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 ‘북한 연착륙’ 고삐 당긴다.
  • 워싱턴/변창섭 (cspyon@sisapress.com)
  • 승인 1997.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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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대통령 집권 2기 대북 정책 전망/‘한·미 공조’ 균열 생길 수도
빌클린턴 대통령의 집권 2기가 1월20일 정오를 기해 시작됨에 따라 세계 외교 무대에는 어느 때보다 미국의 치맛바람이 거세게 불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외교의 새 사령탑을 맡은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59)은 예상했던 대로‘강력한 미국, 강력한 외교’를 취임 일성으로 주창했다. 강경 소신파로 알려진 그는 미국이 그동안 대외 문제를 다루는 데 자기 만족에 빠져 신고립주의를 자초했다고 경고함으로써, 앞으로 미국의 국익이 걸린 문제에 반드시 개입하겠다고 강하게 시사했다.

이같은 발언은 클린턴 집권 2기 외교팀의 핵심 과제인 북한 정책에도 적용될 것으로 보여, 경우에 따라서는 한·미 관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유엔대사 시절 보여준 그의 직선적인 외교 스타일을 감안할 때 한국의 처지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선 굵은 대북 유화 정책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클린턴 신외교팀 가운데 앤서니 레이크 중앙정보국장 지명자는 클린턴 집권 1기 때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서 북한 포용 정책을 실질적으로 입안한 주인공이다. 또 미국 의원으로서는 비교적 활발하게 북한을 드나들어 우리에게도 친숙한 빌 리처드슨 하원의원이 유엔대사로 발탁된 것도 유의할 부분이다.

북한 조기 붕괴 억제가 목표

물론 미국의 복잡한 대외 정책 수립 과정을 감안할 때 이번처럼 새 외교팀이 짜였다고 해서 북한 정책이 180도 바뀌리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지적도 있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도 1월 초 열린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북한의 핵 동결 유지 △한반도 평화 유지 △남북 대화 유도라는 세 가지 원칙을 천명했다. 이같은 원칙들은 클린턴 집권 1기 내내 펼쳐온 북한 포용 정책의 골간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 클린턴 신외교팀의 한반도 정책도 기본적으로는 이 원칙을 지키면서 각론에서만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클린턴 집권 2기에 주목할 것은 바로 각론에서 나타나고 있는 미묘한 변화이다. 외교 전문가들에 따르면, 클린턴 1기 후반까지도 미국의 북한 정책은 미군 주둔을 통한 북한의 대남 도발 방지라는 전쟁 억지력에 치중되어 왔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의혹으로 더욱 힘을 얻게 된 봉쇄 정책은 그러나 북한 핵 동결을 담보한 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를 계기로 사실상 소멸했다고 볼 수 있다. 오히려 핵 합의 이후 미국의 북한 정책은 경제난으로 휘청거리는 북한을 연착륙시켜 결과적으로 한반도의 안정을 이룩하려는 포용 정책으로 급선회했다. 냉전 시대의 유산이기도 한 북한 봉쇄 정책을 통해 다져진 한·미 공조 체제가 균열을 보이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클린턴 행정부의 북한 포용 정책이 근래 더욱 힘을 얻게 된 것은 존 도이치중앙정보국장이 최근 상원 정보위원회에서 북한이 경제난과 식량난으로 수년내 붕괴할 가능성이 있다는 충격적인 증언을 한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갈수록 심해지는 식량난과 그에 따른 대량 난민 사태 속출, 지도부의 통제 기능 상실, 여기에 경제난까지 가중되면 북한의 앞길이 뻔하다는 것이 도이치 국장의 판단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반도는 물론 동북아 전체의 지역 안정을 위해서도 북한이 조기 붕괴하도록 방치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올브라이트 장관을 비롯해 윌리엄 코헨 국방장관, 앤서니 레이크 중앙정보국장 내정자, 새뮤얼 버거 백악관안보보좌관으로 짜인 새 외교팀은 무엇보다 연착륙 정책 가속화를 통한 북한 위기 관리에 중점을 둘 것 같다.매파·비둘기파·벌새파 나뉘어 갑론을박

현재 워싱턴 정계에서는 클린턴 집권 2기를 맞이해 어느 때보다 북한 정책을 둘러싼 의견 개진이 활발하다고 한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아시아통인 짐 맨 기자에 따르면, 학계·의회·행정부에서는 강경파인 매파(hawks), 온건파인 비둘기파(doves), 적극 포용파인 벌새파(hummingbirds)가 북한 정책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우선 북한에 대한 인식과 관련해 매파와 비둘기파는 북한이 수년 내에 붕괴할 가능성도 있다는 도이치국장의 암울한 전망과 거의 인식을 같이한다. 차이가 있다면, 위기에 처한 북한을 어떻게 대하느냐 하는 방법론에 있다. 공화당 인사들이 주류를 이루는 매파는, 북한이 경제난으로 무너져도 미국이 간섭해서는 안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편다. 오히려 북한이 빨리 무너질수록 한국과의 흡수 통일이 빨라질 뿐더러 비용도 덜 들기 때문에 좋다는 입장이다.

