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핵 질서, 미래의 위험 요소는?
  • 워싱턴·卞昌燮 편집위원 ()
  • 승인 1999.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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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무부 정책기획국장 모턴 핼퍼린, 논문에서 주장
미국 국무부의 핵심 부서 가운데 하나인 정책기획국 책임자 모턴 핼퍼린 박사(61)가, 최근 자신의 견해를 담은 논문을 한 안보 관련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발표했다. 핼퍼린은 공직 대부분을 국방부에서 보내고, 94∼96년 클린턴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으로 일한 안보 전문가이다. 지난해 12월 정책기획국장에 취임한 그는 동북아시아 여러 나라 가운데서도 특히 일본의 핵무장 여부에 이 지역의 핵 질서를 바로잡느냐 못 잡느냐 하는 문제가 달려 있다고 본다. 그는 논문을 통해 21세기에 미국이 어떤 식으로 핵 정책을 펼쳐 가야 하며, 특히 동북아시아에서 핵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어떤 정책이 바람직한지를 소상히 밝혔다.

그의 논문이 관심을 끈 것은 정책기획국장이라는 현직 신분으로 이를 발표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의 글을 통해, 특히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이 어떤 핵 정책을 구상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견해를 살펴보기 앞서 우선 미국의 핵 정책을 잠깐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핼퍼린에 따르면, 미국은 냉전 이후 한편으로는 강력한 핵무기 체제를 통한 핵 대국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비핵보유국의 핵개발을 철저히 막는다는 상충된 정책을 펴왔다. 이런 정책은 탈냉전 시대인 지금도 여전하다. 즉 옛 소련이 망한 뒤에도 미국은 계속해서 핵을 가졌거나 핵보유국과 동맹 관계인 나라에 대해서는 핵무기 사용권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나아가 월등한 핵무기를 바탕으로 다른 나라의 핵 확산 노력을 저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 등 미국의 우방에 핵우산을 제공함으로써 이들의 핵개발 노력을 저지할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런 기조로 미국은 핵확산방지조약(NPT)에 가입한 나라에 대해서는 절대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는다는 ‘소극적인 안전보장(negative security assurance)’ 정책을 추구해 오고 있다. 북한도 94년 미국과 제네바 합의를 체결한 뒤 미국으로부터 이같은 다짐을 받은 바 있다. 일본 핵무장하면 핵확산방지조약 깨질 수도

그렇다면 미국이 현행 핵 정책을 고수한다고 할 때 이같은 정책에 변화를 몰고 올 수도 있는 동북아시아에서의 핵 확산, 그중에서도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 여부로 눈을 돌려보자.

이와 관련해 핼퍼린은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과 관련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첫 번째는, 일본 정부가 비핵 정책을 앞으로도 고수하는 것이다. 전세계 국가 중 유일한 원폭 피해국인 일본은 핵확산방지조약 가입국인 동시에, 미국이 주도하는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의 열렬한 지지국이다. 그러나 일본은 독일처럼 핵확산방지조약에 가입한 것말고는 핵을 통제하는 다른 국제 협정에는 가입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일본이 기존 비핵 정책을 더욱 강화해 아예 영원히 핵을 갖지 않겠다는 다짐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일본은 현재 플루토늄을 생산하게 되어 있는 기존 원자력 발전 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것이다. 이미 추출된 플루토늄은 국제 핵안전협정에 따라 철저히 관리되도록 하고, 기존 원자력 사용 계획에 대한 투명성을 극대화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이 동북아시아 지역의 비핵화 운동에 앞장서는 것이다. 마지막 시나리오는, 일본이 기존 비핵 정책을 포기하고 핵무장의 길로 나서는 일이다.

