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의 풍랑 잘 날 없는 섬 조이도
  • 崔寧宰 기자 ()
  • 승인 1997.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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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카쿠 제도 둘러싼 뿌리 깊은 영토 분쟁 재연
만약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중국인들을 단결시키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일본과의 영토 분쟁일 것이다. 최근 동중국해에 있는 작은 섬 센카쿠 제도(중국명 釣魚島)를 놓고 벌어지고 있는 분쟁은 이 사실을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이 분쟁의 한편은 일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은 중국 정부뿐만 아니라 홍콩·대만·마카오와 해외에 퍼져 있는 범중국계 주민들과 정부들이다.

센카쿠 제도는 오키나와 본토의 나하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4백㎞, 대만의 기륭으로부터 북동쪽으로 약 1백75㎞ 떨어져 있는 조그만 섬 8개이다. 중국과 일본은 지난해에도 일본 극우파 청년들이 돌발적으로 이 섬에 등대를 세우는 바람에 외교 분쟁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대만과 홍콩의 시민 단체들은 선박을 동원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이 섬에 상륙했다. 이 과정에서 홍콩인 1명이 익사하기도 했다. 사태는 중국과 일본 정부가 시민들의 자제를 촉구해 소강 상태에 들어갔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분쟁은 4월27일 일본의 나카마 시의회 의원이 <산케이 신문> 기자 1명과 이 섬에 상륙하면서 촉발되었다. 중국 정부는 사건 직후 일본 정부에 재발 방지 조처를 취하라고 항의했다. 일본 정치인의 돌출 행동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일본의 현직 국회의원인 니시무라 신고(신진당) 등 4명이 5월6일 오전 다시 이 섬을 방문한 것이다. 중국이 분노한 것은 물론이다. 중국 텔레비전들은 일본 의원들이 이 섬에 일장기를 게양하는 모습을 뉴스 시간에 내보냈다. 중국 정부의 공식 항의와 때를 맞추어 대만 외교부도 심각한 우려를 표시한다고 논평했다. ‘조어도 보호 행동위원회’라는 홍콩의 시민 단체는 일본 총영사관으로 몰려가 일장기를 불태웠다. 대만·홍콩·미국 거주 화교 등 시민 단체 소속 1백80여 명도 연대 항의 표시로 민간 선단을 조직해 5월18일 이 섬에 올라 캠핑하며 밤을 지샐 작정이다.

이 섬을 둘러싼 분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적어도 16세기로 거슬러올라가야 하리만큼 복잡한 내력이 있다. 현재 일본 영토인 오키나와는 16세기 초 ‘류큐’라는 독립 왕국일 때 중국의 속국이었다. 당시 류큐 왕국에서 새로운 왕이 등극하면 중국 조정은 책봉사(冊封使)를 보냈다. 이 때 중국 문헌을 보면 ‘중국을 떠나 8개의 바위섬인 조어도를 지나 오키나와로 간다’는 구절이 나온다. 당시 중국이 조어도를 영토의 일부로 인식했다는 사실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법적으로 중국 정부가 이 섬을 영토로 인정했다는 증거는 또 있다. 청조 말 서태후가 좋은 약초가 나오는 조어도를 신하에게 하사했다는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1875년 일본은 오키나와를 정복하고 일본 영토로 편입했다. 센카쿠 제도는 오키나와와 가깝기 때문에 이 때부터 일본 영향력에 들어간 듯하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청나라로부터 대만과 센카쿠 제도를 할양받았다. 하지만 섬의 존재가 보잘것없어서 일본 정부는 이 섬을 자국 영토로 뚜렷하게 의식하지 않았다. 1900년 이전까지 섬에 이름조차 붙이지 않은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섬 이름인 센카쿠(尖閣:뾰족한 집이라는 뜻)는 1900년에 영국 해도에 이 섬이 ‘pinnacle islands’(뾰족한 섬)라고 표기된 것을 본따 붙인 이름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일본측에 유리한 증거도 많이 발견된다. 19년 무렵 중국 어선이 난파해 이 열도에 긴급 상륙했을 때 일본의 오키나와 관원이 구제한 적이 있다. 이 때 나가사키 중국 영사가 일본 정부에 보낸 감사 편지를 보면 ‘귀국 영토 센카쿠 섬에 상륙하여 구조를 받아 고맙다’는 내용이 나온다.

