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련계 조선학교에 울린 ‘통일의 노래’
  • 도요하시·안해룡 (아시아프레스인터내셔널) ()
  • 승인 2004.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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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국악인들, 일본 총련계 조선학교 초청받아 첫 공식 공연
“너무 늦게 왔지요? 저를 좀 빨리 불러주지 그러셨어요?” 지난 4월25일 저녁, 배우이자 국악인 오정해씨가 일본 나고야 근처 도요하시 노동복지사회관에서 열린 콘서트에 참석해 천여 명의 재일동포와 일본인 관객에게 인사했다. 이 공연은 조총련계인 도요하시 조선초급학교(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의 운영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도요하시 지역 재일동포들이 ‘슬기둥&오정해 콘서트 실행위원회’를 조직한 뒤 1년간 준비 끝에 마련한 뜻 깊은 행사였다.

이날 공연에서 국악실내악단 슬기둥은 <고구려의 혼> <들춤> <신뱃놀이> 등을 연주하고, <산도깨비> <소금장수>와 같은 노래도 선사했다. 유치부를 포함한 도요하시 조선초급학교 전교생 40여 명이 오정해·슬기둥과 함께 부른 <고향의 봄> <진도아리랑>은 관객들에게 각별한 감동을 주었다.

‘슬기둥&오정해 콘서트 실행위원회’ 회장을 맡아 어렵게 이번 공연을 성사시킨 박용배 도요하시 조선초급학교의 교육회 회장은 이날의 벅찬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남과 북, 그리고 우리 학생들과 동포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었다.” 한국의 국악인들이 총련계 조선학교가 주최한 행사에 공식 참가해 공연한 것은 재일동포 역사상 이번이 처음이다.

전교생 43명, 한반도기 흔들며 환영

슬기둥과 오정해의 공연이 끝난 다음날인 4월26일, 도요하시 조선초급학교에서는 ‘작은 통일’이 이루어졌다. 슬기둥 단원들이 이 학교를 방문한 것이다. 전교생 43명과 교사·학부모 들은 학교 운동장에 모여 ‘한반도기’를 흔들며 슬기둥 단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슬기둥 단원들은 도요하시 조선초급학교 학생들의 국어와 일본어 수업을 둘러보고, 음악 시간에는 함께 노래도 불렀다.

이 날 저녁 5층 강당에서는 재학생들이 준비한 환영 공연이 있었다. 유치반의 장고놀이, 저학년 학생들의 <영철이의 꿈> 합창, 고학년의 사물놀이가 이어졌다. 슬기둥은 답례로 즉석에서 본격적인 사물놀이를 연주해 학생과 학부모들의 갈채를 받았다. 한국의 교과서에 실려 있는 슬기둥의 노래 <소금장수> <산도깨비>를 학생들에게 가르치는 시간도 있었다.

노래를 가르친 슬기둥 단원 오혜연씨는 “학생들의 눈망울이 너무 맑고 귀엽다. 일본에 왔지만 국내의 어느 지역을 방문했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이 자리에 함께했다는 것이 너무도 소중하다”라고 말했다.

도요하시 조선초급학교 학생들과 학부모 그리고 슬기둥의 만남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노래와 음악으로 보이지 않는 장벽을 넘어 남과 북 그리고 재일동포들은 하나가 되고 있었다. 슬기둥의 이준호 대표는 “이제 작지만 진정한, 밑으로부터의 민족 교류가 시작되었다”라고 이번 공연의 의미를 평가했다. 슬기둥은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단원들을 이 학교에 보내 학생들에게 국악을 가르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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