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산당 기관지 ,서울지국 개설 움직임
  • 도쿄·蔡明錫 편집위원 ()
  • 승인 1998.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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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관지 <赤旗> 지국 개설 임박…여덟 차례 취재차 방한
일본 공산당의 후와 데쓰죠(不波哲三) 위원장은 지난번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과 네 차례 자리를 함께했다. 후와 위원장은 지난 7일 저녁 일본 공산당 당수로서는 처음으로 한국 대통령의 방일을 환영하는 궁중 만찬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만찬회 성격으로 보아 후와 위원장이 김대중 대통령과 인사말을 나눌 기회는 없었다.

8일 오후 국회 연설을 끝내고 참의원 의장 응접실에서 열린 간담회와 저녁에 열린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 주최 만찬회, 9일 정오에 열린 일본 정계 지도자와의 오찬회장에서도 두 사람은 자리를 같이했다. 일본 공산당 기관지 <신분 아카하타(新聞 赤旗)>(아카하타)의 보도에 따르면, 두 사람이 직접 의미 있는 얘기를 나눈 것은 참의원 의장실에서 열린 간담회에서였다.

이 신문에 따르면, 후와 위원장이 김대통령과 악수를 나누면서 먼저 운을 뗐다. “오랜 고난의 시대를 뛰어넘어 한국 대통령으로서 방일하신 것을 진심으로 기쁘게 생각하며 환영합니다.” 김대통령이 “감사합니다”라고 받자, 후와 위원장은 “일본이 과거의 식민지 지배를 분명하게 반성하는 것이 21세기 일·한 관계의 기초라는 점에 대해서 전적으로 동감합니다”라고 얘기를 이으면서, “내외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지만 정권이 성공하기를 기원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김대통령은 “앞으로 협력해서 해 갑시다”라고 짤막하게 대답했다.

김현희 사진이 관계 개선의 실마리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들 중에는 이때의 악수 사진을 예로 들면서, 지난 7월 중순 참의원 선거가 끝난 직후 주일 한국대사관의 유병우 정무공사가 의석 수를 대폭 늘린 일본 공산당 당사를 방문해 시위 가즈오(志位和夫) 서기국장과 면담한 사실과 후와 위원장이 궁중 만찬회에 처음 출석한 사실 등을 지적하며, 한국 정부와 일본 공산당이 급속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고 관측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개중에는 지난 7월 중국 공산당과 일본 공산당이 32년 만에 역사적인 화해를 하면서 <아카하타>의 베이징 지국을 개설한 사실을 예로 들며, 한국 정부와 일본 공산당의 관계 개선에 앞서 <아카하타>의 서울 지국 개설이 곧 이루어지지 않겠느냐고 성급히 관측하는 사람도 있다.

실상은 어떠한가. 일본 공산당이 한국과 관계 개선을 모색하기 시작한 것은 오래전 일이다. 일본 공산당은 68년 8월에 열린 평양회담을 끝으로 북한 조선노동당과의 회담을 중단하고, 아웅산 폭탄 테러 사건 뒤 관계를 완전히 단절한 상태이다. 대신 한국과는 87년 11월 대한항공기(KAL) 폭파 사건이 일어나면서 관계 개선의 실마리를 얻었다. 그 계기는 일본 공산당이 발행하는 월간지 <그라후 곤니치와> 88년 3월6일자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었다.
<아카하타> 의 전 평양 특파원 하기와라 료(荻原遼)가 제공한 이 사진에는 남북조절위원회 제2차 회담에 참석하는 한국 대표단에게 꽃다발을 증정하려고 서 있는 소녀 시절의 김현희가 담겨 있었다. 당시 한국의 관계 당국은 이 사진 한 장으로 대한항공기 폭파 사건이 한국측의 자작극이라는 역풍을 잠재울 수 있었다.

<아카하타>의 가와무라 편집국장에 따르면, <아카하타> 기자가 처음 한국을 방문한 것은 86년 아시안게임 때였다. 그 뒤 서울올림픽 때도 방한했으나, 두 차례 모두 일본 언론의 취재단에 섞여 방한한 지극히 의례적인 것이었다.

주일 한국대사관 “아직은 시기상조”

그후 서서히 관계가 개선되면서 한국의 관계 당국이 <아카하타> 기자에게 단독 취재 비자를 처음으로 내준 것은 92년 5월이었다. 김영삼 정권이 들어선 직후의 일이다. 그 다음해 3월에는 김영삼 정권 1년을 평가하는 취재가 허용되었고, 광복 50주년에 해당하는 95년 1월에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을 취재하기 위해 <아카하타> 기자 3명이 신청한 취재 신청이 허가되었다. 올해에도 지난 2월 김대통령 취임 직전, 4월 지방 선거, 그리고 9월 김대통령 방일 직전의 한국 분위기 취재 등 세 차례 취재가 이루어졌다.
가와무라 시게미쓰(河邑重光) 편집국장은 “올해의 세 차례 취재를 포함한다면 지금까지 여덟 차례 13명이 직접 한국을 방문해 관심사를 취재했다. 한국의 관계 당국으로부터 서울지국 개설은 아직 시기 상조이나, 개별 취재는 얼마든지 허가하겠다는 방침을 전달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주일 한국대사관 관계자도 “<아카하타> 서울 지국 개설은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시기 상조라고 생각하나, 개별 취재는 사안에 따라 허가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그는 일본 공산당이 각종 선거에서 의석 수를 대폭 늘리고 있고, <아카하타>가 일간 40만부, 주간 1백60만부를 발행하고 있어 일본 사회에서 일정한 영향력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일본 공산당이 ‘공산당’이라는 당명과 주일 미군 철수 정책을 견지하고 있고, 한국 내에서 <아카하타>를 북한의 ‘붉은기 사상’으로 혼동할 수도 있다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그러나 <아카하타>측은 지난해 봄부터 한국의 관계 당국과 서울 지국 개설 문제를 협의하고 있음을 인정했다(오른쪽 인터뷰 참조). 게다가 최근의 여러 가지 분위기를 감안하면, 결국 <아카하타>의 서울 진출은 시간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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