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황제 머독 일가의 ‘왕위 쟁탈전'
  • 런던·韓准燁 편집위원 ()
  • 승인 1999.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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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황제 루퍼트 머독, 후계자로 장남 내정…장녀·부인 ‘호시탐탐’ 대권 노려
호주 출신 세계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68)이 두 번째 아내 안나(54)와 지난 1월 결혼 생활 31년을 끝냈다. 그리고 6월에 세 번째 결혼식을 올렸다.

31세의 젊은 신부를 맞은 늙은 신랑 머독을 위해 캘리포니아 대학 식품건강연구소는 콩가루, 얼린 과일, 냉수, 얼음 몇 조각을 주요 재료로 만든 ‘머독 음료수’를 개발해 추천했다. 이 음료수를 마시고 나서 머독은 뉴욕 맨해튼 아파트 근처에 있는 실내 체육관을 찾는다. 거기서 6시부터 한 시간 동안 개인 트레이너로부터 특별 신체 단련 및 건강 훈련을 받는다.

작가인 아내 안나와 이혼하고 곧바로 딸보다 겨우 한 살 많은 중국 태생 여성과 재혼해 화제를 뿌린 머독은 미국 여성 종합 월간지 <배니티 페어>와 회견을 했다. 이 자리에서 머독은 처음으로 이혼과 재혼을 둘러싼 자신의 사생활, 그리고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언론 왕국 뉴스콥(News coporation)을 이끌어 갈 후계자 문제까지 언급했다. 머독가의 새로운 일원이 된 신부 웬디 덩이 머독 언론 왕국에서 앞으로 차지할 위치와 역할을 놓고 지난 6월 이후 갖가지 소문과 추측이 난무하면서, 뉴스콥의 후계 구도 예측 및 2세들의 역할에 대한 집중 보도가 활발해지자 적극 대응에 나선 것이다.

머독으로 하여금 자신의 언론 왕국 후계자 문제까지 언급케 한 웬디 덩은 누구인가. 그는 중국 산둥성 빈민가에서 태어나 파란만장한 소녀 시절을 거쳐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예일 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집념의 여인이다. 머독의 중국 대륙 진출 및 아시아 지역 위성 네트워크 구축 전진 기지인 홍콩의 위성방송업체 스타 TV에서 수습사원으로 출발한 그는, 승진을 거듭해 최근에는 부사장 직을 맡아 왔다. 웬디 덩은 뉴스콥 회장 겸 스타 TV 소유주인 머독이 중국 시장 진출 사업을 추진키 위해 96년 이후 베이징을 방문할 때마다 그를 수행했다. 그 과정에서 두 사람은 공적 관계를 떠나 차츰 애정 관계로 발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한 머리와 사업 수완, 목표를 향한 흔들림 없는 노력으로 정상에 오른 웬디 덩은 언론 왕국에서 경영자 수업을 받는 머독가 2세들에게 경계와 우려의 대상이다. 머독은 웬디 덩이 머독가의 일원이 된 것과 관련해, 자신의 세 자녀가 조직 내에서 서로를 견제하면서 주도권 다툼을 벌일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결국 웬디 덩이 세력을 구축하는 데 이용될 수 있어 세 자녀가 공동의 위기 의식을 갖고 있다는 소문에 대해 악의적인 낭설이라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는 나아가 웬디가 총명하고 일하기를 즐겨해 어떤 곳에서든지 능력을 발휘하겠지만, 현재로서는 자신을 가정에서 보좌하는 것이 아내로서 할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그는 ‘중국 출신 여성과의 결혼이 바로 중국과의 결혼이며, 뉴스콥의 새 밀레니엄 목표인 중국 미디어 시장 진출을 겨냥한 정략 결혼’이라는 일부 언론의 주장도 부인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인디펜던트>는 두 사람이 결혼한 직후인 지난 7월13일자에서 이미 중국내 정계 인사는 물론이고 미디어 당국 관계자와 친분과 신뢰를 쌓아 온 웬디가 앞으로 본격화할 스타 TV의 중국 시장 진출 협상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젊은 부인 웬디 덩의 도전과 야심

<인디펜던트>는 머독의 장남인 라클란 머독(27)이 홍콩의 스타 TV에서 근무할 때 이제는 계모가 된 웬디 덩과 함께 일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때 받은 인상과 경험 때문에 잠정적인 후계자로 이미 내정되어 있는 그마저도 뉴스콥을 아버지로부터 이어받으리라는 기대와 확신이 약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웬디는 결혼과 함께 스타 TV에서 가졌던 직책을 다 내놓았지만, 30대 초반 여인이 품고 있는 야심과 자기 능력에 대한 확신을 쉽게 잠재울 수 없으리라는 것을 라클란이 잘 알고 있다는 지적이다.

머독은 97년 세 자녀 중 두 번째인 장남 라클란에게 일단 뉴스콥 산하 호주 지역 신문 발행 총괄사인 뉴스 리미티드 회장 직을 맡겨 후계자 수업을 받게 하고 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 철학과 출신인 그가 예정대로 뉴스콥을 이어받는다면 국제 언론계에서 가족간 족벌주의를 넘지 못하는 전근대적 언론 기업으로 기록된다.

