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미국에 유전 개발 손짓
  • 남문희 기자 (bulgot@sisapress.com)
  • 승인 1997.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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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미국 석유 메이저에 ‘유전 개발’ 손짓…日 상사 이미 깊이 관여, 유럽 국가들도 ‘눈독’
북한이, 석유가 매장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알려진 서해안 지역의 유전을 개발하려고 미국 석유 메이저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북한은 앞으로 있을 미국과의 협상에서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교환 조건으로 현재 미국 석유 메이저의 북한 진출을 제한하고 있는 제재 조처를 해제하라고 미국측에 강력히 요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의 에너지 문제에 정통한 일본의 한 북한 전문가는 최근 <시사저널>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이같은 소식을 전하면서, “북한의 유전 개발은 이미 경제적 타당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결론이 난 상태다. 북한은 앞으로 미국의 석유 메이저를 적극 끌어들여 개발 분위기에 박차를 가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라고 밝혔다.

미국 카길사의 대북 곡물 지원 협상이 벽에 부딪히고 3자 회담 설명회가 지연되는 등 최근의 미묘한 상황에서도 미·북한간 연락사무소 개설 협상은 오히려 추진력을 얻어가고 있는 최근 분위기를 고려한다면, 북한 유전 개발에 대한 미국 기업의 참여 문제는 가까운 시일 내에 국제적인 현안으로 대두할 가능성이 있다. 연락사무소 개설과 관련해 북한측은 최근 내부 회의에서 ‘무리를 해서라도 3월 개설을 실행하겠다’는 방침을 확정했다고 한다. 북한은 한국과 일본의 대북 쌀 지원을 적극 유도하기 위한 카드로서 미국 연락사무소 개설을 활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다만 개설 시기와 관련해, 일본 전문가 중에는 3월 중 북한과 미국이 사무소 개설 사실을 대외에 선언하고 미국 의회의 승인 절차를 밟은 뒤 실제 개설은 5월에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견해도 제시된다. 따라서 늦어도 3~5월에는 미국 메이저의 북한 석유 개발 참여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북한측이 석유 개발 문제를 대미 협상에서 카드로 제시할 방침을 굳힌 데 대해 이 일본 소식통은 “북한 지도부가 이미 서해안 지역에 경제성이 있는 대규모 유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유전을 개발할 가능성은 지난해를 전후해 북한 고위 인사들의 발언 등으로 인해 대외적으로 알려져 상당한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특히 지난해 7월 일본을 방문한 김정우 북한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위원장은 ‘북한 서해안에서 대규모 유전을 발견했다’는 내용을 공식으로 밝혔다. 김위원장의 발언 이전에도 북한 지도부는 비공식 석상에서 비슷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지난 95년 11월 일본의 동아시아무역연구회 대표단이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시사저널>이 입수한 이 연구회의 방북 결과 보고서에는 북한의 대외경제위원회 이성대 위원장이 ‘서해에 많은 원유가 매장돼 있다는 사실을 최근 알게 되었다’고 발언한 사실이 적시되어 있다.

일본 상사 탐사 결과 “경제성 높다”

문제는 그동안 서해안에 유전이 존재하는지를 놓고 말이 많았는데, 북한 지도부가 어떤 계기로 확신을 갖게 되었는가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시사저널>에 이같은 정보를 제공한 일본 소식통은, 지난해 5월 일본 굴지의 종합상사인 니쇼이와이 상사(日商岩井 商社)측이 작성한 북한 유전 개발에 대한 비밀 보고서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시사저널>은 니쇼이와이 상사에 대한 주변 취재를 통해 이 상사가 연매출 규모 13조엔(120조~130조원으로 한국 정부 1년 예산 70조원의 2배에 조금 못미친다)에 이르는 일본 굴지의 종합상사로서 일본 9대 종합상사 중 서열 6위이고, 특히 동북아시아 지역의 유전 개발에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현재 베트남 유전 개발에 깊이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알아냈다.

특히 니쇼이와이 상사의 베트남 유전 개발 진출은 시기 면에서 현재 북한이 처한 상황과 매우 유사하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상사측 관계자들은 부인하고 있으나, 일부에서 이 상사가 현재 평양에 사무소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북한과도 깊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니쇼이와이측의 보고서는 이 회사 본사, 일본내 한 분석기관, 그리고 북한측이 각각 1부씩 보관하고 있을 정도로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져 있는데, 극소수 관계자들을 통해서만 그 내용의 일부가 흘러나온 바 있다.

