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한 연락사무소 개설 임박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1997.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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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25일께 공식 선언, 4~5월 교환 설치 예상…북측 초대 소장에 김계관 내정설
미국 워싱턴 D.C. 중심부의 ‘K 스트리트’. 이곳의 17,18번가는 ‘로비의 거리’라 할 만하다. 그만큼 워싱턴 정가를 막후에서 움직이는 로비스트들의 사무실이 밀집해 있다. 북한이 워싱턴에 들어설 연락사무소 후보지로 점찍어 온 곳도 바로 이 K 스트리트 17,18번가이다. 원래대로 하자면 한국대사관 등 외교 공관이 밀집한 매사추세츠 가에 터를 잡아야겠지만 사무실 임대료나 운영비가 비싸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 재미 사업가는 약 1년 반 전 정통한 소식통으로부터 북한이 K 스트리트에 연락사무소 부지를 마련했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 뒤 평양행 비자를 받기 위해 북경의 북한대사관에 들렀을 때 담당 직원에게 “앞으로는 K 스트리트에서 비자를 받으면 되겠네요”라고 웃으면서 묻자 담당 직원은 “부지는 마련됐지만 정식 개설은 2년쯤 걸릴겝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그 대사관 직원의 말처럼 미·북한간 협상은 지난 2년간 지지부진했다.

그러나 이제 워싱턴의 K 스트리트에 북한이 자기네 주머니 사정에 맞는 조그만 사무실을 마련하고 인공기를 게양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돈 문제가 여의치 않을 경우 뉴욕의 유엔대표부를 같이 사용할 수도 있겠지만, 어쨌건 지난 2년 간의 지루한 협상이 종착역을 향해 이제 막바지 질주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북한 연락사무소 개설 임박’. 지난주 서울을 비롯한 워싱턴·뉴욕·도쿄의 ‘한반도 관측통’들은 미국 국무부 또는 북한 뉴욕대표부나 외교부 채널에서 흘러나온 빅 뉴스에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황장엽 사건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미국이 3자 설명회에 극적으로 합의하는 등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여온 끝에 이 소식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뭔가 다르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

지난주 각국의 한반도 관측통들로부터 <시사저널> 이 입수한 연락사무소 관련 정보는 다음과 같은 내용들이다.

1.김계관 북한 외교부 부부장이 협상팀 7명을 이끌고 3월2일 뉴욕을 방문한다. 1차 목적은 3월5일 열릴 예정인 4자 회담 설명회 참석. 그러나 이번 설명회에서 북한은 시간 끌기 작전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북한 협상팀이 진짜 주력하는 것은 3월7일로 예정된 미·북한 고위급 회담이다. 북한측이 내부적으로는 ‘사무소 개설을 위한 최종 협상’이라고 부르고 있듯이 사무소 개설 문제가 이 회담의 핵심 현안이다.

2. 3월7일의 고위급 회담에 이어 3월15일께에는 미국 대표단이 비밀리에 평양에 들어간다. 최종 마무리 협상을 위해서다.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 사실이 대외적으로 공식 선언되는 것은 3월25일께이다. 그러나 실질적인 사무소 개설은 미국 의회 승인 절차를 마친 4~5월이 될 것이다.

3. 미국은 이미 뉴질랜드대사관의 에번스 레베르 참사관을 초대 사무소장으로 임명해 두었으나 북한은 여태까지 워싱턴 사무소장 임명을 미루어왔다. 그런데 최근 북한측도 초대 워싱턴 사무소장을 극비리에 임명했다. 그가 바로 이번에 고위급 협상팀을 이끌고 방미한 김계관 외교부 부부장이다.“외양은 연락사무소, 내용은 상주대표부 될 것”

이같은 정보에 대해 각국의 한반도 관측통들은 구체적인 부분에는 약간 차이를 보였지만 대체적으로 일치한 견해를 보였다. 미국 국무부 실무자들과 수시로 접촉하는 워싱턴의 한 전문가는 “최근 국무부 관리들을 만나보면 북한측 태도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말을 많이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2월26일의 미국 의회 아태소위 청문회에서 찰스 카트만 동아태 담당 차관보 대행이 “연락사무소 개설과 관련해 긍정적인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라고 한 발언과 같은 맥락이다.