비둘기파는 북한의 암울한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를 피하기 위한 연착륙 정책을 선호한다. 이들은, 북한이 파국을 맞게 되면 그 탈출구를 한국과의 전쟁에서 찾을 수도 있으며 그럴 경우 주한미군 3만7천명의 희생이 불가피한 것은 물론 한반도, 나아가 동아시아 전체의 지역 질서를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설령 북한이 대남 도발까지는 감행하지 않더라도 만일 지도부의 주민 통제 능력이 약해져 난민이 대거 북한을 탈출하는 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국뿐 아니라 중국·일본에도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비둘기파보다 훨씬 온건한 벌새파의 대북 인식은 어떨까. 한마디로 이들은 도이치 국장의 대북 정세 판단이 터무니없다고 일축한다. 이들은 북한이 무너지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설령 그렇다 해도 붕괴를 막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벌새파의 견해를 지지하는 나라가 중국이다.

이처럼 북한 정책과 관련해 매파·비둘기파·벌새파 인사들이 각축을 벌이고 있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집권 2기에도 1기 때와 마찬가지로 북한 포용 정책을 선호하는 비둘기파의 손을 들어줄 것이 확실해 보인다. 제네바 핵 합의에서도 확인된 것처럼 북한을 끌어내는 데는 채찍보다 당근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문제는 클린턴 신외교팀이 북한 연착륙 정책을 실현해 나가는 과정에서 각론적으로 한국과 어떤 식으로 조율해 나가느냐 하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분석 기사를 통해 ‘북한의 붕괴와 관련해 한·미 간에 시각차가 존재하며, 이로 인한 외교 갈등이 클린턴 집권 2기에 빚어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같은 경고는 아무래도 미국보다는 한국에 더 득실대는 대북 강경파를 겨냥한 듯하다.

특히 올 상반기 북한의 최대 위기가 바로 식량난임을 미루어 볼 때 우선은 북한에 대한 쌀 지원을 놓고 한·미 양국이 또다시 입장 차이를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지난 1월20일 카트먼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는 워싱턴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북한 식량난의 심각성을 감안해 앞으로 3~4주 안에 미국이 관련 조처를 취할 것임을 천명해 주목된다. 북한의 식량난에 관한 한 한국 정부는 미국이 판단하는 것만큼 심각하다고는 보지 않고 있다.

특히 클린턴 행정부가 집권 2기를 맞이해 더 공세적인 대북 관계 개선을 시도하려는 마당에 공교롭게도 김영삼 정부는 임기 말을 맞고 있다. 즉 클린턴 행정부가 선거를 의식할 필요가 없이 북한 포용 정책을 펼칠 수 있는 데 반해 올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둔 김영삼 정부로서는 보수적인 중산층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이 좀더 진보적인 북한 정책을 펼치려는 데 비해 한국 정부는 신중하고 보수적인 정책을 선호할 것이 분명해, 양국의 공조 체제가 커다란 시련을 겪을 것 같다.카트먼 부차관보 기용은 한국에 다행

클린턴 2기의 대북 외교 과제는, 연락사무소 개설 문제에서 미군 유해 공동 발굴 문제, 경수로 건설 합의에 따른 중유 공급 문제, 나아가 북한이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진 사정 거리 6천~8천km인 장거리 미사일 통제 문제에 이르기까지 산적해 있다. 특히 미사일 협상은 북한이 제2의 핵카드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이같은 문제들을 포함한 한반도의 전반적인 문제에 관해 사실상 문외한인 올브라이트 장관을 보좌할 사람으로 지한파 외교관이 국무부 고위 직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다. 주인공은 올해로 외교관 경력 22년째인 찰스 카트먼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이다. 주한 미국대사관 정치 참사와 부대사를 거쳐 지난해 여름 동아태 담당 부차관보로 승진한 그는, 특히 동북아 문제에 관해 국무부 내에서 누구보다 예리한 분석 능력을 갖춘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카트먼의 상급자이자 동아태 정책의 최고 실무자로 스탠리 로스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국장이 내정된 것도 다행스럽다. 그는 국제관계학으로 미국 내에서도 가장 손꼽히는 존스홉킨스 국제관계대학원(SAIS)을 졸업한 학구파로, 지금까지 아시아 관련 청문회를 1백50차례나 기획해 개최했을 정도로 국무부 내에서 아시아통으로 인정받고 있다.

미국 국무장관 직이 어차피 전세계적 문제에 두루 신경을 써야 하는 자리임을 감안할 때, 올브라이트 장관은 한반도 정책과 관련해 이 두 아시아통 관리에게 상당 부분 의존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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