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공조 ‘이상 기류’ 주의보
  • 워싱턴/변창섭 (cspyon@sisapress.com)
  • 승인 1996.1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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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원 방식 놓고 이견 커질 가능성…미국, 한반도 정책 골격 불변
집권 4년 내내‘북한 달래기’ 정책을 펼쳐 나름의 실익을 거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재집권함으로써 앞으로 미국의 한반도 정책, 특히 북한 정책이 어떻게 전개될지 큰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외무부 관계자들은 앤서니 레이크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정점으로 한 클린턴 행정부의 외교팀이 유화책을 선호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외교 전문가들도 클린턴 외교팀이 북한 정책의 골격을 흔들지는 않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이같은 판단은 클린턴 외교팀이 북한 체제가 급작스레 붕괴하는 것을 막고 궁극적으로는 북한을 국제 사회에 편입시키기 위해 채택한‘개입 정책’이 성공했다는 평가에 근거하고 있다. 특히 94년 10월 미·북한 제네바 핵합의 이래 북한의 핵무기 계획 동결과 보스니아 내전 종식이 클린턴 정부의 2대 외교 치적으로 꼽히고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클린턴 대통령의 집권 2기에 예상해볼 수 있는 미·북한 관계 개선의 초점은 평양과 워싱턴에 각각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문제일 것 같다. 영사 문제 등 일부 기술적 문제가 타결될 경우 연락사무소는 언제든 개설될 가능성이 있다. 현재 시기만 기다리고 있는 연락사무소가 양국 수도에서 각각 문을 열면 미국은 한국전 이후 적대 관계를 지속해온 북한과 정식 외교 관계를 맺을 발판을 놓게 된다. 그러나 94년 연락사무소 개설에 이어 지난해 대사급 수교로 이어진 미·베트남 경우처럼 미국이 북한에 연락사무소를 개설했다고 해서 곧바로 무역대표부, 나아가 대사급 수교로 이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미국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오랜 우방인 한국의 이해를 깡그리 무시하면서까지 북한과 급속한 관계 개선을 추구하지는 않을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북한과 핵협상을 벌여오면서도 한국과 공개·비공개 창구를 통해 긴밀히 협의해 왔기 때문이다.

미·북한 대사급 수교에 난관 수두룩

미국으로서도 북한과 정상적인 외교 관계를 맺기 위해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 즉 한국전에서 실종된 미군(MIA) 신원 확인 및 전사자 유해 회수가 그것이다. 또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문제도 미·북한 간의 큰 현안이다. 따라서 클린턴은 북한에 대해 유화 정책을 계속 추구하겠지만 미군 실종자 처리와 미사일 문제 등 굵직한 현안이 해결되지 않는 한 대사급 수교와 같은 급진적인 관계 개선은 어렵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오는 2001년 1월까지 이어질 클린턴의 집권 2기는 제네바 핵 합의에 따라 북한에 경수로를 2기 공급해야 하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 이 합의에 따라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에 매년 일정량의 중유를 공급하게 되어 있다. 아직까지는 중유 공급이 차질 없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돈줄을 쥔 의회를 지배하고 있는 공화당측이 제동을 걸 가능성도 있어 난관이 예상된다.

또 약 50억달러로 추정되는 경수로 공급 부담의 대부분을 떠맡고 있는 한국 정부의 태도 역시 관심거리다. 한국측은 최근 외교 채널을 통해 북한이 잠수함 침투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하지 않는 한 경수로 사업을 포함한 일체의 대북 협력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클린턴 정부의 한반도 정책 골격에 큰 변화가 없겠지만 한국과의 공조 체제는 예전처럼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과거 쌀 지원 등 북한 지원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은 양국은 연락사무소 개설 시기나 미사일 협상, 나아가 북한에 대한 국제 지원 방식을 놓고 더욱 이견을 드러낼 가능성이 크다. 기본적으로 미국 정부는 북한 문제에 관한 한 한국과 일단 협의는 하되 최종적으로는 자국의 이해에 따라 행동해 왔기 때문이다.

내년 하반기까지의 국내 정치 요인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김영삼 정부로서도 한·미 공조라는 이름 아래 무작정 미국의 입장을 따를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남북 관계에 별 진전이 없는데도 한국이 미국에 질질 끌려다닌다는 인상을 줄 경우 보수층의 표를 잃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남북 관계가 진전되는 속도를 보아가며 미·북한 관계 진척과 연계시킨다는‘조화와 병행’ 원칙으로 대변되는 한·미 공조 체제는, 클린턴의 집권 2기에 오히려 더욱 틈새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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