이 세 가지 시나리오 가운데 핼퍼린 박사가 특히 주시하는 대목은 세 번째 시나리오다. 핼퍼린에 따르면, 일본이 핵무장에 나설 움직임을 보일 경우 기존 핵확산방지조약 체제가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일본의 핵무장을 가로막는 원천적인 장애물은 평화헌법이다. 게다가 미국과 동맹 관계를 맺고 있는 점 역시 일본의 핵무장을 가로막고 있다. 여기에 더해 일본의 국내 여론도 아직은 핵무장화에 압도적으로 부정적이다. 그러나 일본이 핵무장의 길로 들어선다면, 그 기폭제는 이런 내적인 요인보다 외적인 요인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핼퍼린에 따르면, 일본의 핵무기 개발 야욕을 부추길 수 있는 조건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미국이 더 이상 일본을 방어할 수 없다는 여론이 일본 국내에 형성될 경우다. 둘째, 한반도가 통일되어 핵무장 능력을 확보했을 때이다. 셋째, 핵 보유국인 중국의 핵 전력이 증강 일로에 있는데도 국제적으로 핵 감축 노력에 별 진전이 없을 때이다.

여기에서 첫째 조건의 경우 미국이 기존 미·일 동맹을 계속 유지한다면 일본이 핵개발을 할 명분은 원천 봉쇄되는 셈이다. 세 번째의 경우 역시 중국이 핵전력 증강을 꾀한다면 미국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힐 것이 뻔하다. 미국은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이라는 쌍무 동맹 관계를 유지하면서, 중국의 핵전력을 포함한 전반적인 군사력이 동북아의 기존 안보 질서를 깰 정도로 커지는 것은 철저히 견제하겠다는 ‘봉쇄 전략’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이 한국·일본과의 군사 동맹 관계를 유지하는 한, 중국이 설령 핵 전력 증강을 꾀한다 해도 동북아 지역 질서에 중대한 영향을 줄 것 같지는 않다. 이 때문에 일본이 이를 구실로 핵무장의 길로 나서기는 힘들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통일 한국이 핵무장하면 일본도 핵무장 가능성

미국이 예의 주시하는 부분은 일본의 핵무장 여부와, 통일 한국의 핵무장과의 함수 관계다. 바로 이 부분과 관련해 핼퍼린은 미국이 무엇보다 한반도 통일을 전후해 동북아시아에서의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통일 한국의 비핵화 의지를 관철해야만 일본의 핵 야욕도 사그라들 것이라는 것이다.

한반도 통일 이후 미국이 동북아에서 추구할 핵 안보 체제는 무엇인가. 여기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따르게 마련인데, 우선 주한미군을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있다. 또 주한미군이 철수할 경우 한반도 전체를 국제 조약을 통해 비핵지대화로 남게 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관심사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점은, 한반도 통일 가능성에 대한 중국의 태도이다. 흔히 북한이 멸망하면 곧바로 남북통일이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하지만, 만일 중국이 적극 개입해 인위적으로 북한의 붕괴를 막는다면 남북 통일이 순탄하지 않을 수도 있다. 동·서독이 통일할 수 있었던 것도 실은 옛 소련이 방관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이 북한이 붕괴되는 것을 그대로 둘 수도 있지만, 이 경우도 통일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질지는 의문이라는 것이 핼퍼린 박사의 견해다.

문제는 이런 어려움들을 극복하고 남북한이 통일된 상황에서 통일 한국이 핵무장하는 것을 막으려면 기존 한·미 동맹 관계의 틀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따라서 남북한이 통일되더라도 주한미군이 전부 철수하는 것보다는, 일부가 남아 중국과 러시아 등 외부 세력에 의한 핵 억지력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핼퍼린은 미국이 통일 한국을 가정해 동북아에서 펼쳐야 할 안보 전략을 이렇게 압축했다. 첫째, 통일 한국은 민주 국가여야 하며, 핵무기를 개발해서는 안된다. 둘째, 주한미군은 통일 한국에 계속 주둔한다. 셋째, 중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 한반도의 미군 주둔은 위도 40도선 이하에 국한해야 하며, 서로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한반도 국경 지대에 주둔한 러시아와 중국 병력을 제한한다. 넷째, 통일 한국·대만·일본을 아우르는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실현시켜 이 지역에서의 핵 확산을 저지한다. 끝으로 동북아안보협력체를 창설해 미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이 주요 현안을 논의한다. 이런 네 가지 조건이라면 일본도 핵무장 야욕을 자제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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