상이 아니다. 굳이 일자리를 찾는다면 ‘평생의 열정’이라고까지 표현한 외교 분야에서 보수는 적어도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자리라고 한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를 택해 국무부 대변인 직을 훌훌 털어버리고 새출발을 다짐한 그의 앞날이 어떻게 펼쳐질지 전세계 ‘루빈 팬’들의 관심이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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