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브랜드 파워 ‘천하’를 넘본다
  • 상하이·문승룡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4.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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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얼·렌샹 등 초고속 성장…해외 시장 공략 본격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2002년 10월,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 주석은 전국 경제공작회의에 참석해 다음과 같이 브랜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외국 기업은 자본·기술·경영 관리가 강하고 우리 기업은 산업 기초·노동력·내수 시장이 강하다. 앞으로 세계 시장에서 살아 남으려면 국제적인 브랜드와 독자적인 지적 재산권을 가져야 한다.” 최고 지도자가 개혁·개방 이후 30년 가까이 축적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겨냥한 전환 논리를 세워준 셈이다.
북경명패자산평가유한공사는 지난해 12월, 2003년 중국의 10대 브랜드 순위를 발표했다. 1위를 차지한 가전 회사 ‘하이얼’의 브랜드 자산 가치는 무려 5백30억 위안(7조6천억원)에 이른다. 삼성 ‘애니콜’의 브랜드 평가액 3조3천억원과 비교해도 두 배가 넘는다. 이를 위시해 홍타샨·우량위에·렌샹·띠이치처·티씨엘(TCL)·창홍 등 7개 브랜드가 애니콜의 가치보다 높다. 중국 브랜드의 잠재력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들 기업의 면면을 살펴보자. 하이얼은 연 매출이 11조5천억원에 이른다. 1985년 칭다오 공장 설립 이후 하이얼은 매년 78%라는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장루이민 회장은 1999년 파이낸셜 타임스로부터 휼륭한 기업가 30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뽑혔고, 지난해에는 <포춘>으로부터 미국을 제외한 세계 25대 기업가 중 19위에 올랐다.

렌샹은 전형적인 IT 기업이다. 중국 개인용 컴퓨터 시장을 3등분할 정도로 기세가 등등한 렌샹은 레노보(LENOVO)라는 브랜드를 내걸고, 아시아 시장의 12%를 장악한 상태이고, 여세를 몰아 휴대전화 시장도 넘보고 있다. 렌샹의 리추안쯔 회장은 <타임>으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영자 25인 중 한 사람으로 뽑혔다.

1953년 설립 당시 최고 지도자 마오쩌둥이 창립 축하 행사에 참석해 유명해진 자동차 회사 띠이치처는 현재 종업원을 13만명 거느린 공룡 기업이다. 이 회사 회장 주안펑은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이기도 하다.

TCL은 한국 탤런트 김희선씨를 모델로 내세워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가전 및 통신 회사이다. 1981년 설립 이후 연평균 47%라는 고속 성장을 기록하며 4조6천억원대 매출을 올리고 있다. 해외 매출액은 2천억원에 달한다. 이 그룹의 리동셩 회장은 하이얼·렌샹과 함께 중국을 이끌어가는 IT 산업 분야의 3대 경영자로 꼽힌다.

다른 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용한 마케팅 기법을 구사하는 창홍도 세계적인 브랜드이다. 1958년 중국 쓰촨성의 작은 기계 공장에서 시작해 오늘에 이른 창홍은 현재 가전 분야뿐만 아니라 전지와 LCD 산업에까지 발을 뻗치고 있다. 이 회사 니룬펑 회장도 <아시아 위클리>가 수여하는 ‘기업가 상’을 수상했다.

1999년 중국 휴대전화 시장에서 중국 브랜드 점유율은 전체 시장의 5% 정도로 미미한 상태였지만 지난해에는 중국 브랜드가 무려 56%로 올라섰다. 브랜드 별 판매율로 보면 중국제인 ‘버드’가 1위를 차지했고, 외국 브랜드인 모토롤라와 노키아를 제외하고 중국산인 TCL과 콩카가 각각 3위와 5위를 차지했다. 버드는 중국 저쟝성 닝보에 본부를 둔 보다오 사 제품이다.
이들 회사의 공통점은 품질과 관련한 자체 브랜드 키우기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 시장이 계속 성장하는 시장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내수 시장 선점 전략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 회사의 제품은 국내는 물론 해외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뿐만 아니라 품질 면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브랜드와 품질의 유기적인 결합은 세계 시장을 노리는 기업들의 기본 전략이 되어 있다. 하이얼과 렌샹은 독자 브랜드와 함께 품질 확보에 주력해온 대표적인 기업들이다. 품질로 브랜드 기반을 닦고 서비스로 브랜드를 보증하며 브랜드 파워를 최대한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써왔다. 하이얼의 구호는 ‘먼저 위신을 팔고, 그 다음 제품을 판다’. 렌샹은 ‘하이테크 국제 브랜드 기업’을 표방하고 있다. 두 기업 중 하이얼은 이미 자체 브랜드를 100여 나라에 등록해 놓은 상태이다.
중국이 ‘브랜드 전쟁’의 최대 격전지가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중국 자체 브랜드와 직수입 해외 브랜드뿐만 아니라, 라이선싱으로 중국에서 생산하는 해외 브랜드가 한데 뒤섞여 전쟁이 한창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시장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 생산 기지를 옮기고 중국 업체들과 제휴한 외국 브랜드들이 중국을 전초 기지로 해서 선진국 시장을 넘보고 있다. 하이얼의 와인 냉장고가 한국에 출시되었고, TCL도 평면 텔레비전을 한국 까르푸의 유통망을 통해 판매할 계획이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 중국 가전 제품에 대한 소비자 반응이 냉담해 당분간은 소량의 저가 시장을 형성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러나 한국의 소비자가 조만간 중국 상품을 찾게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한국 시장을 위협하는 것은 중국 자체 브랜드보다는 중국에서 생산되는 해외 브랜드이다. 이미 저가 의류 시장의 80%가 중국 생산품이고, 신발류도 중국과 동남아에서 생산하는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의 물량 공세가 거세다. 1970년대 한국의 경제 성장을 떠받쳐준 아이템들을 중국이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문제는 한국의 청년 실업률이 8%를 넘고, 경제 인구 6명 중 1명이 신용불량자라는 사실이다. 이같은 상황이 중국 브랜드의 한국 시장 진입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고 결국 한국 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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