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번지는 ‘나치’ 페스트
  • 베를린·金鎭雄 통신원 ()
  • 승인 1997.05.01 00:0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일 신나치주의자 갈수록 늘어…인터넷 등 동원해 세 확장, 테러 일삼아
지난 3월 중순 독일 에센의 주법원에서는 무고한 시민 3명을 살해한 피의자 토마스(28)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극우 단체인‘정치범 및 유가족 후원회’에서 일하는 그는 애인이 자신의 정치 노선을 따르지 않는다고 살해했다. 두 번째 피살된 소녀는 단지‘나치 물러가라’는 문구가 쓰인 점퍼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화를 당했다. 토마스는 그를 추적해 폭행하고, 죽인 후에도 다시 칼로 아흔 한 차례나 난도질했다. 그는 비슷한 이유로 그 후에도 또 한 사람을 총으로 쏘아 죽여 작년 1년 동안 살인을 세 차례나 자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발생하는 독일 극우파 범죄 행위의 극단적인 사례이다. 82년 1백21건에서 90년 2백55건에 이르기까지 통일 전의 신나치 폭력은 그다지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통일 후 이들에 의한 범죄 행위는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91년에는 전년에 비해 무려 6배가 늘어난 1천5백67건에 달했고, 92년부터는 2천건을 넘어섰다. 정부가 사전 예방 조처를 취하고 있으나 이들의 폭력 범죄는 전혀 줄어들지 않아, 통일 후 손꼽히는 사회 문제 중의 하나가 되었다.

실업 등 사회 불안이 신나치즘 확산 부채질

독일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극우적 성향은 통일 후 사회 불안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즉 통일된 지 몇 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옛 동독인이나 기하급수로 늘어만 가는 실업 사태에 직면한 대다수 불만층이 우익 세력으로 돌변하고 있다. 특히 당면한 사회 문제가 외국인 때문이라고 선동하고 있는 극우파들의 민족주의적인 주장에 독일인 다수가 공감을 표하고 있다.

극우파 폭력의 대상은 예전에는 주로 외국인이었다. 또 테러 방식도 집단 폭행과 방화 살인 등 다양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93년 터키인 일가족 5명을 몰살한 졸링겐 방화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와 달리 최근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독일 사회를 더욱 긴장시키고 있다. 범행 대상이 외국인은 물론 자국민에게로 확대되고 있으며, 조직적이고 무기까지 동원하는 등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부란덴부르크·튀링겐 등 옛 동독 지역의 소도시는 이른바 옛 서독 체제에 대항하는 신나치 세력의 구심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이들은 곳곳에 자신들의‘해방구’를 확보하고 있다. 그곳에서 힘을 결집하고, 반동 좌파 인물들을 심판하기도 한다. 부란덴부르크 내무장관 알빈 질은 아예‘신나치는 이미 통제가 불가능하다’라고 실토했다.

이와 관련된 관심거리는 기존 극우 단체들이 나치와 옛 동독의 유산을 연결해 독자적인 독일 역사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 식민지라고 깔아뭉갰던 옛 동독 체제에서 그들은 순수 독일적인 것을 재발견해 복원하려 한다. 민족 고유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영화·음악 등 선전물들을 사용해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을 재무장시키고 있다.
극우 단체가 발행하는 한 신문은 ‘서독은 외국인으로 인해 이질적인 형태로 변질된 데 반해, 중부 독일의 순수한 독일 민족성은 한 번도 훼손된 적이 없다’라며 옛 동독의 유산을 추켜세웠다.

극우 계열의 옛 동독 재평가 작업은 옛 동독 지역에 그들의 새로운 지지 기반을 구축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통일 이후 실업과 가치관 혼란 등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대다수 청소년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극우 단체들은 또 옛 동독군 출신들을 결집하려는 작업까지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반서독적인 정서와 옛 동독에 대한 향수를 자극해 방황하는 옛 동독의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려는 기발한 아이디어이다.