이를 의식해 머독은 가족 승계의 길은 많은 시련과 자기 정진이 요구된다고 주장해 왔다. “라클란이 플레이 보이, 또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거나 회사 내에서 신뢰와 존경을 잃게 되면 그는 후계자 지위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세 아이는 매일매일 자신과 싸워서 이겨야 한다.”

웬디 덩의 등장을 가장 꺼리는 머독가 2세는 같은 여성에 한 살 적은 장녀 엘리자베스 머독(30)이다. 아버지 루퍼트의 미국내 사업을 위해 가족이 미국으로 귀화해 미국 시민권자가 된 엘리자베스는 뉴욕 바사 칼리지를 졸업했다. 호주와 미국에서 90년부터 6년간 프로듀서 수업을 받고, 적자이던 지방 상업 방송사들을 인수해 흑자로 돌려놓는 등 방송 경영에 관한 실무 경험을 쌓았다.

머독 못지 않게 공격적인 경영력을 보여 제일 먼저 아버지로부터 인정을 받은 그는 현재 뉴스콥이 가장 심혈을 쏟고 있는 국제 디지털 위성 사업의 본부인 영국위성방송사(BskyB) 전무로 전반적인 프로그램 편성과 행정을 관할하는 스카이 네트웍스(Sky Networks)의 총책임자다.

대학 시절 만난 클라스 메이트이자 아프리카 가나 출신 반체제 인권운동가의 아들 엘킨 피아남과의 사이에 두 딸을 둔 이혼녀인 그는, 일에 대한 욕심이 세 남매 가운데 으뜸이다. 앞으로 계모인 웬디는 물론 두 남동생 라클란과 제임스(26·뉴스 아메리카 디지털 출판사 사장)와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크다.

엘리자베스는 96년 3월 런던에 정착해 영국위성방송사의 실질적 책임자가 된 이래 98년 9월 영국 프로 축구계 최고 인기 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인수 및 텔레비전 독점 중계권 획득에 이어서 10월1일 방송 스카이 디지털 송출을 성공시킴으로써 디지털 미디어 시장에서 가장 획기적인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왔다. 지난 7월31일 현재 디지털 위성 가입자는 1백21만 가구. 이 가운데 신규 가입자는 전체의 43%인 51만5천 가구에 이른다. 98/99 회계 연도 전체 수익은 7천3백만 파운드(약 1천4백60억원)를 기록했다.

이처럼 가입자가 증가해 영국 가정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는 디지털 방송의 물결은 멀티 채널 수 백 개를 제공해 시청자들이 선택할 폭을 넓히고 있다. 이어서 엘리자베스 머독은 디지털 경쟁 상대인 BBC와 ONdigital에 앞서 지난 10월11일에는 텔레비전 쇼핑·뱅킹·이 메일 등 쌍방향 디지털 텔레비전 서비스를 개시해, 시청자의 여가 시간 소비와 미디어 수용 행태에까지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엘리자베스,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엘리자베스는 지난 1년 사이 국제 언론계와 미디어 환경, 그리고 미디어 시장과 산업의 지형까지 크게 바꾸면서, 이른바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이끄는 새 주역으로 떠올랐다. 그는 특히 올해 초부터 언론으로부터 조명을 받기 시작해 최근에는 영국내 우먼 파워 엘리트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 3월 영국 기업 고위 경영자들을 위한 잡지 <매니지먼트 투데이>는 1년 전만 해도 거의 무명이던 엘리자베스가 영국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행사하는 여성 50명 가운데 4위에 올랐다고 발표했다. 영국 여성 잡지 <굿 하우스 키핑> 11월호도 정치·기업·언론·예술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여성의 순위를 매겼는데, 엘리자베스 머독이 6개월 만에 블레어 총리 부인 세리 부츠(7위), 엘리자베스 여왕(89위), 마거릿 대처 전 총리(95위)를 압도적으로 따돌리고 1위로 올라섰다.

현재까지 루퍼트 머독이 가장 마음에 두고 있다는 점이나 조직내 위치를 볼 때 머독 언론 왕국의 황태자는 장남 라클란이다. 엘리자베스는 지난해 가을 후계 구도를 둘러싼 동생과의 경쟁과 불화설을 잠재우기 위해 일단 “아버지가 라클란을 점찍었다면 거기에 따르겠다”라고 공언했다. 그러면서도 “나와 동생은 최고봉을 향해 같이 전진하고 있다. 바로 그것이 아버지가 걸어 왔던 길이다”라고 말해 새 밀레니엄 시대를 이끌 머독 언론 제국에서 여왕이 되려는 야심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새 가족이 된 야망의 여인 웬디 덩이 새 밀레니엄을 맞아 거대한 미디어 시장 중국 대륙에 진출하고 있어 머독 언론 왕국의 권력 판도는 세계 곳곳에서의 성과에 따라 우여곡절을 겪으며 변화할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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