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갑부 리자청의 ‘해상 제국’ 꿈
  • 상하이·문승룡 (자유 기고가) ()
  • 승인 2004.05.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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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창장 그룹 리자청 회장, 세계 주요 항만 운영권 인수 작업
중국 상하이 항이 지난해 부산항을 제치고, 홍콩 싱가포르에 이어 컨테이너 처리량 세계 3위를 차지했다. 부산항은 홍콩에 인접한 선전 항에도 밀려 세계 5위로 추락했다. 부산항은 절대 처리 규모가 전년도에 비해 11.5% 증가했으나, 중국의 두 항에서 처리되는 물동량을 따라잡지 못했다. 동북아 물류 허브를 표방하고 나선 한국으로서는 항만 정책이나 물류 전략을 놓고 고심해야 할 시점이다.

상하이 항이나 선전 항의 물동량이 증가한 것은 무엇보다 중국 교역량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까지 연평균 7%대의 고성장을 목표로 삼고 있는 중국의 처지에서는 연평균 22.8%씩 항만 규모를 확장해도 늘어나는 물동량을 처리하기에 부족한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중국 항만의 총 처리 능력을 2002년 5천5백72만 TEU(길이 20피트(약 6m) 짜리 컨테이너 1개)에서 2010년까지 최대 1억5천만 TEU로 늘리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배후 지역 인구가 3억5천만 명에 그치는 싱가포르나 로테르담에 비해 13억명이라는 점과, 세계 30대 항만 중에 7개가 중국에 있는 항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목표가 허황된 꿈은 아니다.

“부산항 투자 성과 적다” 불만 토로

지난 4월 홍콩을 방문한 한국의 이헌재 부총리는, 아시아 최대 재벌인 창장 그룹 리자청 회장을 만났다. 리 회장은 이 자리에서 부산·광양 항에 대한 투자와 관련해 이총리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한국 기업 환경 때문에 투자에 대한 성과가 미흡하다는 내용이었다. 리 회장이 어느 정도의 ‘수익’을 예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이같은 언급은 상하이 항을 염두에 두고 이부총리를 압박하는 것으로 비쳤다.

리 회장은 자회사인 허치슨포트홀딩스를 통해 2001년 부산항 자성대 부두와 감만 부두, 그리고 광양항의 터미널을 각각 1개씩 인수했다. 이는 로테르담·말레이시아·필리핀의 주요 항만 운영권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리 회장은 중국 대륙의 항만 운영권도 염두에 두고 치밀한 계산을 하기 시작했다. 항만 운영권이 사회간접자본의 기본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리 회장은 해당 국가를 상대로 ‘베팅’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3월 중국 상하이의 푸둥국제컨테이너터미널 회사가 상하이 항 항만 구역에서 공식 영업을 개시했다. 이 회사는 리 회장이 투자한 홍콩 허지터미널 푸둥공사가 30% 지분을 가지고 있다. 푸둥국제컨테이너터미널 회사는 40% 지분을 보유한 외고교보세구 항만회사가 최대 주주이며, 리 회장의 회사가 2대 주주다. 그밖에 4개 회사가 합자했는데, 합자 기간은 50년이다. 이 합자 회사가 운영하는 상하이 항 제1기 터미널은 현재 선좌의 길이가 9백m, 컨테이너 선박 선석이 3개이며, 최신 컨테이너 선박이 정박할 수 있는 최신 설비를 갖추고 있다. 이 회사가 지난해 처리한 컨테이너 물동량은 2백8만 TEU에 달했다.

상하이 항의 관리 책임을 맡고 있는 상하이국제항만집단은 최근 상하이 터미널의 2005년 컨테이너 물동량 처리 목표를 2년 전의 1천만 TEU에서 1천5백만 TEU로 대폭 늘려 발표했다. 이 계획에 리회장의 추가 투자 계획이 포함되어 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리자청 회장은 현재 세계 컨테이너 처리 능력의 14%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 뉴욕의 항만 사업에까지 뛰어들 채비를 하고 있다. 이처럼 규모가 큰 사업 구상을 가지고 있는 리 회장이 ‘부산항 투자 성과’라는 국지적인 문제에 얽매이리라고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의 발언은 앞으로 전세계 무역 물동량의 병목이 될 상하이 항을 잡는 데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사전 포석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상신’으로 칭송받는 글로벌 재벌

중국에는 ‘3대 상업 영웅’이 있다. 19세기 말 청조의 무역을 휘어잡은 후쉬에얀, 세계 최대 규모의 백색 가전 업체를 이끌어 대륙 경제의 체면을 이어가는 하이얼의 장루이민, 그리고 바로 리자청이다. 리자청을 말할 때 ‘아시아 최대 갑부, 세계 5위 재력가’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닌다. 바로 이 점에서 그는 앞의 두 상업 영웅과 대비를 이룬다. 중국 내 재벌이 아니라 명실공히 세계화한 재벌이다.

올해 75세인 그는 1929년 푸젠성과 인접한 광둥성 차오저우에서 태어났다. 11세 때 중·일 전쟁을 피해 부친이 가족을 이끌고 홍콩으로 이주하는 바람에 ‘홍콩 사람’이 된 리자청은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열세 살 때부터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그가 ‘세계 5위의 갑부’로 성장할 토대가 된 창장 플라스틱을 설립해 완구와 가정용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2세 때. 이후 꾸준히 실력을 키워오던 그는 1971년 전환기를 맞았다. 때마침 홍콩에 불어닥친 개발 붐을 타고, 그동안 사들인 땅에 건물을 지어 분양하고 주식을 발행하는 등 사업 규모를 비약적으로 확장할 수 있었다.

그는 당시 마련한 자본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영국계 기업인 허치슨왐포아를 인수하는 것을 신호탄으로 1980년 이후 자딘메디슨·에어캐나다 등 굴지의 사업체를 인수하며 말 그대로 ‘세계 기업’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때마침 중국 대륙에는 개혁·개방 바람이 한창 휘몰아치고 있었다. 창장 그룹의 성장 배경에 홍콩 자본을 끌어들여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하려는 중국의 최고 실력자 덩샤오핑의 후원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는 소문은 바로 이 때문에 흘러 나온다.

그러나 아버지만한 아들이 없다던가. 장남 빅터 리가 홍콩 조직 폭력배에게 납치되고, 에어캐나다에서는 노동 분규가 일어났으며, 차남 리처드 리가 경영하는 회사는 부진을 면치 못하는 등 리 회장이 노년에 접어들면서 악재가 잇달아 터지기 시작했다.

리자청 회장은 “창장 플라스틱을 설립한 이후 나는 10년 동안 휴일이 없었으며, 매일 16시간을 일했다. 늘 잠이 부족해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까 봐 자명종을 두 개씩 놓고 잤으며, 날마다 가장 최악의 시련과 싸운다는 심정으로 살았다”라고 회고했다. 리회장은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를 ‘근검하고 절약하며 역경과 맞서 싸우는 상신(商神)’이라고 칭송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중국 대륙에서는 지금 리자청에 대한 ‘학습 바람’이 한창이다. 웬만한 대형 서점에서는 가장 눈에 잘 띄는 부스에 리자청 전기물을, 그것도 5~6종씩 진열하고 있다. 그런 리자청이 지금 각국의 재상들까지 불러내 ‘해상 대제국’을 건설하는 데 협조하라고 다그치고 있다. 상하이 항과 부산항의 ‘물류 전쟁’ 이면에 리자청의 그림자가 얼씬거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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