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은 ‘난민촌’1천5백만 피난살이
  • 朴在權 기자 ()
  • 승인 1996.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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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냉전 후 국가 해체 등으로 급증… 93년 이후 감소 추세
마치 거대한 강물 같았다. 지난 11월15일 시작된 르완다 난민들의 귀국 행렬. 세계의 주요 외신은 50만 인파가 도로를 가득 메운 채 자이르를 떠나 르완다로 돌아가는 모습을 그렇게 묘사했다. 당초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은 차량 3백여 대로 하루에 1만2천명씩 난민을 르완다로 실어 나를 작정이었다. 그런데 시간당 1만5천명이라는 엄청난 인파가 물밀듯이 르완다 국경 안으로 들이닥쳤던 것이다.

그동안 유엔과 국제 비정부기구(NGO)는 난민 1백20만명을 위해 하루 백만달러씩 쏟아부었다. 이는 난민 한 사람당 1달러에도 못미치는 액수였다. 유일한 해결책은 난민 스스로 자구책을 마련하는 것, 즉 본국에 있는 원래의 생활 터전으로 돌아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러나 귀환 작업은 르완다의 투치족 정권과 계속 싸우기를 고집하는 후투족 강경파의 반대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그런데 예상치 않게 사태가 풀리자 유엔 관계자들은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만명 이상 난민 배출국만 70개국

자이르 사태의 근본 원인은 르완다의 두 종족간 적대 관계 때문이다. 44년간 벨기에가 식민 지배를 하는 동안 전체 인구의 14%에 불과한 투치족이 그 앞잡이 노릇을 했다. 62년 벨기에가 물러간 뒤 치러진 총선에서 전체 인구의 85%를 차지하는 후투족이 승리하자 보복을 두려워한 투치족이 피난길에 올랐고, 94년 처지가 바뀌자 이번에는 후투족이 자이르로 몰렸던 것이다. 이번에 이들 중 상당수가 귀국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될지 모른다는 기대가 고조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후투족 난민 70만명이 자이르에 남아 있고, 이들을 선동해 르완다의 투치족 정부를 전복하려고 노리는 후투족 강경파 세력이 건재하다. 따라서 자이르 사태는 언제 다시 폭발할지 모른다.

국제 분쟁은 자이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지구촌 곳곳이 각종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냉전이 종식된 후 오히려 증가하는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난민은 계속해서 늘었다. 75년에 2백40만명이던 것이 80년에는 5백70만명, 85년에는 1천50만명으로 5년마다 거의 2배씩 늘어났다. 90년에는 1천4백90만명으로 껑충 뛰었고, 소련과 유고가 해체되고 주변 사회주의 국가들이 격변기를 거치면서 난민은 93년에 1천 7백20만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고, 현재는 약 1천5백만명으로 추산된다.

사람들은 난민이 아프리카·아시아·중남미 지역에서만 생기는 것으로 여길지 모르나 실제로는 분쟁 없는 대륙이 한 군데도 없다. 지난해 발간된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 자료에 따르면, 만명 이상의 난민을 배출한 나라만 해도 70개나 된다.

그렇지만 세계의 장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피난민 숫자가 계속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서간 이념 대결이 끝남에 따라 본국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꾸준히 늘고 있다.

베트남의 보트 피플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현재 동남아시아 각국에는 보트 피플 3만8천명이 수용되어 있는데, 베트남의 개혁·개방 정책과 내년 동남아국가연합(ASEAN) 가입을 계기로 본국 송환 작업이 빨라지고 있다. 캄보디아·엘 살바도르·나미비아·니카라과 난민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70∼80년대 치열한 내전을 겪으면서 난민을 대량 유출한 이들 나라는 이제 평화 협정을 체결하고 새 정부를 구성한 후, 각국에 흩어진 자국민에게 돌아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그러나 분쟁이 끝났다고 곧바로 난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프리카 동부에 있는 에리트리아가 대표적인 예이다. 에리트리아는 5년 전에 이미 에티오피아로부터 독립을 쟁취했는데도, 난민 27만5천명이 아직 수단에 있다. 이들은 초토가 된 조국에 돌아가기를 꺼리고, 에리트리아 정부 역시 국제 사회의 지원이 없는 한 난민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난민이 본국에 돌아가기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는 피난 나온 나라의 사정이 훨씬 낫다는 점이다. 내전으로 폐허가 된 모잠비크를 등지고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정착한 10만명은 본국이 안정되고 경제가 생기를 되찾으면 돌아가겠다며 귀국을 미루고 있다.

