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통신]자작 소설에 담긴 젊은 미테랑의 슬픔
  • 고종석 편집위원 ()
  • 승인 1996.08.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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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소설에 담긴 젊은 미테랑의 슬픔
올해 초에 세상을 뜬 전 프랑스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이 정치인 이전에 문필가로서 늘 자부심을 지녔던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격동의 30년대에 이 미래의 대통령은 파리 법과대학 학생으로서 이런저런 정치운동에 발을 담그기도 했지만, 그가 더 골몰한 것은 문학 잡지들에 짤막한 글들을 투고하는 일이었다.

 
그가 대통령이 된 뒤 자기 주변에 포진하고 있던 국립행정학교 출신 엘리트들을 ‘프랑스어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머저리들’이라고 경멸하며,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문인들과 밀접한 친교를 유지했던 것도 자기를 문인이라고 규정한 것과 관련이 있다.

그리고 미테랑의 사생아 마자린이 3년 전 프랑스 문인들의 산실이라고 할 파리고등사범학교에 입학하자 그가 그렇게 흡족해 한 것도, 자신이 이루지 못한 문필가의 이력을 자기 딸이 채워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아무튼 그는 글 잘 쓰기로 소문 났던 나폴레옹이나 드골 못지 않게 글에 재능이 있는 정치가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인 문필가들이 그렇듯, 미테랑 역시 젊은 시절 잠깐을 빼고 문학적 글쓰기는 하지 않았다. 정치인으로서의 호화로운 이력을 통해 줄곧 이어져 온 그의 글쓰기는 주로 역사나 정치에 대한 에세이에 바쳐졌다. 최근의 한 경매장에서 3만8천프랑(약 8백8만원)에 팔린 미테랑의 젊은 시절 원고 하나가 단편 소설이라는 것은 그래서 세간의 흥미를 끌기에 족하다.

<으뜸 和音>이라는 제목의 이 단편 원고를 산 사람은 미테랑과 교분이 있던 제라르 오베클레라는 고서 전문가다. 이 원고를 내놓은 사람의 신분은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 원고가 자르나크의 미테랑 생가에 보관되어 있다가 도난 당한 장물일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다.

40년 5월 스물세 살 된 육군 상사 프랑수아 미테랑이 전선에서 쓴 이 단편이 특별한 문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다. 3만8천프랑에 낙찰된 지 몇 시간 뒤에 그 원고를 읽어 본 문학 평론가 티에리 보뎅은 <으뜸 화음>이 서투르게 흉내낸 습작일 뿐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니까 <으뜸 화음>의 원고가 3만8천프랑에 팔렸다는 사실은, 다만 미테랑의 유품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물건이 시장에서 어느 정도 경제적 가치를 지니고 있을까를 가늠하게 해주었을 뿐이다.

전장에서 부대끼는 동안 약혼녀는 떠나고…

<으뜸 화음>은 엘자와 필리프라는 연인의 짧은 사랑을 그린 ‘에로틱하고 감각적인’소품이다. 작품 속의 엘자는 능동적이고 감각적이며 정열에 넘치는 여성이다. 그녀는 열광적으로 필리프를 사랑하지만, 수줍음 많은 필리프는 그들의 사랑 행위에서 늘상 소극적이다. 어느날 아침 엘자는 필리프의 과격한 입맞춤에 잠을 깨고 어리벙벙해한다. 그날 이후 필리프는 돌아오지 않는다.

밋밋하기 짝이 없는 이 작품이 저널리즘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 작품을 쓸 당시의 미테랑의 염사(艶事) 때문이다. 전선에 투입되기 얼마 전 미테랑은 무도회장에서 만난 파리고등사범학교 학생 마리 루이즈 테라스에게 완전히 반해 있었고, 징집 후 전선에서 그에게 매일 서너 통씩 편지를 썼다. 결국 둘은 약혼을 했는데, 약혼 직후 전투에서 미테랑은 부상 당해 독일군의 포로수용소에 갇혔다.

그 사이에 마리 루이즈는 한 폴란드 청년과 사랑에 빠져, 그와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포로수용소에서 돌아온 미테랑은 그의 배신에 할 말을 잊었지만, 곧 뒷날 퍼스트 레이디가 된 다니엘을 만나 상처를 잊었다.

미테랑과 마리 루이즈 사이의 사랑은 미테랑이 대통령이 된 뒤, 유명한 텔레비전 앵커 우먼이 된 과거의 약혼녀 카트린 랑제에게 레종 도뇌르 훈장을 수여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훈장 수여식 이후 기자들을 만난 카트린 랑제는 자신이 천 통에 가까운 미테랑의 편지를 보관하고 있지만, 그 편지는 미테랑의 사후에도, 자신의 사후에도 공개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해 화제가 되었다.

<으뜸 화음>에 미테랑과 마리 루이즈 테라스, 즉 미래의 카트린 랑제와의 사랑이 투영되었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이 어설픈 단편을 쓰며 미테랑은 약혼녀와, 약혼을 파혼으로 결말나게 할 독일군의 공격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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