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구 세력에 휘둘리고 있다”유로2000 축구 대회 ‘잉글랜드 괴담’
  • 런던·金勇基 편집위원 ()
  • 승인 2000.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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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로 2000 예선 탈락해 종주국 이미지 ‘먹칠’…국내 ‘돈 리그’가 원인
유로 2000 축구대회는 오는 7월2일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최후의 승자를 가리게 된다. 네덜란드·이탈리아·프랑스·포르투갈이 우승 후보로 거론되어 유럽 최강을 가리는 일에 관심이 쏠려 있지만, 예선에서 탈락한 축구 종주국 잉글랜드를 둘러싼 이야기도 흥미롭다. 우선 벨기에 소도시 샤를레러의 광장에서 벌어진 영국 훌리건들의 난동을 보며 ‘훌리건은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다음으로 잉글랜드가 예선에서 탈락한 이유는 잉글랜드가 자랑하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 ‘프리미어 리그’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훌리건은 만들어졌다?

유로 2000을 통해 잉글랜드 훌리건들은 다시 한번 그들의 ‘실력’을 유감 없이 과시했다. 영국과 독일의 경기가 벌어진 지난 6월17일 밤 영국 훌리건 수백 명이 벨기에 수도 브뤼셀과 샤를레러 시가를 술에 취해 질주하자, 벨기에 경찰은 최루가스와 물대포로 이들을 진압했다. 무려 8백50명이 넘는 영국 축구팬들이 벨기에 경찰에 연행되었다.

하지만 라이드라는 미국 기자가 영국의 중도좌파 신문 <가디언>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이 이번 유로 2000 취재를 통해 영국 훌리건들을 백분 이해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이 글에 따르면, 그는 잉글랜드와 독일의 경기가 예정된 그 더운 날 오후에 일군의 영국 팬들을 동행 취재했다. 그가 만난 훌리건들은 만약 상황이 그들을 그렇게 몰아가지 않았다면 그냥 보통 축구팬으로 남았을 것이다. 그들은 유럽축구연맹과 개최 도시인 샤를레러에 의해 훌리건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만난 31세 훌리건은 영국 아스날 축구팀 팬이었다. 그는 지난해 유로 2000 티켓 구매를 위한 우편 접수가 시작된 날, 잉글랜드 팀이 출전하는 경기라면 어느 티켓이라도 좋다고 밝힌 지원서를 접수시켰다. 하지만 몇 달 후 그에게 돌아온 것은 유고슬라비아와 슬로베니아 경기 티켓 2장이었다. 아마도 어떤 슬로베니아 팬이 잉글랜드 팀과 슬로베니아 이외 팀 간의 경기 티켓을 배정받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인터넷을 통해 티켓을 바꾸자고 제안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유럽축구연맹으로부터의 경고 이메일이었다. 만약 그가 티켓을 다른 사람에게 넘긴다면 그 티켓은 환불되지 않고 무효 처리가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대부분의 경기장 좌석이 ‘있는’ 사람들이나 축구 클럽들의 주요 스폰서에게 할당되며, 자기 같은 사람들에게 돌아오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유럽축구연맹은 축구에 열광하는 영국과 독일 간의 경기를 아주 작은 경기장만 갖고 있는 샤를레러에서 열도록 결정함으로써 수천 명의 잠재적 훌리건을 본격적으로 양산하는 과정에 들어갔다. 경기를 관전하고 싶지만 티켓을 갖지 못한 영국 팬은 갈 곳이 없다. 하지만 이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은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경기가 벌어지는 곳 주변에 나타나 하얀 바탕에 붉은 색 십자가가 그려진 잉글랜드 깃발을 흔들어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경기를 개최하는 도시가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 단계로 접어든다. 훌리건들의 난동이 일어난 샤를레러의 찰스2세 광장에는 대형 야외 텔레비전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경기를 중계하는 대형 스피커나 심지어는 스코어보드조차 없었다. 티켓을 구하지 못한 영국 팬은 텔레비전을 설치한 술집을 찾아 의자를 차지하고 그곳에 ‘죽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 계속 머무르기 위해 그들은 벌건 대낮부터 경기가 벌어지는 초저녁까지 마시고 또 마셔야 했다. 더위와 술기운이 이들로 하여금 분노를 외부로 발산하도록 유도하는 것 같았다고 이 미국 기자는 결론을 맺었다.