극우파로 분류되는 단체의 총인원은 당국의 공식 집계로는 6만명이 채 안된다. 여기에는 공화파(REP)·국민연합(DVU)·민자당(NPD) 등 공식 정당으로 활동하는 단체와 폭력·테러 행위를 자행하는 수많은 지하 조직이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첨단 기술까지 동원해 긴밀한 연결망을 구축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을 이용한 방법은 당국의 도청이나 검열을 손쉽게 피해 나간다. 이들이 93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독자적인 컴퓨터 통신망은 전독일에 분산되어 있는 수많은 단체들을 하나로 묶어주고 있다. 이들은 우편함 12개를 이웃 네덜란드에 설치한 뒤 다시 독일로 연결하고 있어 추적하기가 쉽지 않다. 각종 정보 교환이나 시위 및 집회의 조직은 이를 통해 이루어진다. 인터넷을 이용한 이러한 ‘사이버 나치’의 조직 방식은 이들 활동에 안전성과 기동성을 보장한다. 지난 3월 초 뭔헨 집회에는 전국에서 신나치 5천여 명을 순식간에 끌어모아 그 진가를 유감없이 보여주기도 했다.

“옛 동독 지역 시민 3분의 1이 극우 성향”

이들은 또 인터넷을 이용해 각종 안전 장비 및 신종 무기에 관한 정보를 외국으로부터 입수하기도 하고, 외국의 극우 단체와 연계하고 있다. 그 중 미국 백인 테러단의 대부로 유명한 톰 메츠거가 띄우는 인터넷 정보는 전세계 극우 계열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반유태 및 반유색 인종에 관한 정보를 전하는‘저주의 면(Hate Pages)’이라는 웹 페이지는 대단한 호응을 얻어, 어떤 때에는 1주일 동안 무려 10만 회나 검색되기도 했다.

메츠거의 목표는 우선 백인으로만 구성된 순수 미국을 건설하고, 이어서 호주·러시아·유럽 순으로 유색 인종 청소를 하는 것이다. 자체 신문 발행, 지역 텔레비전망을 통해 방송하는 자체 프로그램, 비밀 컴퓨터 통신망을 통한‘복음 전파’작업이 그의 핵심적인 활동이다. 이처럼 첨단 기술을 이용해 외국과 교류하는 신나치 세력에 독일 경찰은 골머리를 썩고 있다.

다양한 독일 극우 단체들의 공통점은 히틀러 숭배, 외국인 증오, 유태인 학살 부정이다. 나치 이데올로기를 확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비디오·음악·영화를 제작하고, 신문·잡지도 다수 발행해 배포하고 있다. 외국인·유태인 단체에 대한 방화와 습격은 이들의 단골 메뉴이지만, 최근 들어서는 좌파 진영이나 야당 인사에게 폭발물을 우편으로 보내는 등 공격 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93년 말 경찰의 전국적인 극우파 수색에서는 정치인·법조인·비밀 정보 요원·경찰 2백50여 명의 주소와 전화번호가 적힌 테러 대상 명단이 발견되기도 했다.

선거를 통해 드러나는 국민들의 극우 정당 지지는 헤센, 바덴-뷔텐베르크 지방을 제외하고는 5%도 안되어 크게 우려할 바가 못된다. 그러나 지금까지 극우파 계열의 폭력 범죄 중 십중 팔구는 극우 단체가 아니라 그들에 동조하는 일반 시민이 자행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극우파 문제 전문가 베른트 바그너씨는 얼마전 옛 동독 지역 시민 3분의 1이 극우 성향을 지니고 있다는 놀라운 연구 결과를 공개했다.

더구나‘그들은 이미 정상으로 희귀하기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그는 단언했다. 이러한 극단적 정치 성향에 더해 나치가 집권하기 직전인 30년대를 연상시키듯, 거의 5백만에 육박하는 현재의 대량 실업 사태가 서로 맞물려 통일 독일이 극우화로 행진하는 데 충분 조건이 되고도 남는다는 지적이다.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