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우파, 역사 교과서 ‘왜곡 작전’
  • 도쿄/채명석 (cms@sisapress.com)
  • 승인 1996.12.12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역사 교과서 ‘왜곡 작전’ 점입가경…자민당, 묵시적 동조
일본 정부는 최근 한·일 역사 공동 연구를 지원하는 ‘민간 유식자회의’에 참가할 일본측 대표를 선정해 발표했다. 스노베 료죠(須之部量三) 교린 대학(林大) 교수, 야마모토 다다시(山本正日) 일본국제교류센터 이사장,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正夫) 게이오 대학 교수가 그들이다.

스노베 교수는 주한 일본대사를 거친 한국통이고, 야마모토 이사장은 ‘한일 포럼’ 일본측 운영위원회 대표 간사를 맡고 있다. 오코노기 교수는 한반도 문제 전문가로 지난 3월 양국 학자 70명으로 발족한 ‘한·일 공동연구 포럼’에도 참가하고 있어, 세 사람을 인선한 것은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 공동 연구란, 양국의 역사 인식 사이에 깊이 팬 골을 메워 보자는 것이 목적이다. 일본측의 한·일합병 조약 유효 발언, 식민지 지배 정당화 발언 등으로 지난해 한·일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이를 역전시키기 위해 나온 것이 바로 양국의 역사 인식을 한치라도 좁혀 보자는 역사 공동 연구 구상이었다.

한·일 양국 정부는 작년 11월 오사카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외무장관·정상 회담을 통해 이같은 역사 공동 연구에 합의했다. 또 지난 6월에 열린 제주도 정상회담에서는 민간 유식자회의를 설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전기·통신 대학의 니시오 간지(四尾幹二) 교수에 따르면, 역사는 과학이 아니다. 역사는 언어의 세계이다. 따라서 역사 해석은 민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보면 과연 한·일 두 나라가 역사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가능할까.

우선 한·일 양국 정부는 공동 연구 출발에서부터 의견 차를 크게 보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이 공동 연구를 순수한 민간 연구에 국한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따라서 연구 결과를 두 나라의 통일된 역사 인식으로 공식 채택하거나 역사 교과서에 직접 반영하는 일은 절대 없으리라는 것이 일본 정부의 설명이다.

그러나 <산케이 신문> 보도에 따르면, 한국측은 정부가 주도하는 공동 연구를 의중에 두고 있다. 나아가 한국측은 일제 식민지 지배를 중심으로 한 근·현대사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는 반면, 일본측은 연구 대상을 역사 전반으로 하자고 주장한다.

역사 공동 연구에 합의한 뒤 1년 만에 겨우 민간 유식자회의가 가동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접근 방식의 괴리가 큰 원인이 되었다. 또 유식자회의가 정상 가동되어 양국 학자들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더라도 연구 분야 선정과 연구 성과 발표 방법을 둘러싸고 마찰이 생길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일본 “한·중에서 유치한 내셔널리즘 폭발”

니시오 간지 교수는, 유럽의 ‘국제 교과서 개선 운동’처럼 한국·일본·중국이 역사 인식을 공유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1920년대에 이 운동이 태동한 것은 유럽이 하나의 기독교 문화권이고 근대로 발전해 온 과정에서 비슷한 성숙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아시아는 어떤가. 니시오 교수에 따르면, 일본은 이미 구미와 함께 진보 이념을 토대로 근대적 발전을 성취하고 ‘유치한 내셔널리즘’을 졸업한 상태이다. 반면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30년대처럼 진보를 시작했으나 아직 덜 성숙된 국가로 유치한 내셔널리즘이 폭발하고 있는 상태라는 것이다.

니시오 교수는 유치한 내셔널리즘을 졸업한 일본과 그것이 폭발 상태에 있는 한국과 중국이 어떻게 역사 교과서 개선이나 역사 인식 공유 작업을 함께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지금 유치한 내셔널리즘이 폭발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과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내년부터 중학교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종군 위안부에 관한 기술을 삭제하라는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 좋은 예이다.

