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사건 이후 한반도 정세 진단
  • 정리·南文熙 기자 (sisa@sisapress.com)
  • 승인 1996.11.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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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국제경영연구원의 ‘잠수함 사건 이후 한반도 정세’ 진단
4자 회담 문제로 한반도 정세가 혼미했던 지난 7월 <시사저널>은 한반도 전문 연구기관인 LA국제경영연구원의 한반도 정세 진단(<시사저널> 제350호)을 실어 관련 전문가들의 눈길을 끈 적이 있다. 그 후속으로 잠수함 사건 이후 내외 정세에 대한 이 연구원측의 진단을 싣는다. <편집자>

잠수함 사건에 대한 북한 내부 당·정·군의 입장은 무엇인가? 그리고 북한은 어떤 방향으로 수습하고자 하는가?

잠수함 사건 발생 초기 북한 군부는 한국이 이처럼 강력하게 대응하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를 빌미로 협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기대(?)까지 가졌다. 그러나 한국의 대응이 강경하자 북한 군부는 매우 격앙했다. 이 분위기는 상당 기간 지속되어 10월 초순까지 북한에서 당·정이 이 문제를 쉽게 꺼낼 수 없을 정도였다.

입장 변화는 외교부를 중심으로 나타났다. 외교부는 미·북한 관계가 개선되어야만 한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특히 미국을 난처하게 만들고서는 북한이 의도하는 통미(通美)를 통한 정치경제적 출구 마련이란 있을 수 없다는 논리가 서서히 확산되었다. 이때부터 이른바 ‘군부의 맹동적 행동이 문제다’라는 식의 이야기가 퍼져나왔다.

당의 입장은 군부의 의견을 무시하고 강력하게 개진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수습책을 두고 아쉬움을 표현하는 유화적 발언이 일부에서 나오면서 이 상황 역시 변화를 보였다. 즉 ‘한국이 잠수함을 가지고 협상을 요구했다면 차라리 좋았다’는 식의 의견이다. 이 표현에는 상당한 의미가 담겨 있다. 군부가 사태를 초기에 진화하는 데 실패한 것이 결국 북한의 대외 정책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식의 신랄한 비판이 가미된 것이다. 이런 비판에 대해 북한 군부는 노동 1호 시험 발사라는 이슈를 통해 빠져나갈 구멍을 마련하였음은 물론이다.
해결책을 가장 먼저 만들어낸 것은 사실상 미국이다. 미국은 한국에 자제를 요청하는 한편 북한의 향후 행동을 계속 주목하였다. 미·북한 간에 이미 형성된 채널을 통해 이 문제의 해법을 강구했음은 물론이다. 그에 따라 다른 인물이 아닌 북한 외교부 10국(미국 담당) 국장이자 군축 및 평화연구소 부소장인 이형철이 미국을 방문했다. 주목할 점은 그가 미국 담당 국장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다는 점이다.

북한의 해법 역시 미국을 설득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잠수함 사건 이후 일련의 상황은 이형철의 미국 방문으로 해결의 막바지를 치닫고 있다. ‘잠수함 사건 이전의 북·미 관계를 희망한다’는 말은 현재 북한 내부가 미국과의 관계를 중시할 수밖에 없는 구도임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북한 잠수함 사건에 대해 미국·일본·중국 등 주변국의 시각과 한국 정부의 시각에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각 시각 차이의 쟁점은?

먼저 한국의 시각을 살펴야 한다. 잠수함 사건을 명백한 침략 행위로 규정하였을 뿐만 아니라 전쟁 임박 상황으로 인식했다. 전체적으로 한국은 이 사건을 통해 ‘북한의 버릇을 고치는’계기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세계에 확연히 보인 셈이다. 한국이 피해 당사자라는 점, 그리고 북한이 테러국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하려는 외교 노력은 부분적으로 성공한 것 같다. 한국 정부의 일부 정책 당국자는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주장한다.

주목할 점은 역시 미국이다. 워런 크리스토퍼 국무장관의 ‘남북한 쌍방 자제 발언’이 한국을 분노(?)하게 만들었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라는 행사가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클린턴 대통령 처지에서 북한 핵문제 해결은 외교 치적으로서 적어도 대선 이전에는 훼손되어서는 안되는 불가침 영역이다.

미국으로서는 당연히 이 사건이 확대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리되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한국의 사건 인식이 강경으로 치닫자 미국도 표면적으로 강한 어조를 보이며 한·미 공조를 강조함으로써 이 사건을 무마하는 수순을 택했다. 북한을 연착륙시킨다는 목표에 변동이 없는 상태에서 북한과의 대화 수순을 마련한 것은 물론이다.

