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좌우 동거 정부의 미래
  • 파리·高宗錫 편집위원 ()
  • 승인 1997.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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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총선 패배로 반쪽 대통령 전락…임기 2년 만에 ‘레임 덕’ 족쇄
지난 6월1일의 총선 승리자인 사회당의 리오넬 조스팽 신임 총리가 4일 공산당 출신 3명을 포함한 좌파 내각을 출범시켰다. 그에 따라 프랑스는 우파 대통령(자크 시라크)에 좌파 내각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좌우 동거 정부가 앞으로 5년간 정치를 꾸려 나가게 되었다. 이원집정부제라고 불리는 제5공화국 헌법 체제 이래 프랑스에 좌우 동거 정부가 들어선 것은 이번이 세 번째이다.

프랑수아 미테랑이 대통령이었던 86~88년과 93~95년 좌우 동거 정부가 있었다. 그 기간에 대통령은 사회당 출신이었지만, 하원에서는 우파가 다수파여서 우파 내각이 내치를 맡았다.

프랑스 하원의 임기가 5년인데도 지난 두 번의 좌우 동거 내각이 둘다 2년 만에 끝난 것은 대통령 선거 때문이었다. 86년 총선에서 우파가 승리한 뒤에 구성된 제1차 좌우 동거 정부는 88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된 미테랑이 그 여세를 몰아 임기가 3년 남은 국회를 해산해 총선을 실시한 결과 사회당이 승리해 ‘사회당 대통령·사회당 내각’으로 되돌아갔다. 또 93년에 우파가 대승해서 구성된 제2차 동거 정부는 2년 뒤인 95년 대통령 선거에서 우파 후보인 시라크가 당선됨으로써 자연스럽게 ‘우파 대통령·우파 내각’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정이 다르다. 프랑스 대통령의 임기는 7년이어서 95년 5월에 선출된 시라크의 남은 임기가 5년인데, 그것이 이번에 총선을 치러 좌파가 다수가 된 하원의 임기와 꼭 맞는 것이다. 시라크로서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자신의 적수였던 리오넬 조스팽을 상대해 앞으로 남은 임기 내내 국정을 논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새 사회당 내각도 실업 해결 등 숙제 태산

물론 대통령에게는 국회 해산권이 있으므로 시라크가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다시 국회를 해산하는 것이 법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에서 우파가 패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것이 임기가 1년 남은 국회를 납득할 명분 없이 정략적으로 해산한 것이었으므로, 시라크가 다시 그런 도박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지난 두 차례의 좌우 동거 정부에서 미테랑이 그랬듯, 시라크도 대통령으로서 국방과 외교에 관한 중요한 결정들을 최종적으로 내리기는 하겠지만 그 밖의 분야는 조스팽이 이끄는 내각이 전담하게 되므로, 시라크는 이제 반 쪽짜리 대통령에 불과하다.
더구나 국방과 외교 분야에서마저 배타적인 결정권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 첫 번째 좌우 동거 내각에서 시라크 자신이 총리로서 그 두 분야에서 미테랑을 제쳐놓고 주도권을 행사하곤 했던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시라크의 레임 덕은 이번 총선으로 이미 시작된 셈이고, 이제 외국의 의전 관계자들은 시라크와 조스팽 가운데 누가 프랑스를 대표하느냐를 놓고 다시 한번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이번 총선에서 프랑스 유권자가 좌파를 택한 것은 실업과 부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전 총리 알랭 쥐페의 우익 보수주의 노선 탓이라고 할 수 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새 사회당 내각의 짐은 더 무겁다.

특히 93년 총선과 94년 유럽 의회 선거에서 대패함으로써 풍비박산난 사회당을 4년 만에 다시 집권당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한 새 총리 리오넬 조스팽은, 자기 개인과 사회당의 정치적 프로그램을, 공산당이나 녹색당 등 다른 좌파는 물론 다른 유럽 국가의 정치 프로그램과 건설적으로 조율해야 하는 힘겨운 사업에 나서게 되었다.

공영 기업 민영화 억제나 유럽 단일 통화를 향한 속도·조건 재조정 등은 다른 좌파 정당과 사회당의 의견이 일치하는 분야이지만, 외국인 불법 체류자에 대한 체류 자격 즉각 부여, 영세민과 하층 노동자에 대한 사회보장 전면 강화 등 공산당의 요구를 고용 증진이라는 최우선적 목표와 조화시켜 나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유럽에서 최후로 남은 공산당의 지원을 받는, 유럽에서 가장‘낡은’사회당이, 실업과 극우 선풍으로 사회 일각이 무너져 내리는 프랑스 사회를 재건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특히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일부 각료들이 포진한 조스팽 정권이 출범함으로써 유럽 통합의 또 다른 축인 독일이 걱정스런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도 주목할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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