일본 소식통에 따르면, 니쇼이와이측이 북한 유전 지대 탐사에 착수한 시기는 94년부터 95년 여름까지 약 1년이었다고 한다. 니쇼이와이측은 탐사한 자료를 다시 일본의 한 분석기관에 의뢰해 1년 동안 경제성을 조사했다. 최종 보고서가 작성된 것은 96년 5월이다. 주요 내용은 북한 서해안 북위 38도선 및 중국 국경 근처에서 매장량 1억5천만t인 대규모 유전이 발견되었고, 경제 타당성 조사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동안 중국·소련과 서방의 많은 기업들이 북한에서 유전 탐사에 열을 올렸으나 본격적인 탐사가 이루어진 것은 니쇼이와이측이 처음이었다는 점에서 이 조사 보고서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매장량 1억5천만t은 현재 북한의 1년 원유 소비량을 백만t으로 볼 때 약 1백50년간 사용할 양이고, 소련과 중동으로부터 원유 공급이 중단되기 전 연간 2백만t을 소비했던 수준으로 따져도 앞으로 75년이나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또 천연 가스 등의 후속 개발도 가능해 경제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북한 지역 석유 개발에 대한 그동안의 국내 평가는, 가능성은 인정하나 경제성에는 회의적이었다. 안기부 역시 회의적이었다고 하는데, 여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고 한다. 지난 1월 초 국내 일부 언론은 북한이 일본의 대북 교역 전문 회사인 레인보 상사를 통해, 북한 동·서 해안의 유전 개발 관련 보고서를 독점 판매하고 있다는 기사를 실었다. 유전을 본격 개발하기 앞서 개발 보고서를 판매하는 행위는 옛 소련·중국·몽골 등 사회주의권의 일반적인 관례인데, 안기부 역시 2년 전 비밀리에 레인보 상사로부터 거액을 들여 관련 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했다는 것이다. 당시 안기부가 입수한 보고서는 호주의 한국 교포와 금강산 국제그룹의 박경윤씨가 깊숙이 개입해 만든 것인데, 분석한 결과 특별한 내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북한 유전에 관한 회의적 시각은 과거 정보를 바탕으로 한 것이며, 여기에는 그동안 유럽·캐나다·호주 기업들이 탐사한 결과가 별로 신통치 않았다는 점도 크게 영향을 미쳤을 법하다.“미·북한 연락사무소 협상 때 물밑 흥정 있을 것”

국내의 이같은 시각과 달리 현재 미국· 일본과 유럽 국가들은 북한의 유전 개발 가능성에 크게 주목하고 있고, 향후 개발권 확보를 위해 치열한 암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은 이미 북한 유전 개발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는 니쇼이와이 상사를 필두로 대부분의 종합상사들이 깊은 관심을 가지고 관련 정보 수집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니쇼이와이 상사측은 앞으로 북·일 수교 협상이 본격화하면 대북 진출 제한 조처가 풀릴 것에 대비해 북한과 공동 투자해 유전을 개발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럽에서는 주로 독일과 프랑스가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최근에는 프랑스의 거대 석유회사인 엘프(ELF)의 동향이 심상치 않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에 걸쳐 북한을 방문하는 유럽인들이 급증하고 있는데, 국내의 한 정보 소식통은 3~5월에 방북이 예정된 유럽인 수가 천여 명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이 소식통은 이 중 상당수가 석유 개발과 관련한 조사단일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북한 석유 문제와 관련해 앞으로 주목해야 할 것은 역시 미국의 움직임이다. 미국은 그동안 내색하지 않았지만 대북 접촉의 주요 목적 중 하나로 북한의 풍부한 원유 매장 가능성을 들었을 정도이고, 또한 그동안 은밀히 조사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내의 한 소식통은 이와 관련해 “미국은 이미 북한 유전 소재지에 대한 인공위성 탐사를 끝내놓고 적절한 시기만 기다리고 있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미국의 석유 메이저들은 베트남에서의 악몽을 재현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대단하다. 즉 미국 기업에 대한 엠바고(제재 조처) 해제가 늦어짐으로써 베트남 유전 개발 사업에서 처졌던 악몽을 북한 진출에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다만 앞으로 미국 메이저가 북한에 진출할 경우 중국과 분쟁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고려와 북한의 관련 법규가 미비하다는 점 때문에 그 시기를 조심스럽게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의 또 다른 정보 소식통은 “미·북한간 연락사무소 협상 때 북한측이 유전 개발에 협조하라고 요구할 것은 거의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실제 겉으로 드러나는 협상 결과는 대북 식량 지원 확대 조처 등이 되고 석유 메이저의 북한 진출은 시기와 여건을 보아 가면서 추진하자는 쪽으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북한 간의 단기 협상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북한 석유개발 문제는 앞으로 미국·일본과 유럽 국가들 사이에 뜨거운 문제로 돌출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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