일본도 지난 9월의 나진·선봉 국제 투자 포럼 이후 일본 기업의 북한 진출이라는 팽팽하게 당겨진 활시위가 잠수함 사건으로 비록 느슨해지긴 했지만 사태를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미·북한 관계 개선 작업이 곧 드러나게 될 것이고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는 정치권의 인식이 계속 유지되고 있다. 전체적으로 미국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각론에서는 한반도에서 일본의 독자적 역할에 주목한다. 전형적인 예의주시형이다.

중국도 이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외교 원칙을 벗어나지 않는 절제된 입장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그 속에는 한반도의 안정 유지와 남북한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다. 그러나 미·북한 대화 구도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덥지 않은 눈길을 보낸다.
잠수함 사건으로 주춤하긴 했으나 9월 나진·선봉 국제 포럼 이후 북한의 경제 개방 움직임은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이는가?

아직도 북한 지도부의 경제 개방 의지는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 의문을 두고 워낙 말이 많다. 그러나 북한에서 최근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로 보아, 북한 지도부가 경제 개발에 대한 의욕은 높지만 그것을 실행할 소프트웨어를 구비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김정일 비서는 최근 각 경제 부문 일꾼들에게 ‘지금까지의 사고방식을 모두 버리고 경제 개발을 위한 새로운 사고를 가지라’는 내부 지시를 했다고 알려진다. 지난 9월 초에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이 내부 지시에 따라 해당 부문 엘리트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다. 현재 문제는 지도부의 의식보다는 이를 뒷받침하고 실행할 사람이 적다는 내부 환경이다. 하다 못해 적절한 세관 관계 법규 하나 마련하기 어려운 현실이기 때문에 북한의 경제 개방이 더욱 더디 진행되고 있다.

나진·선봉은 여전히 북한 내의 또 다른 ‘공화국’으로 자리매김되고 있지만, 아직도 효율적 개방 시스템 도입이 부진하고 개방에 대한 불안 심리로 인해 경제적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모두 유기적 집행이 매끄럽지 못한 상태이다. 각 부문 간의 알력으로 인해 대외 경제 관계 일꾼들조차 풀지 못하는 딜레마가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데, 이것을 뒤집을 계기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9월의 나진·선봉 포럼이 어떤 이유에서건 하나의 전환점이 될 수 있지만, 외국 기업이 원하는 것은 북한 정부 차원의 투자 보증과 적절한 파트너 확보이다. 나진·선봉 포럼의 한국 신청자에 대한 참가 제한 및 불참 결정과 관련해, ‘더 이상 대외경협위의 김정우 위원장과 같이 실권이 없어 무책임할 수밖에 없는 인사와는 대화할 수 없다’는 말이 한국 정부에서 나오고 있음을 북한은 주목해야 한다.

나진·선봉은 북한 경제 개혁의 시험 무대이다. 이 계획은 앞으로도 더욱 선전될 것이고, 지금까지와 다른 변화들이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내부적인 한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과제와, 이를 지지할 수 있는 대외 관계의 틀을 확보하는 문제가 여전히 관건으로 남아 있다.

김정일 비서의 권력 승계가 또다시 미루어지고 있는데, 북한이 생각하는 권력 승계의 필요 충분 조건은 무엇이고, 언제쯤 가능하리라고 보는가?

북한 경제 개방의 전체적 여건을 유리한 조건과 불리한 조건을 중심으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이것은 김정일 비서의 권력 승계와 직결되는 문제다. 승계 시기는 3년상(북한이 주장하는)이 끝나는 내년 7월로 확정된 듯하다. 권력 승계라는 과제는 이미 드러난 상태이고, 이것을 여하히 조합하는가의 문제만 남아 있는 셈이다.

먼저 유리한 조건은 역시 김정일 비서를 비롯한 상층부의 인식이 대체로 시험적 경제 개방에 대해서는 긍정적이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나진·선봉 개발은 이미 5년 여에 걸쳐 장기적 투자가 진행되었고 관련된 인사도 매우 많다. 이 프로젝트를 쉽사리 포기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해당 인사들은 이 과제를 해결하는 데 더욱 전력할 수밖에 없다. 대외 관계 변화에 따른 국제 경제의 흐름을 이해하는 세대군(40대를 중심으로)도 점진적으로 발언권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다. 또한 일본 배상자금 등 외부 자금 유입에 대한 기대 심리가 고조되어 각 부문이 경제 사업 참여에 대한 무언의 의지가 확대된 상태이다.