냉전이 종식되기 이전에는 이런 현상이 훨씬 심했다. 다른 나라로 피신한 사람들은 그곳에서 새 삶의 뿌리를 내렸다. 아프가니스탄과 앙골라 난민들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두 나라 모두 외국군이 철수하고, 무장 세력에 대한 외국의 지원이 줄어들었으며, 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까지 들어섰다. 그러나 두 나라에서는 아직도 난민이 속출하고 있으며, 빠져나온 난민들은 본국에 돌아가기를 꺼리고 있다. 그 때문에 2백70만 아프가니스탄 난민과 17만5천 앙골라 난민이 아직도 외지를 떠돌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국내의 다른 지역으로 피신한 사람들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냉전이 종식된 후부터 난민 문제가 달라졌다. 미국·러시아를 비롯한 초강대국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 국가들이 하나둘씩 무너졌다. 민족·종교 갈등을 배경으로 한 정치 세력 간의 충돌이 확산되었다. 각종 소형 무기와 지뢰를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된 것도 분쟁을 격화시키는 한 원인이 되었다.

소련이 해체된 뒤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그루지야가 겪었던 경험이 그런 예이다. 공산당 지배 체제가 무너진 뒤 정치 세력 간의 충돌이 치열해지자 2백만명 이상이 조국을 등졌다. 유고슬라비아가 쪼개진 뒤 발생한 보스니아·헤르체코비나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28만명이 목숨을 잃었고, 3백만명 이상이 피난길에 올랐다. 특히 보스니아 내전에서는 ‘인종 청소’라는 새로운 형태의 인종 말살 정책이 등장했다.냉전 끝나자 서방 국가 뒷짐만

국가가 해체되는 과정은 아프리카에서도 벌어졌다. 아프리카 동쪽의 소말리아, 서쪽의 라이베리아, 중부의 르완다가 대표적 사례이다. 과거의 정치 체제가 무너지고 사회가 분열되는 틈을 타서 지방 군벌과 군부 지도자들이 치열한 권력 다툼을 벌였다.

냉전 시절 같으면 미·소를 비롯한 초강대국들이 그런 현상을 용납하지 않았겠지만, 공산주의의 위협이 사라진 뒤에는 서방 국가들이 뒷짐만 졌다. 그만큼 이들 국가의 전략적·경제적 가치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최근 아프리카 각국에서 벌어지는 대량 난민 사태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빚어지는 것이다.

국가가 해체되는 것과 반대로 중앙 정부가 통제력을 강화하고 소수 민족의 분리주의운동이나 저항운동을 탄압하는 과정에서도 난민은 발생한다. 예컨대 91∼92년 미얀마 군사 정부의 탄압 정책을 피해 회교도 27만명이 국경을 넘었고, 남부 수단에서 정부군과 반군 간의 교전을 피해 20만명이 고국을 등졌다. 94년 12월 이후 체첸에서도 분리주의운동을 억압하려는 러시아군이 개입해 4만명 정도가 죽고 40만명 이상이 피난길에 올랐다.

그렇다면 유엔은 이같은 각종 지역 분쟁에 어떻게 대처해 왔나. 한마디로 사태가 터지면 뒷수습하기 바빴던 시행 착오의 연속이었다. 걸프전이 터진 뒤에는 이라크 북부와 남부에 ‘안전지대’를 설치해 쿠르드족과 시아파 회교도를 보호하도록 했고, 르완다에는 인권 상황을 감시하는 요원들을 파견했다. 라이베리아에는 유엔 평화유지군과 함께 아프리카 평화유지군을 파병했고, 옛 유고와 르완다 사태의 책임자들을 단죄하기 위해 전범 재판소를 설치했다.

유엔, 뒷수습도 벅차 예방·해결 언감생심

대처 방식이 제각각 달랐기 때문에,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이나 비정부기구의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가장 많이 제기된 것이 효율성 문제였다. 유엔은 평화 유지 활동에 일반 예산의 3배나 되는 돈을 쏟아부으면서도, 분쟁을 예방하거나 해결하는 데에는 무능했다.

소말리아 내전에서는 완전히 실패했고, 보스니아 내전에서도 미군의 들러리 노릇밖에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밖에도 유엔이나 민간 기구들이 지원한 인도적 구호 물품을 중간에서 가로채 돈을 버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 돈으로 무기를 밀수해 분쟁을 격화시키는 세력도 있다. 자이르 난민촌에서 후투족 강경파가 저지른 행위가 바로 이런 것이었다.

고대 아테네의 비극 작가 유프라테스는 ‘고향을 잃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만일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도 무수한 사람이 최악의 고통 속에서 이국땅을 헤매야 할 것 같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저개발국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국가 해체와 중앙 집중화 과정이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고, 이것이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93년을 고비로 난민 숫자가 조금씩 줄고 있다는 점이다. 옛 소련과 중·동 유럽 국가들, 코카서스 지역 국가들이 안정을 되찾아가고 있고, 아프리카 국가 간의 분쟁도 점차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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