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과 메이저 총리 불화
  • 런던·韓準燁 통신원 ()
  • 승인 1995.04.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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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의 아일랜드 신 페인당 당수 애담스 초청이 화근
클린턴 대통령은 오는 4월3일부터 이틀간 영국을 공식 방문한다. 그런데 그는 영국 방문중 런던에서 열리는 2차대전 유럽 전승 기념일 행사에 참석하지 않고 바로 모스크바로 갈 예정이다. 최근 아일랜드공화군 정치 조직인 신 페인당 게리 애덤스 당수의 방미를 둘러싸고 빚어진 메이저 영국 총리와의 불화 때문이다.

공교롭게도 두 사람의 불화는 아일랜드의 수호 성인인 성 패트릭 주교를 기념하는 지난 3월17일 백악관 만찬 사건을 계기로 깊어졌다. 남·북 아일랜드 주민뿐 아니라 대서양 건너 4천여만 명의 아일랜드계 미국인의 축제일인 이 날, 클린턴 대통령은 애덤스를 백악관에 공식 초청해 만찬을 베풀었다. 영국에서는 방송 매체가 그의 육성을 내보내는 것이 아직도 금지되리만큼 기피 인물로 낙인 찍혀온 애덤스를 클린턴 대통령이 국빈 예우를 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메이저 영국 총리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다름없었다. 애덤스는 워싱턴 방문 기간에 두 번이나 클린턴 대통령과 회담한 것은 물론 합법적으로 신 페인당의 모금 운동까지 벌였다. 심기가 상할 대로 상한 메이저 총리가 19일 클린턴 대통령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두 차례나 거부한 것은 당연했다.

동맹국 관계가 불신과 대결로

우방국인 두 나라 정상의 이같은 불화는 냉전이 끝난 후 갈수록 틈새가 벌어지고 있는 양국 관계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일화다.

역사적으로는 앵글로 색슨이라는 같은 뿌리에 정치·군사·경제적으로도 변함없는 동맹국으로 곧잘 표현돼온 두 나라 관계가 불신과 대결로까지 치닫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클린턴 대통령이 성 패트릭 기념일에 백악관 만찬 석상에 애덤스를 마치 독립 국가의 대표 격으로 초청해서 신 페인당의 정치적 위상을 높여 준 것을 두고 영국 정부는 로마 공화정 시대인 BC 44년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배반한 경우에 비유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미국 정부가 신 페인당을 합법적인 정치 단체로 인정한 것이어서 영국 정부를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 게다가 클린턴은 워싱턴과 뉴욕에 신 페인당의 연락사무소 설치는 물론 신 페인당을 위한 대규모 정치 자금 모금 운동까지 허용함으로써 영국 정부의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을 벌였다.

유력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 후 국내 정치에서의 실패와 섹스 추문으로 크게 인기가 떨어지자 재선을 겨냥해서 미국내 아일랜드계의 환심을 사려고 신 페인당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나아가 북아일랜드 사태 해결에 중재자 위치를 확보하려는 속셈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국 관리들은 2차대전 후 지난 40여 년 동안 유지돼온 전통적인 유대 관계의 띠가 느슨해졌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한다. 특히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희망했던 영국 보수당 내각은 민주당의 클린턴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 대미 외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양국 관계에 틈새를 벌여 놓은 요인 중의 하나는 냉전 체제가 무너진 후 두 나라의 이념적인 유대 관계가 헐거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유럽연합(EU) 회원국 간의 정치·경제적 통합 움직임이 본격화할수록 미국은 무역·통상 분야에서 영국을 협조자가 아닌 경쟁자로 볼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미국 정부가 주요 국내외 정책을 결정하기 앞서 영국 정부의 입장을 존중해온 전통은 클린턴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거의 사라졌다. 양국 간의 긴밀한 협조·유대 관계는 대처·레이건 시대에서 일단 종지부를 찍은 셈이 된 것이다.

클린턴 대통령이 취임한 후 계속 불편한 관계를 보여온 런던·워싱턴 간의 정치 기상도는 애덤스의 미국 방문을 계기로 지난날의 특별한 관계 대신 대립과 경쟁의 미묘한 긴장 상태 속에서 당분간 한랭전선으로 이어질 것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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