미국, 섬 돌려주며 “두 나라가 알아서 하라”

45년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대만은 중국에 반환되었으나 센카쿠 제도는 오키나와를 점령한 미국이 관할했다. 미국은 72년 오키나와를 일본에 돌려주면서 센카쿠 제도를 오키나와에 묶어 일본에 귀속시켰다. 이를 계기로 일본은 이 섬을 ‘실효 지배’하게 되었다. 이 때 중국은 미국에 센카쿠 제도는 오키나와와 별개이므로 중국에 돌려 주어야 한다고 항의했다. 그러나 미국 국무부는 ‘두 나라가 따질 일이다. 이 섬이 어느 나라 소속인지 판단할 수 없다. 편의상 영유권과 관계없이 빌려 쓰다 일본에 돌려준 것 뿐이다’라는 성명을 내고 슬그머니 빠져 버렸다.

일본이 별다른 관심도 보이지 않다가 이 섬에 집착하는 것은 경제적인 이해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69년 5월 유엔 극동경제위원회가 센카쿠 인근 해역의 대륙붕에 석유를 포함한 천연 자원이 대량 매장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발표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만은 아니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반 세기 동안 일본은 국제 사회에서 경제 지위에 걸맞는 정치력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일본은 더 이상 최고 수준의 유엔 분담금을 낸다든지 개도국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에 만족하지 않는다. 특히 걸프전 이후 일본 정부는 국제 사회에서 좀더 능동적인 정치적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동아시아의 영토 분쟁에서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전략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일본의 외교 전술은 강대국답게 입체적이다. 우익 단체나 국수주의 정객들이 센카쿠 제도에서 과격한 행동을 하더라도 일본 정부는 적극 대응하지 않는다. 공식으로는 대응하지 않지만 뒤에서 이를 부추기며 우익 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기도 한다.
지난해에 중국계 어민이 이 섬에 상륙해 중국과 대만 국기까지 꽂았는데 일본이 정부 차원에서 군사 대응 같은 민감한 대응 방식을 피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다. 일본 외무부는 이와 관련해 ‘민간인이 접근한 것에 군사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는가. 이 섬은 영유권 분쟁 대상이 되지 않는 일본 영토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이곳에 군사력을 동원하면 상대 국가 역시 군사적 수단을 강구해 분쟁 지역이 되므로 이를 피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은 흥분해도 양국 정부는 느긋한 대응

그렇지만 일본은 센카쿠 제도 분쟁에서‘실효적 지배’라는 개념은 절대로 꺼내지 않는다. 독도나 러시아 북방 4개 섬을 한국과 러시아가 실효 지배하고 있어, 이 논리를 적용하면 독도나 북방 4도를 한국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센카쿠 제도는 중국으로서도 양보할 수 없는 섬이다. 중국은 7월1일 홍콩 주권 인수를 계기로 대만과의 통일 등 ‘하나의 중국’을 위한 계획을 착착 진행하고 있다. 그래서 영토 문제는 어떤 나라에도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군국주의와 우익 보수화로 흐르는 일본은 중국에게 가장 껄끄러운 상대이다.

중국이 센카쿠 제도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일본이 독도 문제를 거론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사실 중국 정부는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거스르면서까지 이 문제를 쟁점화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민간 차원이나 정치인 개개인의 돌출 행동은 있을지언정 강대국인 두 나라 정부가 이 문제로 충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양국의 이해 관계가 걸린 다른 중요한 현안이 많은데 이 문제로 외교 관계를 거스른다면 결국은 두 나라 모두 손해라는 것이다.

국제법 전문가들은 법적으로도 분쟁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진단한다. 결국 센카쿠 제도 분쟁은 지난해처럼 잠시 달아올랐다가 가라앉을 공산이 크다. 다만 독도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양국이 이 문제를 대하는 이중적이고도 느긋한 대응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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