두 번째 화제는, 왜 영국 축구가 국제 대회에서 부진한가라는 의문을 둘러싼 이야기이다. 잉글랜드 팀의 패인은 분명했다. 심판의 불공정한 경기 진행 때문이거나, 운이 나빠서가 아니었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실력이 부족했다고 모두들 인정한다. 그런데 세계 최고 수준의 선수들이 최고 수준의 기량을 겨루는 ‘프리미어 리그’에서 단련된 잉글랜드 대표 선수들이 왜 그러한가. 그들이 자랑하는 ‘프리미어 리그’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논쟁에 불을 당긴 것은 ‘외국 선수 수입이 영국 선수들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는 의견이었다. 잉글랜드 팀이 예선에서 탈락하고 영국에 돌아오자 고용부 차관이 나서서 영국 축구 구단들은 자발적으로 외국 선수 수입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녀에 따르면, 자발적인 제한은 노동 이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유럽연합법에 위배되지 않는다. 그동안 외국 선수 유입이 영국 축구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지적되어 온 것은 사실이다. 축구 용병 때문에 유망한 영국 청소년 선수들이 프리미어 리그에 진출할 기회가 줄어들었다. 영국의 유명 축구팀 첼시의 경우 지난 시즌 주전 선수 전원이 수입 용병이었다.

무분별한 외국 선수 유입이 축구 발전 막아

전문가들은 이보다 더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했다. 문제의 정점에는 프리미어 리그를 구성하는 축구 구단과 그들을 움직이는 돈이 있다. 프리미어 리그는 1992년에 영국의 1급 축구팀들이 텔레비전 중계료 수입을 노리고 여타 팀들과 떨어져 그들만의 리그를 조직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뛰는 1급 선수들은 주당 2만∼5만 파운드(3천6백만∼9천만 원)를 벌어들이는데, 이곳에서 거래되는 돈의 규모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구단이 벌어들이는 돈은 상상을 초월하고, 선수 한 사람을 팔고 사는 데 드는 이적료가 학교나 병원을 지을 수 있는 액수에 이른다.

하지만 문제는 이 엄청난 돈이 영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지 못하고 오히려 발목을 잡는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회계법인 딜로이트 앤드 투쉬의 분석에 따르면, 영국 축구는 지난 10년간 비즈니스 측면에서는 엄청나게 성장했지만, 그 수익의 극히 일부분만이 아래로 스며들었다고 한다. 프리미어 리그 소속 팀들은 배가 너무나 부른 반면, 저변에 널려 있는 축구팀들은 굶주려 있다는 것이다.

외국 선수들이 다수 존재하는 이유도 사실 알고 보면 이 돈을 계속 끌어당기기 위해서이다. 돈을 긁어들이는 프리미어 리그에 남아 있기 위해 구단들은 ‘불확실한’ 영국의 젊은 선수들보다는 ‘검증된’ 다른 나라 스타들을 수입하는 일에 열을 올린다. 최근 있었던 텔레비전 중계 재계약을 통해서만 프리미어 리그에 떨어질 돈벼락은 앞으로 3년 동안 16억 파운드(2조8천8백억 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젊은 선수층을 두텁게 하기 위해 영국축구협회는 프리미어 리그와 그보다 한 단계 밑에 있는 풋볼 리그의 총 40개 구단으로 하여금 12세 이상 청소년을 선발해 축구 학교를 운영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를 통해 영국 청소년들이 체계적으로 축구 교육을 받도록 하자는 것이 축구협회의 의도였으나 이 또한 희망 사항에 불과했다. 구단들이 영국 청소년보다 세계 각국 소년들을 데려오는 데 더욱 관심을 두기 때문에 영국 청소년들은 예비 선수 대열에서도 밀리고 있는 것이다.

돈은 프리미어 리그를 세계 최고 수준의 ‘볼거리’로 만들어 일부 구단과 선수들의 배를 불리지만, 그 때문에 영국 축구는 점점 세계 수준에서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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