그러나 불리한 조건도 만만치 않다. 군부와 당의 청년동맹 등 강경 세력이 잔존하고 있고, 이들의 의견을 정책에 반영하는 비중이 여전히 높다. 경제난 악화에 따른 내부 불안 심리를 진화하기 위해 군중을 동원하는 행사가 계속되고 있는 사실만 보아도 그렇다. 대외 관계에서 여전히 완벽한 탈출 국면이 마련되지 못했다는 점도 불리하다. 또 정체기 현상도 나타난다. 남북 관계가 미온적인 상황에서 실질적인 경협 확대 분위기가 조성되기 어려운 점도 큰 변수다. 이런 불리한 여건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과제가 김정일 비서가 등장하는 시기와 맞물려 있는 셈이다.
내년에 김정일 체제가 본격 출범할 경우, 김정일이 이끄는 북한이 보여줄 대내외 정책 방향은 어떠하리라고 보는가?

미국이 북한을 연착륙시키려는 기조가 대선 이후 부분적으로 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선 이전의 개입 유화 정책이 과연 그대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미·북한 관계가 과거에 비해 상당히 우호적으로 가고 있다는 평가가 있어 왔지만, 이를 뒤집어보면, 미국이 과거 공화당 정권에 비해 북한을 너무 부드럽게 대했다는 비판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군사 측면의 강경 기조는 전반적 유화 정책과는 별개 항으로 등장할 공산이 크다.

북한도 미국의 이러한 변화를 감지한 듯하다. 잠수함 사건을 전후해 북한이 보인 제스처들이 이를 증명한다. 미국이 정책을 재검토할 경우 북한은 상당한 곤궁을 감수해야 한다. 미국이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북한의 고립이 더욱 심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체제 출범 이전에 이 문제는 북한의 대내적인 환경과 맞물려 난제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북한 외교부의 입장은 미·북한 관계가 정상화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지만 북한내 강성 부문들의 반발이나 불만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김정일 체제는 최소한 ‘고립’을 피하기 위한 유화 제스처를 다시 보여야 할 시점에 와있다. 김정일 체제 출범 이전이건 이후건 간에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식량 위기와 대외 고립을 해결할 방법은 없다.

김정일 체제는 ‘제한적 개방’과 ‘체제 유지’를 공존시키는 방향으로 갈 것이다. 대내외 정책 방향을 이원화한다는 기조는 현재까지 변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갑작스런 전환은 어렵다. 단지 나진·선봉과 관련해 더 획기적인 자본주의 시스템 도입이 추진될 것으로 전해진다. 지대 관리 시스템과 기업 여건 개선, 그리고 외국 자본 유치 분위기에 변화가 예상된다.

북한의 내부 변화 과정에 대응하는 한국의 전략은 어떠해야 되리라고 보는가?

현 시점에서 한국의 가장 큰 과제는 어떤 방법으로 남북 대화 채널을 만들어 유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간접 대화의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잠수함 사건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부분은 역시 ‘경협’이다. 자국민 보호라는 명분으로 의해 경협을 위한 인원 왕래마저 제한 당한 상태를 극복하는 데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들이 한국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에 냉소를 보내는 현실도 문제다. 정부와 기업 간의 강한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앞으로 남북 간에는 대화를 위한 연결고리를 찾기가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다.

김정일 체제 등장을 전후한 시기는 앞으로 10년 간의 남북 관계를 좌우할 수 있으리 만큼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다. 현 정권의 과제는 역시 차기 정권이 북한 문제를 ‘안보와 협력’의 복선 구도로 이끌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두는 것이다. 이제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때이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는 북한의 변화도 변수이지만 장기적인 안목에 입각한 정부의 정책 수립만이 기업의 움직임을 더욱 민활하게 만들 수 있다. 사안 별로 그때그때 단기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국에 대북 전략이 없음을 드러낼 뿐이다.

미국·중국·일본·유럽연합(EU) 등 세계 각국의 북한 접근과 보조를 맞추는 것도 관건이다. 남북한 문제가 이미 한반도의 틀을 벗어나 ‘국제 문제’로 비화했음을 스스로 인정하면서도 정책이 다른 방향으로 간다면 곤란하다. 결국 남북한이 직접 대화를 통해 이 문제의 해결점을 찾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 전쟁 중에도 특사들이 오간 전례를 참고하면, 현재와 같은 남북한의 대화 채널 부재는 심각한 상황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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