사무소 개설과 관련한 일정은 거의 그렇게 간다 해도 현재 가장 큰 쟁점이 되고 있는 것은 3항의 김계관 관련 부분이다. 우선 초대 워싱턴사무소장에 김계관 외교부 부부장이 임명될 경우 평양사무소장 내정자인 에번스 레베르 참사관과 격이 안 맞는다. 김계관은 그동안 토머스 허바드 부차관보 등 주로 국무부 차관보급과 상대해온 인물이다. 또 한 가지 문제는, 북한과 미국이 이번에 상호 개설하기로 한 연락사무소가 단순한 연락 업무만 담당하는 말 그대로의 연락사무소(liaison office)인지, 아니면 비자 발급 등 영사 업무와 통상 업무까지 총괄하는 상주대표부(representative office)인지 혼란스럽다는 점이다. 이 두 가지 문제는 서로 연관되어 있기도 하다.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 중에는 김계관이 초대 사무소장으로 임명되었다는 정보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현재 연락사무소의 외교 지위는 94년 10월 제네바 합의에 입각해 ‘리에종 오피스(liaison office)’밖에 될 수 없는데, 이런 견지에서 김계관은 너무 중량급이라는 것이다. 국무부 내에는 ‘한성열 유엔대표부 공사가 초대 사무소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김계관이 사무소장에 임명되었다고 확신하는 관측통들은 이런 가능성을 단호히 배격한다. 우선 김계관이 내정된 사실은 뉴욕과 도쿄로부터 거의 동시에 확인되었다. 뉴욕의 북한대표부 소식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김계관은 이미 결정됐다”라고 단언했다. 또 도쿄의 북한 전문가 역시 이를 확인하면서, 북한이 대사급 인물을 파견하기를 희망했다고 덧붙였다.

이들의 확신대로 김계관이 이미 사무소장으로 임명되었다면 앞에 언급된 의문점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여기에는 우선 북한과 미국이 이번에 개설할 연락사무소가 ‘리에종 오피스’인가 하는 의문부터 다시 제기될 수 있다. 국내의 북한 전문가는 그동안 미국이 평양사무소의 업무로 내세워온 내용들은 사실상 상주대표부에 걸맞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즉 그동안 미국은 경수로와 관련한 영사 업무, 미국 기업의 북한 진출과 관련한 통상 업무, 미·북한간 각 분야 교류 지원 등을 연락사무소 업무로 표방해 왔는데, 이는 현재와 같은 리에종 오피스 수준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네바 합의문 규정 때문에 겉모습은 리에종 오피스로 출발하지만 내용으로는 상주대표부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해석은, 첫 출발은 리에종 오피스로 하되 얼마 안 있어 상주대표부로 격상시킬 것에 대비한 포석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이같은 해석은 도쿄의 한반도 관측통들 사이에 크게 공감을 얻고 있다. 도쿄의 한 전문가는 미국이 한국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처음에는 리에종 오피스로 받아들였다가 3~6개월 후에 상주대표부로 지위를 격상시킬 것이라는 정보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연락사무소의 점진적 지위 격상이 김정일 승계와 관련한 대북 협상 카드라는 의미도 띠고 있다고 지적했다. 권력 승계 시점에 맞춰 사무소 지위 격상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미·북한간 연락사무소 교환 설치와 연동된 움직임으로 앞으로 주목할 것은 다음 두 가지 흐름이다. 하나는 미국의 대북 경제 제재 완화로 인해 미국 기업의 북한 진출이 활성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경제 제재 완화 문제는 3월7일의 고위급 협상에서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와 연동해 다루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이와 관련해 북한측은 미국내 북한 자산 동결 해제를 우선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앞으로 미국 내에서 금융 활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또한 3월20일께에는 뉴욕 월스트리트에 있는 세계무역센터의 가이 토즐리 회장을 비롯한 회장단이 북한을 방문해, 북한의 세계무역센터 회원 가입 문제와 유경호텔을 무역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기도 하다. 우리 식으로 하면 미국 무역협회 격인 이 단체의 회장단이 북한을 방문하는 것은 미국 기업이 북한에 진출하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일본도 연락사무소 개설 목표로 곧 쌀 지원”

미국 연락사무소 진출과 관련해 가장 민감한 반응을 보일 나라는 일본이다. 그동안 일본의 한반도 관측통들은“현재는 일본이 대북 협상에 소극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미국에 연락사무소가 진출하는 순간 모든 상황이 달라진다”라고 말해왔다. 이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최근 일본 외교 정책 수립 과정에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사를 만나고 온 국내의 한 전문가는 “일본은 다시 대북 쌀 지원에 나설 것이다. 이번 쌀 지원이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은 바로 평양에 일본 연락사무소가 진출하는 것이다”라는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미국에 이어 일본 연락사무소까지 평양에 진출하게 된다면 지난 50년간 미·일과의 관계를 외교의 주축으로 삼아온 한국 사회는 엄청난 심리적 충격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다. 동북아 외교 관계에서 한국의 지위 약화 및 대북 정보에서의 경쟁력 상실 등 엄청난 파장도 예상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미·일 평양 진출 이후의 한반도’가 그 이전의 한반도와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에 대해 대책을 세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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