일본 문부성은 지난 6월 말 중학교 사회과 역사 교과서에 대한 검정 결과를 공표했다. 이 검정 결과에 따라 내년에 사용할 교과서 일곱 종 전부에 종군 위안부에 관한 기술이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

예컨대 도쿄서적의 역사 교과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린다. ‘(일본) 국내의 노동력 부족을 메우기 위해 다수의 조선인과 중국인이 강제로 일본에 연행되어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 강압적으로 종군 위안부가 되어 전장에 보내진 젊은 여성도 다수 있었다.’

문부성의 검정 결과가 공표되자 제일 먼저 이의를 제기한 단체는 ‘자유주의 사관 연구회’이다. 이 단체는 전후 50년을 맞아 ‘국회 不戰 결의’를 둘러싸고 일본 열도가 한창 들끓던 작년 여름 결성되었다. 이 단체의 대표인 후지오카 노부가쓰(藤岡信勝) 도쿄 대학 교수는 연구회 결성 직후부터 ‘대동아전쟁은 정말 침략 전쟁인가’ ‘남경대학살·종군 위안부의 허구는 이렇게 조작되었다’는 주장을 <산케이 신문> 등에 기고하며 일본이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도쿄재판 사관’이나 ‘코민테른(마르크스) 사관’의 저주에서 이제는 자유로워져야 한다고 외쳐댔다.

이들은 이런 ‘자학 사관’을 타파하기 위해서는 일본 역사 교과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지난 여름 4백여 회원(주로 현직 교수)을 모아 자유주의 사관 연구회의 첫 전국 대회를 열기도 했다.

이처럼 역사 교과서 개정 운동을 벌이기 시작한 그들에게는 문부성의 검정 결과가 좋은 표적으로 떠올랐다. 후지오카 교수는 자신들을 음으로 양으로 지원하고 있는 <산케이 신문>에 문부성의 검정 결과를 반박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실었다. ‘종군 위안부 강제 연행은 증명된 사실이 아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증거로는 종군 위안부 증언, 강제 연행 때의 목격자 증언, 강제 연행한 일본인의 증언, 강제 연행을 기획·명령한 일본 정부 문서 네 가지이다. 그러나 종군 위안부의 증언은 일방적인 주장이고, 그들 중에는 조선의 창부였다는 사실이 탄로난 사람도 많다. 또 강제 연행을 집행했다는 요시다 세지(吉田淸治)씨 증언도 제주도 현지를 실제로 조사한 결과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최근 발간된 <오욕의 근현대사>라는 책에서 후지오카 교수는 당시 종군 위안부들의 보수가 대졸 신입 사원의 3배, 일반 병사의 10배였다는 사실을 들어가며 “종군 위안부는 지원자였다”라는 망언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위안부 내용 삭제하라” 집요하게 요구

이 자유주의 사관 연구회와 함께 요즘 덩달아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일본 쇼와(昭和)사 연구회’이다. 나카무라 아키라(中村粲) 돗쿄(獨協) 대학 교수가 주재하는 이 단체는 지난 9월 신진당을 방문하고 문부성에 압력을 가해 중학 교과서에 실리게 될 종군 위안부 관련 기술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에 자학적인 기술이 해마다 늘어나는 것은 단순한 교과서 검정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처럼 종군 위안부 내용 삭제 문제는 이제 정치권으로 비화하고 있다. 자민당 소속 참의원 의원으로 구성된 ‘교육 문제에 관한 프로젝트 팀’은 최근 문부성의 교과서 담당관을 불러 중학교 교과서에 종군 위안부와 관련한 글이 등장하게 된 경위를 캐물었다.

역사 왜곡 발언의 상습범 오쿠노 세이스케(奧野誠亮) 의원이 이끄는 ‘밝은 일본 국회의원 연맹’도 자유주의 사관 연구회와 손잡고 올해 안에 ‘교과서 문제에 관한 협의회’를 결성할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기술한 역사 교과서는 12월 안에 문부성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한 내용이 최종 확정된다. 따라서 자민당 단독 정권 성립의 여세를 몰아 이들은 앞으로 남은 한 달 가량을 전력 가동하여 종군 위안부 내용 삭제를 집요하게 물고늘어질 것으로 보인다.

자민당은 지금 3당 연립 정권 시절의 정책을 전면 부정하고, 보수·우익 정당으로서 제 색깔을 되찾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따라서 3당 연립 정권 때 합의한 역사 공동 연구 작업에 자민당 단독 정권이 얼마나 성의를 보일 것인가에 대한 대답은 자명하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